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기둥의 아이들 ㅡ 프롤로그. 내 이야기
안녕?
반말로 시작할게.
반말이 불편하면 미안해.
그런데 아무도 내 이야기를 읽어 주지 않아서 말이야.
그냥 이번엔 내가 편한 말로 하려고.
나는 계한울이야.
이 이야기는 내 이야기야.
전부 그대로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전부 지어냈다고 해도 거짓말이야.
이름은 바꿨어.
학교도 바꿨어.
사람도 바꿨어.
몇몇 일들은 소설이 되려고 조금씩 모양을 바꿨어.
그런데 아팠던 건 진짜야.
넘어졌던 것도 진짜고.
도망가고 싶었던 것도 진짜고.
지고 나서 천장만 보던 것도 진짜야.
그리고 내가 본 것들도 진짜야.
아이돌이 된 아이들.
기자가 된 아이들.
메달리스트가 된 아이들.
국군체육부대로 간 아이들.
선수촌에 들어간 아이들.
그리고 너무 빨리 별이 된 아이들.
진짜 엘리트 체육의 이야기.
진짜 운동부의 이야기.
진짜 선수촌의 이야기.
진짜 국군체육부대의 이야기.
진짜 유도의 이야기.
그리고 약물 이야기도.
어떻게 아냐고?
봤으니까.
누가 썼는지는 말하지 않을 거야.
말할 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
나는 누군가를 죽이려고 이 이야기를 쓰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없었다고 말하지도 않을 거야.
스테로이드.
이뇨제.
체중을 빼기 위한 이상한 방법들.
몸을 억지로 바꾸려는 유혹들.
나는 그런 게 다른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어.
뉴스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더라.
실업팀에서 밀리고.
방출 위기에 몰리고.
국제대회에 나갈 성적은 안 나오고.
나이는 차고.
몸은 망가지고.
뒤에서는 누군가가 아직 할 수 있다고 속삭이면.
그 유혹이 정말 없을까?
나는 그런 걸 모를까?
몰라서 말 안 하는 게 아니야.
너무 잘 알아서 무서운 거야.
선수는 늘 깨끗하게 이기고 싶어 해.
그런데 세상은 가끔 깨끗하게 지는 사람보다, 더럽게라도 버티는 사람을 먼저 살려 둬.
그게 무서웠어.
그리고 더 무서운 건, 그걸 어른들이 모를 리 없다는 거였어.
어떤 아이들은 자기 실력으로 지는 게 아니었어.
어떤 아이들은 어른들의 계산 때문에 밀렸고.
어떤 아이들은 파벌 때문에 밀렸고.
어떤 아이들은 돈 때문에 밀렸고.
어떤 아이들은 말 한마디 잘못해서 밀렸고.
어떤 아이들은 너무 착해서 밀렸어.
그리고 나중에는 그 모든 게 열등감이라는 말로 포장됐어.
네가 못해서 그래.
네가 약해서 그래.
네가 더 독했어야지.
정말 그랬을까?
정말 아이들이 부족해서만 꿈을 접었을까?
나는 그 질문을 오래 품고 살았어.
다른 종목의 금메달리스트가 세상 앞에서 말을 꺼냈듯이.
유도의 전설들이 자기 자리에서 밀려나면서도 말을 했듯이.
비운의 천재들이 끝까지 자기 이름을 증명하려 했듯이.
나는 이 이야기 안에 그런 것들을 모두 섞을 거야.
다만 실명으로 누군가를 찌르지는 않을 거야.
학교 이름도 바꾸고.
사람 이름도 바꾸고.
사건의 모양도 바꿀 거야.
그런데 그 안에 있던 진짜 냄새는 숨기지 않을 거야.
땀 냄새.
피 냄새.
락커룸 냄새.
사우나에서 빠지던 물 냄새.
도복에 밴 세제 냄새.
계체장 앞에서 말라가던 입술.
선수촌 복도에 깔리던 침묵.
실업팀 방출 명단 앞에서 굳던 얼굴.
그리고 아이들이 부러지는 소리.
그걸 다 적을 거야.
사실 두려워.
이런 걸 모두 적는다는 게.
혹시 누군가가 알아볼까 봐.
혹시 누군가가 화낼까 봐.
혹시 내가 본 것을 봤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될까 봐.
그런데 현실은 말해야 하잖아.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
계속 아이들만 부러지잖아.
나는 출발선부터 달랐어.
어머니가 없었고, 집에는 돈이 없었어.
아버지는 늘 일에 치여 있었고, 나를 세세하게 챙길 여유가 없었어.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야.
그냥 살아내느라 바빴던 거야.
좋은 도복.
좋은 추리닝.
좋은 신발.
그런 건 나한테 사치였어.
나는 대단한 걸 바란 적 없어.
그냥 평범한 것.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입고, 신고, 들고 다니는 것.
그런 게 하나쯤 있었으면 했어.
그런데 운동부에는 나 같은 아이만 있었던 게 아니야.
나랑 비슷한 아이도 있었고.
나랑 정반대인 아이도 있었어.
매일 일등을 하다가 한 번 삼등을 하면 실망받는 아이도 있었고.
자기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은데, 집안 이름이 먼저 앞에 서는 아이도 있었어.
돈이 없어서 밀리는 아이도 있었고.
