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기억 속에 황기록님의 이름이 각인된 지는 사실 오래되었습니다.
예전 도서출판 뫼에서나 용문, 시공사(드래곤 북스)를 통하여 등단하신 작가님은 아마 전부 기억하니까요.
그럼에도 표지와 맞물린 겉장에 프로필로 간략하게 소개되었던 '맹독성 독사'라는 별칭, 그리고 풍채가 예사롭지 않았던 동그란 초상화 정도로만 기억이 남은 건, 기출간 되었던 적월(赤月), 귀역(鬼域) 등에서 그다지 강렬한 이미지를 다운받지 못한 까닭이 컸지 않나 생각합니다.
새로운 작품과의 첫 대면에 대한 인상은 의외로 완강한 구석이 있어서 일정 정도의 수준에는 올라선 작가라는 건 인정하되 독자로서의 손길은 선뜻 가지않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제 겨우 초반 두 권을 읽고 무슨 감상씩이나..' 하실 회원님께는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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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인계에서 보이는 익숙하면서도 재미있는 장치 하나는 탁주(濁酒)를 앞에 놓고 나누는 두 노인의 대화였는데, 과거의 무협에서는 주로 떠돌이 조손(祖孫)이(특히 소녀와 장님 할아버지가 많았었죠.) 주루 안의 손님들을 빙자로 결국 독자의 이해를 구하는 형식이 많았지요.
이런 방식은 군더더기를 줄이고 극의 전개속도를 빠르게 이끄는 역할에도 큰 몫을 한다고 생각됩니다. 1,2권 서두에 다같이 나타나는 장면이더군요. 흥미롭습니다.
진정한 이야기의 시작에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독고향(獨孤香)이 사십 사호 용차(用車)꾼으로 나오는 데 그야말로 택시, 그것도 노련한 총알택시 기사로 등장하더군요.
마운택시(馬運的士), 아니면 용마운수(用馬運輸) 4040번호판을 단...
새로운 손님이 타면 어자석 옆에 있는 등에다 까만 천을 씌우는 건 물론 빨간 '빈차'표지(標識)를 지우는 것일테고 더욱 친절하게는 미터기 조작에 대한 설명까지...
일장 거리마다 가등(街燈)이 설치된 도심의 거리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거리 여기저기 말과 마차의 흐름을 통제하는 황건대원의 배치등에서 현대적 도심이 그대로 감각적으로 녹아있더군요. 물론 전혀 어색함없이 빙긋 웃음을 머금게 하는 그런 장치였습니다.
그렇게 현대적 감각이 제대로 육화(肉化)되어 있음을 보자,
독고향이 세인의 이목을 피해 살던 갖가지 경보장치가 설치되고 비밀 출구가 성벽으로 연결된 집은...
곧 영화 '스페셜리스트'에서 실베스터 스탤론이 살던 다리 밑 아지트가 연상되었고, 은건대에 불려갔다가 도망치는 장면에서는 흔히 성룡식 홍콩영화의 단골 장면이었던, 시장통의 온갖 물건들이 마구 쏟아지고 엎어지고 호각을 불며 쫓아오는 경찰관의 모습까지 오버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각은 별 도움이 안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부친상의 기간 동안에 남궁소가주가 암습을 당하게 되는 그 3층 건물의 외벽이 유리로 이루어져 있어서, 안에서는 밖이 훤히 내다보이지만 밖에서는 빛의 반사 때문에 들여다보이지 않는다는 설명 등에서는 엉뚱한 의구심이 싹튼 탓이었지요.
중국 명대 말기 건축에서 그렇게 유리로 벽면을 삼는 건물이 있었나하는 것과 독고향이 피습을 당하였다 깨어나는 첫 장면에서 보이는,
ㅡ처음 독고향이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정화된 무늬들..(즉 그곳이 방안이고 벽지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겠는데..)
중국 주거문화를 잘은 모르지만 그런 현대식 벽지무늬가..? 하는 느낌들이 일어나더군요.
그리고 중국에도 탁주(濁酒), 혹은 농주(農酒)가 있고 그것은 우리네의 막걸리와 비슷한 것인지...?
[감상]으로 올리는 첫글로써 이런 작품 외적인 잡설로 선뵈자니 솔직히 민망한 느낌도 생기네요.
그러나 당연히 이런 사소함에 걸려 엎어지는 일은 절대 없으리만치 외인계는 재미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님의 훌륭한 문장력 또한 고졸(古拙)한 멋이 살아있어 어린 작가들이 본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남궁소가주를 용차에 태우고 돌아오는 길의,
ㅡ ...멀리 구봉산 자락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서고 있었다..든가?(컥..죄송합니다. 원문의 문장을 온전히 기억치 못해 떠오르는 대로 재조합을..)
아무튼 복선의 가치로서도 탁월한 솜씨였지요.
다만 작품의 내용상 다소 납득이 어려웠던 점은 설립강과 여상절 두 가주의 합의사항이 뭔가 좀 애매했고,(앞으로는 서서히 구체적으로 드러나긴 하겠지만..)
세 가주와 그 세 자식들의 성격이 판에 박은 듯이 닮았다는 설정은 작가님이 조금 편한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신가하여 약간의 무리가 느껴졌으며,
여상절의 휘하로 중용되었던 이의방(李義方)이 새로운 가주를 습격할 때에 동원되었던 저 5000 여에 달하는 잡성가의 젊은 목숨이 너무 애꿎게 희생당한 면이 있는 것 같아 서운했다는 느낌...
어쨌든 [외인계]를 이제라도 읽을 수 있게끔 추천해주신 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