유르타Eurta:Conscience story - 살생금지 作을 읽고.
이번에 얘기해볼 작품은 살생금지님의 중단편 <유르타Eurta:Conscience story>입니다.
이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Conscience story, 양심이란 소재를 다룰 거라고 언질을 줍니다. 선악을 판단하는 도덕적 의식을 양심이라고 하죠. 인간사에 필요한 것이지만 어쩐지 고루하고 빤한 느낌을 주는 단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유르타:양심에 대하여>가 아니라 <유르타Eurta:Conscience story>로 되어 있습니다. 외국어를 제목에 차용하는 장점은 첫째, 그 단어의 발음이나 어원이 가진 힘을 빌릴 수 있고 둘째, 해당 언어를 잘 모르는 이에게는 단어가 가진 의미로 스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간혹 외국어가 더 멋져 보여서 영어를 제목으로 삼는 이들도 있긴 한데 이 경우는 아니라 생각하겠습니다.
해당 작품은 9편으로 된 본편과 6편의 외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 길지 않으니 각 편의 중심 내용을 정리하고 짚어봅시다. 외전은 생략합니다.
편수
중심 내용
1
지난겨울 동사한 피해자 J씨의 유족들에게 재산 증여하는 각서를 쓴 유르타. 사실 피해자는 실족해 동사한 것이 아니라 차에 치여 쓰러졌다가 얼어 죽은 것. 유르타는 그 차주로 도주한 것이었음.
2
피해자 J씨의 실종 기사를 접하고 죄책감을 호소하는 유르타에서 피해자의 장녀 메니로 인물 전환. 메니는 보호자를 잃고 소녀 가정이 되어 생계가 막막한 상태.
3
구인 광고를 통해 성사된 가해자와 유족의 만남. 죄책감에 메니를 고용하기로 하는 유르타.
4
아무것도 모른 채로 고용주에게 감사하며 일하는 메니와 피해자 가족을 눈앞에 두고 정신적 고문당하는 것을 선택한 유르타.
5
한계에 임박한 유르타와 무언가를 예감한 메니.
6
죄를 고백한 유르타.
7
휴직 신청한 메니. 유르타의 고백에 대해 생각해 본다.
8
여러 이유를 들여 유르타를 용서하기로 한 메니.
9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는 유르타에게 프러포즈하는 메니.
<유르타Eurta:Conscience story>의 주요 등장인물은 유르타와 메니라 할 수 있습니다.
유르타는 주인공이며 작중의 빌런입니다. 음주 운전으로 교통사고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방치해 동사하게 만들었으니 주인공의 실제 성품이 어떻든 이 상황 안에서는 오롯이 악인일 것입니다.
하나 운이 좋게도 주인공으로 간택된 유르타이기에 그는 그의 사소한 것까지 독자에게 알려줄 기회를 얻었습니다.
유르타는 유년 시절 모친을 병으로 잃었으며 막 성년이 되자마자 부친까지 사고로 잃고 만 인물입니다. 그에게 가족은 성장기 때부터 불완전했으며(양친이 있다고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겨우 성년이 되었을 뿐인데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지요.
모친의 부재가 암시하는 정서적 자극의 부족함, 사회생활 없이 축적한 부 등은 유르타란 인물에게 몇몇 가지 경험이 박탈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타인과 건강하게 교류하는 법, 실수나 잘못을 스스로 해결하는 법, 도전하여 쟁취하는 법. 당연히 자라면서 익히게 되는 것이지만 보호자가 온전히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의 사회를 대하는 적극성은 다른 법이죠.
유르타는 목적이 없는 삶을 사는 인물이었습니다. 대개는 경제적 자립이라든지 주변 인물과의 관계 때문에, 또 본인의 흥미로 목적을 가지게 되는데 유르타는 사회 초년기부터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 스스로 노력하여 얻은 것이 아닌 부는 그로 하여금 쉽게 유흥에 빠지게 만들고 나태하도록 등 떠밀었죠. 그 결과가 음주 상태의 운전이고 교통사고이며 뺑소니인 것입니다.
유르타의 무책임은 도주 이후로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실종자의 실종 기사가 뜨기까지, 긴 겨울이 지나고 눈이 녹아 동태가 된 변사체가 발견될 때까지, 경찰들이 수사로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하고 실족사란 판결을 내릴 때까지 그는 유산으로 물려받은 저택에 꽁꽁 숨어 숨죽이며 이 모든 것이 어떻게든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지요. 그러면서도 사람을 치어 괴롭다고 혼자만의 자책감에 빠져 이미 죗값을 치르는 중인 양 굴었습니다.
