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겨울, 깊은 눈이 덮인 어느 사찰.
고요는 짧았고, 곧 천둥 같은 구호와 함께 깨졌다.
“경방대! 수색하라!”
경방대 순사들이 허연 입김을 뿜으며 들이닥쳤고, 철제 총구가 나를 향해 일제히 들려졌다.
책상 위엔 민족주의 서적과 청년들의 명단이 펼쳐져 있었다.
선두의 순사가 책상 위를 훑고는 내게 말했다.
"숨기기엔 이미 늦었다!"
아니, 늦지 않았다.
내겐 미래의 기억이 있거든.
“윤태준, 네놈은 대일본제국의 충직한 신하가 아니었더냐? 조선인의 본성은 배신인가!"
나는 손에 들린 마포 성냥을 켜, 암호문이 적힌 종이로 싼 쌈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스읍―츠지지직―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이자, 기분 좋은 담배종이 타는 소리가 귀에 스쳤고, 암호문은 연기가 되어갔다.
“그래, 네놈 말대로 조선인은 배신한다.”
순사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배신당할 쪽은 너희다.”
순사는 눈을 부릅뜨며 총을 더 가까이 들이댔지만, 이미 늦었다.
사찰 뒤편에서 굉음이 터졌다.
창고에 숨겨둔 화약이 불붙으며 폭발한 것이다.
흰 눈발 속으로 붉은 불길이 솟아올랐다.
“으아아악!”
비명과 함께 순사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연기가 자욱한 사찰 안, 혼란에 휩싸인 병사들 사이에서 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오늘 밤, 이 사찰은 내 손에 의해 역사의 분기점이 된다.”
나는 손에 들려있던 담배를 그의 눈앞에 무심하게 내던졌다.
불씨가 그의 발밑에 떨어지는 순간, 작은 폭죽 같은 불꽃이 번쩍였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낮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