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떤 소설'에 악역이 있었음.
악역의 느낌은 찌질하고 주인공의 발목을 잡는 부류였음.
그러다가 악역의 불우했던 과거가 밝혀졌는데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그래도 그러면 안되지 라는 말과 함께 짜게 식은 눈으로 처참한 몰골의 악역을 보았음.
반면에 아카데미물로 유명한 '아카살'이 있음.
여기 주인공은 빙의 전 원주인이 찌질하고 삼류악역이었음.
주인공이 빙의 한 후에는 당연히 태도 돌변해서 활약함.
피해자였던 원작 주인공들은 주인공이 뭘 하려 할때마다 꿍꿍이가 있나 의심하다가 나중에는 도움을 받고 인정하게됨.
그러다가 주인공 육체의 원주인의 불우한 과거가 밝혀짐. 이때 어떤 소설과 다르게 아카살의 원작 주인공들은 주인공을 동정과 연민을 하고 이전 행동을 이해해주게됨.
똑같이 악역이었고 똑같이 불우한 과거가 있었는데 왜 결과가 다른지 생각해보다가 나름 결론을 냄.
아카살의 주인공이 연민을 받을 수 있었던건 원작 주인공들의 주인공을 향한 증오가 어느정도 빠진 후 약간의 호감이 자리잡은 상태이기 때문에 쉽게 연민을 할 수 있었음.
반면에 어떤 소설은 주인공들이 악역을 한창 증오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연민 하고 싶지 않아했음.
옛날에 초등학생때를 떠올려 보면 친구랑 싸웠을때 선생님이 중재자가 되면 애들끼리 서로 사과하고 끌어안게 시켰었음. 애들은 당연히 마지못해 하다가 화해를 함. 하지만 하루나 이틀 지나면 다시 절친 처럼 뛰어놀게됨.
이건 50대 60대 같은 어른들도 비슷함. A공장 사장과 B공장 사장이 있음. 둘은 오랜기간 협업하는 관계였음. 그러다가 A사장이 B사장에게 수십억 하는 기계를 증서 없이 빌렸다가 안돌려주고는 발뺌하는 일이 있었음. 그렇게 A사장과 B사장은 사이가 틀어지다가 시간 지나서 B사장이 A사장이 그랬던 이유를 찾음. A사장 공장이 그때 파산할 위기였음. 그리고 결말은 화해했다고함.
어떤 소설의 '악역' 현실의 '친구'라는 차이점이 있지만 그걸 때고 보면 '증오하는 인간'과 '시간이 지나면 증오가 빠짐'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친분이 있는 시절'이라는 매개가 있어 쉽게 용서와 화해가 가능했던 차이가 있음.
아카살의 주인공을 향한 증오는 시간이 지나서 빠졌고, 그러다가 주인공에게 원작 주인공들이 도움을 받는 일이 있어서 '친분이 있는 시절'이 생김. 그 후에 아카살 주인공은 육체의 불우한 과거 밝혀짐으로 원작 주인공들과 봉합을 해냄.
어떤 소설도 아마 악역의 불우한 과거가 그때 안밝혀지고 얻어터지고, 나중에는 주인공에게 조력을 하다가 불우한 과거가 밝혀졌다면 세탁기 돌린다고 독자들에게 작가님이 욕좀 먹을 가능성이 있지만 독자들은 어떤 소설의 악역이 입체적이라고 좋아 할 것 같음.
본론
세탁기 돌리는걸 독자들이 왜 싫어할 수 있는지 생각해봤음. 인간은 훈련되지 않으면 기존 인식을 바꾸기 어려워하고 태도를 바꾸는걸 어려워함.
현실에서 한창 말로 싸우고 있는데 직장 상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바로 휴전한 후 전화를 받는다면 직장인들은 이때쯤 나이에는 웬만하면 어느정도 훈련된 상태이기에 태도 돌변해서 전화를 받을 수 있음.
그런데 싸우고 있는 상대하고 한창 서로 증오를 표출하고 있는데 내가 상대에게 갑자기 친절해진다? 이론상 가능해도 불가능함. 만약 갑자기 상대가 친절하게 돌변한다. 그러면 뭐지 밖에 생각안든다. 상대가 순전히 친절한 생각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그럴수 없는 맞지만 내 마음에서도 단정짓고 있는건 사실이다.
상대 잘못인데 적반하장이다 더 불가능함.
그런데 자동차 사고 처럼 서로 잘못이 비슷비슷하고 싸움판 날 수 있는 경우 인데도 상대가 먼저 굽히고 들어온다면? 훈련되지 않은 나라면 상대를 짓밟는다. 왜냐면 인간은 훈련되지 않으면 나에게 관대하고 상대에게 가혹하기 때문임. 부모가 먼저 자식에게 미안하다고 했는데 아이는 뿌에에에엥하는 것과 비슷함. 그런데 내가 훈련됐다면 받아줄 수 있다. 내가 더 훈련됐다면 훈훈하게 마무리할 수 있고 먼저 굽혔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싸우다가 서로 지인들에게 끌려가서 마무리 된 경우.
그러다가 몇년 뒤 마주쳤다면? 그냥 길가다가도 아니고 직장에서 마주쳤다. 게다가 같은 부서 같은 직급이다. 회사도 작아서 퇴직하지 않는 이상 친해져야만 한다.
그런데 아무리 그때 일이 생생하다고 해도 시간이 지난 이상 증오는 그때 보단 많이 빠져있는 상태다. 그러면 그때 보다 쉽게 화해하고 친해질 수 있다. 상대도 그렇다면 더 좋다.
그런데 상대가 회사일 하면서 일머리 없는걸 넘어서 태도 조차 폐급이다. 그러면 그때 그래서 쯧쯧 생각이든다. 맞는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그렇게 단정 짓고 있는 것도 맞다.
그런데 나도 그렇고 상대도 그렇고 몇년 전보다 훈련된 상태다. 서로 그게 보인다. 그러면 아주 쉽게 화해하고 친해질 수 있다.
내가 발전하고 훈련될 수록 더 악랄한 상대를 용서할 수 있다.
상대가 훈련된 사람일수록 상대가 유리할수록 시간이 지나서 증오가 옅어질수록 나는 더 쉽게 굽힐 수 있다.
이렇게 써봤음. 이건 아마 사람들이 자신에게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상황 중 하나일거임.
옛날에 일본 만화에서 젊은 시절 서로 끊임없이 총질하던 야쿠자 보스하고 경찰청장이 있음.
그런데 늙었을때는 서로 따로 만나서 가끔 술마심. 정들었을 수도 있지만 중간중간 서로 부하들이 죽었을텐데도 그럼. 이건 그만큼 훈련된 사람들끼리만 가능한 화해임.
우리는 잘지낼 사람하고 첫대면부터 잘지냈으면 좋겠음. 극단적인 예시로는 정치인이 개과천선할거라고 생각하지 않음.
비유하자면 폭이 좁은 도로를 두다리로 가로 지를때 뛰는 것보다 걷는게 운전자 눈에 더 잘 들어올거임. 이사를 자주 안가는게 더 안정될거임. 이것들과 관련있음.
웹소설에서 세탁기도 그럼. 웹소설은 기본적으로 쥔공은 잘못할 일이 잘 없으니 봉합이 세탁기 형태 밖에 없잖음.
웹소설 설정이 비현실적이라도 인간관계가 현실의 것과 가장 흡사하니 적어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