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명이 죽었다.
그날 밤, 황해 평원의 캐러밴에서. 살아남은 자는 없었다.
빙하기가 삼킨 14억의 무덤 위로 솟아오른 새 대륙, 순다랜드.
그곳에서 살아남은 일부는 등에 촉수를 키웠다.
서로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다시는 누구도 버리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진화인'들. 반면 강철 요새 '쉘터'에 웅크린 순수 인간들은 그들을 괴물이라 부르며 100년 동안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30년 전, 피비린내 나는 역사 끝에 두 세계는 마침내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지금, 그 협정이 처음으로 깨졌다.
시신 111구. 실종 7명. 참혹한 현장에는 오직 쉘터의 레일건 탄자만이 굴러다녔다.
누군가 증거가 발견되기를 간절히 기다렸다는 듯, 모든 것이 숨 막히도록 완벽하게 조작된 학살.
쉘터의 베타 유닛 중위, 이한에게 주어진 임무는 단순했다. 진실을 밝히고 전쟁을 막아라. 하지만 그는 곧 깨닫는다. 9년 동안 62%로 고정되어 있던 자신의 강화복 출력이, 체제가 그의 목에 채워둔 '목줄'이었음을.
자신이 목숨 걸고 지켜온 쉘터가 인류의 마지막 보루가 아니라, 거대한 사냥터의 철문이었음을.
오빠를 찾아 평원을 헤매던 진화인 지우에게도 선택지는 없었다. 영하 36도의 빙하지대 한복판, 그녀가 쉘터 군인의 맨얼굴에 처음 촉수를 가져다 댄 순간 깨달은 진실. 진짜 적은 따로 있으며, 강철 껍데기 속의 저들 역시 우리만큼이나 겁에 질려 있다는 사실을.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었던 두 사람은 마침내 같은 결론에 닿는다. 이 학살은 우연이 아니다. 누군가 30년 동안 이 완벽한 덫을 설계해왔다. 평화 협정 그 자체가, 이미 거대한 사냥이었다.
빙하 밑 깊숙이 봉인된 시설 '오메가'. 120년간 아무도 몰랐던 그곳에서, 살아있는 자들의 신경망을 옭아매는 끔찍한 실험이 오늘도 숨 쉬고 있다. 이한과 지우는 그것이 함정인 줄 알면서도 기어이 그 문을 열어젖힌다.
믿지 못하는 자들끼리 손을 잡는 유일한 방법은, 같은 방향으로 총구를 돌리는 것뿐이니까.
당신이 알던 디스토피아는 잊어라. 이것은 완벽하게 통제된 세계가 처음으로 자기 그림자에게 덜미를 잡힌 순간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이제 막 깨어났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