돈이 많아서 자기가 어디까지 자기 힘인지 모르는 아이도 있었어.
그 아이들이 다 나빴냐고?
아니.
다 나쁘진 않았어.
나빠야만 살아남는 아이도 있었고.
나쁘게 굴어야 한다고 배운 아이도 있었어.
그리고 어떤 아이들은 착했어.
너무 착했고.
너무 여렸어.
그래서 오래 버티지 못했어.
친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있어.
같은 학교를 다니고, 같은 복도를 지나가고, 같은 운동장을 밟다 보면 보여.
쟤가 어떤 애인지.
쟤가 진짜 나쁜 애인지.
아니면 그냥 살아남는 법을 몰랐던 애인지.
나는 그런 아이들을 기둥이라고 부르고 싶었어.
가족이 기대고.
학교가 기대고.
팀이 기대고.
꿈이 기대고.
자기 자신마저 자기한테 기대고 있던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어느 날 부러져.
소리 없이.
아무도 제대로 보지 않는 곳에서.
그런데 이상하게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아.
부러졌는데도 버텨.
금이 갔는데도 서 있어.
무너진 줄 알았는데, 다음 날 다시 매트 위에 올라와.
나는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해.
부러졌지만 부서지지 않은 아이들.
망가졌지만 끝나지 않은 아이들.
수능 한 번 망쳤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잖아.
시합 한 번 졌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고.
선발전에서 떨어졌다고.
누군가에게 무시당했다고.
가난하다고.
느리다고.
늦었다고.
그걸로 전부 끝나는 건 아니잖아.
그게 다 경험이고.
그게 다 상처고.
그게 다 다시 일어나는 힘이 되기도 하잖아.
나는 가난 때문에 가지고 싶은 게 많았어.
힘이 없어서 이기고 싶은 게 많았고.
무시당해서 증명하고 싶은 게 많았어.
그 갈망이 나를 키웠어.
나를 망가뜨리기도 했고.
다시 일으키기도 했어.
그리고 소설 속의 나는 올림픽 금메달을 땄어.
현실의 내가 딴 건 아니야.
그건 각색된 계한울의 몫이야.
하지만 그 금메달까지 가는 길에 박힌 통증은 진짜야.
도복 냄새도 진짜고.
매트에 등이 닿던 느낌도 진짜고.
누군가 나를 내려다보던 눈빛도 진짜야.
나는 중학교 1학년 시절부터 이 이야기를 쓰려고 했어.
처음에는 그때부터 시작했어.
그런데 생각해 보니 유도를 모르는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겠더라.
왜 이 아이가 이렇게까지 유도에 매달리는지.
왜 지는 게 그렇게 아픈지.
왜 가난이 그냥 배고픈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작게 만드는 일인지.
그래서 앞부분을 새로 썼어.
조금 느릴 수도 있어.
처음부터 불타오르는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어.
그런데 뿌리가 있어야 나무가 서잖아.
기둥이 왜 부러졌는지 알려면, 그 기둥이 처음 어디에 세워졌는지도 봐야 하잖아.
빠르게 보고 싶은 사람은 12화나 14화부터 봐도 좋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신화영재중고교 이야기가 시작돼.
유도부.
아이돌부.
공부반.
가난.
권력.
재능.
질투.
사랑.
배신.
그런 것들이 한곳에 모이기 시작해.
처음부터 보고 싶은 사람은 1화부터 봐줘.
한 아이가 왜 그런 눈을 하게 됐는지.
왜 그렇게 이를 악물게 됐는지.
왜 그렇게 지는 걸 싫어하게 됐는지.
그걸 볼 수 있을 거야.
공지는 부록처럼 만들어 놨어.
유도 규칙이 궁금한 사람.
학교 구조가 궁금한 사람.
인물 관계가 궁금한 사람.
그런 사람들은 참고하면 돼.
몰라도 읽을 수 있게 쓰려고 했어.
나는 대단한 천재 이야기를 쓰려는 게 아니야.
처음부터 모두를 이기는 괴물 이야기도 아니야.
유도를 잘하지 못했던 아이가.
많이 지고.
많이 울고.
많이 부러지고.
그래도 끝까지 뭔가를 붙잡는 이야기야.
유도도 같고.
아이돌도 같고.
공부도 같아.
결국 사람은 자기가 가진 몸으로, 자기가 가진 조건으로, 자기가 가진 상처로 싸워.
누군가는 앞에서 시작하고.
누군가는 뒤에서 시작해.
누군가는 좋은 신발을 신고 뛰고.
누군가는 피가 나는 발로 뛰어.
그래도 뛰어야 하는 아이들이 있어.
나는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해.
부러진 기둥들의 이야기.
그리고 아직 부서지지 않은 아이들의 이야기.
어설픈 스포츠 이야기는 아니야.
내가 몸으로 겪었고.
눈으로 봤고.
아직도 잊지 못하는 유도 이야기야.
진짜 스포츠의 밑바닥.
진짜 운동부의 냄새.
진짜 아이들이 부러지는 소리.
아이돌이 된 아이들의 뒷모습.
메달리스트가 된 아이들의 침묵.
선수촌에 들어간 아이들의 무게.
국군체육부대로 간 선수들의 시간.
그리고 별이 된 아이들의 이름까지.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지는 않을래?
한번 들어와 봐.
내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