그러한 시간은 평범한 사람이 자신이 지른 죄의 죄악감을 덜어내기 위해 가지는 일종의 책임회피 시기와 같습니다. 만약 별다른 일 없이 그 시간을 조금 더 보냈더라면 유르타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고 충분히 반성했으니’하며 넘길 일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막대한 부는 유르타에게 사회적 경험도(스스로 책임져 볼) 단절시켰지만 집안일에서도 격리해주었죠. 그는 죄책감에 벌벌 떨면서도 거대한 저택을 청소해줄 가정부가 필요했습니다. 타인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어려워했던 성향상 단기적으로 임부를 구했는데 이번 시즌에 구직자로 지원해온 것이 피해자의 유족이자 돌아가진 아버지를 대신해 소녀 가장이 되어버린 메니였던 것입니다.
자신이 일으킨 사고로 인해 부모를 잃은 어린 소녀가 사회에 나왔으며 여기서 자기가 거둬두지 않으면 어린 여성이 갈 수 있는 곳이 어딘지를 유르타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딱히 그것뿐이라면 인맥을 통해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방법도 있을 텐데 유르타는 굳이 제 집 가정부로 고용하여 피해자의 유족이 매일 제 앞에 얼굴을 비추는 길을 택합니다. 나름의 양심적 가책으로 앓고 있던 그에게는 끔찍한 상황이며 그 스스로는 형벌 같은 일이었겠지요. 그 스스로가 여기기에는.
그렇게 얼마간을 고용주로서 피해자 유족을 지켜보던 유르타는 메니에게 결국 자신의 죄를 고하고 재산을 비롯하여 자기 자신까지 노예와 다름없는 처지로 떠넘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메니는 유르타가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을 느끼고 용서하며 정 그 몸뚱이를 주겠다면 결혼으로 해결하자고 하지요.
이 작품에서 제시한 사건과 유르타란 인물성을 보면서 기대한 것은 죄인이 납득가는 판결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반성이라는 건 개인적인 영역이기에 보여주기 어려운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말에서 나왔듯이 유르타를 용서하기 위해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었지요. 메니가 왜 그랬는지는 메니의 인물에 대해 논할 때 덧붙이기로 하고 유르타라는 인물만 보자면 소심하면서 비겁하고 자격 없는 부로 죄를 덮어가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한순간에 사고를 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일으킨 범행에서 달아날 수 있고 모른 척할 수 있고 운 좋게 들키지 않으면 입 다물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꼭 악인만 그러는 게 아니라 그런 상황에 처한 다수의 사람들도 그럴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면서 쭉 자극되었던 미묘한 불쾌함, 유르타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하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비열했죠. 비록 유르타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고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마는, 유르타는 범행에서 도주하고도 들킬 때까지 사택에서 자숙했습니다. 우습게도 아무도 그의 죄를 벌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고통스러웠으니 죗값을 치르고 있었다고 그때부터 그렇게 말할 당위성을 갖게 됩니다.
가정부로 메니를 고용하면서 경제적 지원을 했습니다. 비록 그 경제적 지원을 받아야 할 상태를 유르타가 만들었어도 힘들 때 물질적 지원을 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죗값을 치른 것으로 들어갑니다.
유르타는 메니가 일하는 동안 일반적인 고용주와 다르게 함께 식사하고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본편에 서술됩니다. 식사할 때만큼 사람이 방심하고 너그러운 모습을 보이는 때도 없지요. 그 시간 동안 유르타는 메니가 어떤 인물상인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만약 메니가 신랄하며 독설가였다면 소심하고 무책임한 유르타가 그리 쉬이 죄를 입에 담았을까요. 메니가 진심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인품의 이였기에 이 소설의 엔딩은 유르타가 용서받는 것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읽는 이로서는 유르타가 그걸 노렸다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 좋은 유족에게는 고백해도 관청 앞에서 자백하지 않았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목적 없고 가족 없고 죄 있는 유르타가 지은 죄로 인해 착한 아내를 얻고 부부공동재산으로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은 유전무죄라는 메시지도 남기는 듯도 했습니다. 만약 노숙자 20대 유르타가 노숙자 급식소에서 부랑자들에게 희롱당하며 일하는 메니랑 몇 주 보다가 “사실 지난겨울 술 살 돈이 없어서 너희 아버지 지갑 노리다, 등만 떠밀고 도망갔는데 나중에 보니 거기서 죽었더라고.” 한다면 메니는 유르타를 용서했을까요?
