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살려달라 비는 대신들을 보고 있자니 기어이 실소가 터져 나왔다.
"과인이 어찌하여 그 부탁을 들어주어야 하는 것이냐."
아니, 그 이전에.
"네놈들 따위가, 감히 과인에게 자비를 바랄 위치라 생각하는가?"
제 어미를 죽이는 데에는 한 점 거리낌 없던 주제에.
정작 제 목숨들이 걸리니 역겹기 그지없는 양면성을 내보이는구나.
그렇게 자신의 첫번째 삶은 핏물로 궁전을 씻어내리는데 쓰였다.
그리고 요괴와 척사(斥邪)가 날뛰는 작금의 현생에 이르러.
칼끝이 어미의 가슴 죽지를 파고들기 시작할 무렵.
그 몸이 떨리며, 짧은 대답이 흘러나왔다.
“...네가 지상 모든 인간의 시체로 만들어진 왕위에 오르는 장면을 보았다.”
“그것이 제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기묘한 웃음과 함께 그녀의 얼굴을 으스러지게 잡길 잠시.
“정녕 이 가엾은 아들을 죽일 동기라는 것이.”
고작 그런 단편적인 것에 불과했던 것입니까.
“그렇다면.”
끝끝내 미련스레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으며.
“지난 시간 당신에게 사랑을 갈구한 이 사람의 꼴이 몹시 우스워지지 않습니까.”
칼이 점차 가슴을 뚫고, 박동 치는 심장을 향해 파고 들어간다.
뚝. 뚝.
손끝을 타고 흘러, 점차 피어오르는 붉은 꽃망울.
이어, 대답 없이 자신을 응시할 뿐인 어미의 눈이 죽어가기 시작한다.
이윽고.
그녀의 숨이 멎는 순간이 되어서야, 이훤은 나른히 제 옷에 묻은 피를 닦았다.
이토록 세상이 자신을 저주한다면.
"과인은 지금부터 진정으로, 이 세상의 왕이 되어볼 생각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