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짐승처럼 끌려가다 처참히 숨을 거두는 기괴하고도 생생한 악몽.
죽음의 냄새를 쫓아 이승을 떠도는 혼을 거두는 기이한 운명의 여인 [하현]의 유일한 갈망은, 그 끔찍하게 반복되는 꿈 너머에 숨겨진 [자신의 진짜 전생]을 되찾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사내, [장무현].
그 역시 수백 년 전 고려의 무관이었으나 과거의 기억을 모조리 잃어버린 채, 하현처럼 산자도 아니오 죽은 자도 아닌 상단주.
전생을 잃어버린 두 남녀가 이승의 섭리를 어지럽히는 원혼들을 거두며 진실을 쫓던 중, 어느덧 자신들과 닮은 또 다른 기이한 존재를 느끼게 된다.
여기에 세자의 죽음과 세자비의 역모라는 피바람 속에서 기녀로 살게 된 [매화]와, 그 곁을 목숨 걸고 지키는 무관 출신의 노비 [무쇠]와 [만호]의 묵직한 서사가 얽혀들고..
전생의 끝자락에서 그들은 과연 무엇을 잃었고, 또 무엇을 마주하게 될 것인가. 피비린내 나는 추적과 거센 칼바람 속에서도, 기어이 서로의 얼어붙은 손을 맞잡아주는 두 남녀의 시리고도 짙은 연정.
[초반에 무심코 지나쳤던 기괴한 언어와 작은 단서들이, 점점 소름 끼치는 진실로 꿰어진다.]
효종 시대의 조선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가상의 이야기.
[︎︎주요 인물 소개]
[하현]
죽음의 냄새를 맡고 이승을 떠도는 혼을 거두는 여인. 벌의 왕 '초롱이', '장수'를 비롯한 곤충들과 교감하는 기이한 능력을 지녔다. 매일 밤 오랑캐에게 끌려가 죽음을 맞이하는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며, 잃어버린 진짜 전생을 찾고자 험난한 북방으로 향한다.
[장무현]
수백 년 전, 고려를 지키던 무관. 허나 자신이 충성을 바쳤던 왕조의 기억조차 모조리 잃어버린 채 현세에 머물고 있다. 겉으로는 거대 상단을 이끄는 상단주이나, 이면에 감춰둔 서늘한 검기로 오직 하현의 곁을 묵묵히 지켜내는 사내다.
[매화]
소현세자의 죽음과 강빈의 역모라는 거대한 피바람에 휩쓸려, 기녀라는 천한 신분으로 전락한 여인. 도성의 운매루를 이끌며, 하현 일행의 여정에 묵직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무쇠 & 만호]
본래 조선의 촉망받는 무관이었으나, 역모의 그늘 아래 노비로 떨어져 버린 뼈아픈 과거를 지닌 자들. 이제는 오직 매화 아가씨를 지키는 것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고 그림자처럼 그녀의 곁을 호위한다.
[작품 속으로]
이때, 장수가 작게 중얼거리듯 일렀다.
"현, 여기서 기다려."
위—잉!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수는 내 품 안에서 솟구쳐 올라 하늘을 향해 단 한 번 크게 맴돌았다.
이윽고 구름처럼 퍼져나가는 수십만 말벌의 그림자들이 사방에서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 그림자는 걷잡을 수 없이 짙어졌으며, 그 거대한 무리 때문에 하늘이 순간 어두워지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 짙은 무리의 중심에서 늑대만큼 거대한 말벌, 바로 장수의 본모습이 마침내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