1화의 겨울에서 재산을 양도하는 각서로 메니를 만나기 전부터 유르타는 이미 죗값을 치를 결심을 하고 있었다를 암시하는 듯하지만 그 각서를 메니를 만나지 않고도 제출했을지 아닐지는 이제 모르는 일입니다. 이 작품 세계선에서는 메니에게 용서받아 사회적으로는 범행을 감추고 가정을 이룬 유르타로 끝이 났으니까요.
유르타Eurta:Conscience story. 양심이 있는 인간이, 지른 죄에 대하여 고뇌하고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글이 아니었을까 짐작하는데 읽는 쪽에서는 다른 의미로 읽힙니다.
이렇게 이 작품의 인상이 부정적으로 남게 된 것은 유르타보다는 메니 쪽의 지분이 큽니다. 유르타는 시작부터 죄인이었기에 그가 어떤 결말,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을 깨우쳤냐에 따라 전해지는 메시지가 달라지는 것일 텐데 메니는 여기서 유르타를 용서하는 역할로서 그녀가 읽는 이들을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이런 의문과 비공감이 남게 됩니다.
메니는 유르타와 비슷한 가정사를 가진 인물입니다. 어린 시절 모친을 잃었고 성년을 앞두고 유르타에 의해 부친을 잃었습니다. 유르타와 다른 점이라면 집안이 부유하지 않았다는 것과 어린 두 동생이 남았다는 정도겠지요. 가정 교육도 달랐을 테고요.
가난함이라는 것은 수용하는 법과 포기를 가르쳐줍니다. 깊게 들어가면 자격지심으로 비뚤어질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가진 것의 한계와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지금은 바닥에 있더라도 계획하고 노력해 올라갈 거라는 마음가짐을 지니게 되지요.
가장을 잃은 가정에서 동생들을 책임지게 되면서 메니는 좌절과 우울함만을 택하기보다는 구직을 택했습니다. 그리해 몰랐지만 진범인 유르타를 만났고 그의 양심을 자극한 끝에 막대한 목숨값을 받고 재산의 원주인인 유르타까지 차지하게 되었죠.
메니의 파트에서 중점은 무슨 생각으로 유르타를 용서했는가, 일 것입니다. 메니는 “첫째”라고 합니다. 용서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라는 거겠죠.
첫째 이유는 복수를 해야 하는가였습니다. 복수의 끝은 복수하는 사람까지 파멸하는 것이라는 것을 여러 매체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메니는 그것을 언급합니다. 유르타에게 복수해서 자신과 동생들의 인생이 평온하겠냐는 물음이었죠. 그래서 복수하지 않겠답니다.
둘째는 사적으로 심판하는 것입니다. 하나 메니는 법을 어기면서까지 개인적으로 유르타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다고 합니다.
셋째는 공적인 기관에 재판을 받을까입니다. 메니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딱히 부연 서술이 없는데 뭐라도 납득하고 싶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메니 역시 가정부 일을 하면서 유르타에게 동질감, 모성애 등을 느끼지 않았나 싶습니다. 때때로 스스로 선하다 여기는 인물이 자신의 기준으로 악을 봐주기도 하니까요.
메니는 유르타에게 경시청이 아니라 도서관으로 가라고 합니다. 유르타의 범죄를 공론화할 생각이 없기에 도서관에서 유르타가 직접 법리를 따져 부친의 목숨값을 알맞게 지불하라고 하지요.
그리하여 메니는 유르타를 용서합니다. 이유가 셋 있었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보니 메니는 무슨 일이었던 간에 유르타를 용서하고 싶었던 심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반했던 것일까요?
유르타가 끝까지 몸바쳐 용서를 구하고 싶다면 결혼하는 것으로 받아주겠다는 제안까지 하니까 말이지요.
사실 피해자 유족은 메니니 용서하건 말건 목숨값을 받건 말건 그건 메니의 권한이 맞습니다. 다만 읽는 이에게 이렇게 억지처럼 느껴지는 건 법리에 따라 목숨값을 지불하라면서 정작 메니는 사적 제재를 택했다는 것입니다. 유르타도 딱히 법정까지 가려고 하진 않습니다. 자신의 죄는 피해자 본인이나 그의 유족들만 심판내릴 수 있다는 것처럼요.
엄연히 법으로 이루어진 사회일 텐데 메니도 유르타도 공적 제도는 무시한 채 개인끼리 해결하면 끝이라는 태도를 보입니다. 양심이 있다면 과정은 어떻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걸까요?
이상 많은 생각거리를 주는 <유르타Eurta:Conscience story>를 읽고,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