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인형을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한지도 벌써 4달 가까이 되었습니다.
연재분량이 3권을 넘어섰지만 권수를 느끼지 못할 만큼 빠르게 달려 왔습니다.
장경님의 전작 성라대연의 초반부가 무협독자들이 가지기 힘든 인내력과 지구력을 요구하는 장거리 경주였다면, 황금인형은 스타트부터 숨 쉴 새 없이 내달리는 단거리 경주였습니다.
특히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듯한 황금인형의 전개는 가히 한국무협의 새 장을 열었다고 생각됩니다.
하나의 주제, 황금인형을 놓고 주인공격인 성인학과 사제들, 엄등과 연왕 그리고 현헌과 응천부의 고수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전개하고, 전개과정에서 인물들이 조금씩 서로 얽히고 설키는 복잡다단한 구성은 '역시 장경이군!'하는 감탄사를 절로 나오게 합니다.
비록 몰입도가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서 느닷없이 연중을 선언한 장경님이 한없이 야속하지만 좀더 나은 작품을 위해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려는 작가의 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므로 기다림의 미학을 새겨 보려고 합니다.
황금인형은 여러 면에서 그 간 볼 수 없었던 장경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우선 글 전체를 관통하는 유쾌함은 장경의 글에서 새로이 발견하는 기쁨입니다.
철검무정을 시작으로 한 그의 작품들은 투박한 정, 애잔함, 서글픔의 정서를 표출시켜 왔습니다. 암왕은 그 최고조라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인지 장경무협하면, 무거움과 비장함 그리고 노친네들이 보는 무협이라는 선입관이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황금인형을 통해 장경은 10대들도 좋아하는 작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아 습니다.
또한 기존의 독자층이 장경에게 바라는 그 무엇, 시류에 편성하지 않는 무거움도 녹아 있습니다.
기존의 독자층이 장경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장경무협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묘사에 있습니다.
인간군상이 내포하고 있는 삶의 고단함과 생명력을 그만큼 가슴 절절히 묘사하는 작가는 국내무협에서 보기 드물지요.
누군가 - 아마도 신경식님- 가 '장경은 무협소설을 황석영의 장길산 같은 글로 쓰고 싶은 욕심을 가진 친구'라고 한 말이 떠오릅니다.
여기서 황금인형은 전작들과 조금 성격을 달리합니다. 전작들이 인간군상의 묘사에 치중한 만큼 글이 무거워지고 장중해지고 또 그만큼 독자층의 한계를 가져왔다면, 황금인형은 결코 가볍지 않은 유쾌함과 인간군상의 무거움을 비슷한 비중으로 나누어 담아 독자층의 확대는 물론 글읽기의 유연함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악의 이분법적인 논리가 아닌 저마다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대변해주는 장경만의 세밀한 내면묘사는 황금인형이 그저 재미있는 무협소설이 아닌 여운을 가지고 있는 무협소설로 자리매김하게 합니다.
끝으로 황금인형 초반부에 나오는 정지상의 송인(送人)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비 개인 긴 둑에 풀빛이 진한데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남포에서 그대를 보내니 노랫가락 구슬퍼라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마를 것인가?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해마다 이별의 눈물만 푸른 물결에 더하거니.
은 장경이라는 무협작가가 얼마나 뛰어난 감수성을 가진 작가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