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헌터 시험에 칠 년 낙방한 일당 구만 원짜리 짐꾼이었습니다. 각성해서 얻은 능력은 전투가 아니라 통역이었고, 그 귀 하나로 고블린 갱도의 밀린 임금을 받아 내고, 리자드맨의 백 년 교리 전쟁을 끝내고, 각국 정상 앞에 앉았습니다. 본인은 끝까지 통역만 했다고 주장합니다.
8월 13일에 40화로 완결했습니다. 아래는 17화입니다. 삼천 년 산 흑룡에게 이름 한 조각을 받고, 그 힘을 쓰는 법을 배우는 첫 수업입니다.
━ 17화 발췌 ━
모레의 수업에서, 카르낙스는 이름 쓰는 법부터 가르쳤다.
『불러 보아라. 힘이 오는 걸 느끼되, 통째로 부르지는 마라. 손끝만.』
나는 혀 밑에 얹힌 이름을 불렀다. 소리로는 옮길 수 없는 그 이름을, 뜻째로 입에 담았다. 높이 나는 검은 것. 홀로 우는 것.
살갗이 서늘해지고, 오른쪽 팔뚝에 검은 비늘 한 겹이 섰다. 손끝에 열이 모였다. 흑염의 편린. 세상이 또렷해져서 백 걸음 밖 나뭇잎의 결이 보였다. 용의 눈이 내 눈에 겹친 거였다.
그리고 회선이 열렸다.
『—그래서 말이다, 삼천 년 전에 서리 고원에서 흰바람 놈들과 셈을 할 때에.』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쏟아졌다. 카르낙스의 입은 닫혀 있는데, 말은 내 두개골 안쪽에서 울렸다. 대여료였다.
『흰바람의 우두머리가 하는 말이, 능선 셋을 내놓으라는 거다. 능선 셋을! 그것도 짐이 손수 쌓은 능선을. 그때 짐이 뭐라 했는지 아느냐. 짐이—』
"스승님. 지금 이거, 훈련 중인데요."
『듣는 게 대가라 했다. 회선이 열린 값이다. 손끝의 불을 유지하려면 계속 들어라.』
실험을 해 봤다. 넋두리를 흘려듣자 손끝의 불이 사그라들었고, 다시 귀를 기울이자 돌아왔다. 힘의 세기가 경청의 성실함에 정확히 비례했다. 무기가 아니라 효도였다.
나르에게는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부관 눈에 보이는 건, 팔에 비늘이 돋은 인간이 허공에 대고 "네, 네" 하는 모습뿐이었다.
『졸음도 아닌데 감점 사유가 하나 더 생긴 듯합니다.』 나르가 돌판을 들었다. 『넋두리 중 딴생각. 감점.』
"그런 칸이 언제 생겼어요!"
『방금 만들었습니다.』
"부관님. 저 지금 훈련 중이잖아요. 힘 쓰는 중에 딴생각을 어떻게 안 합니까."
『주군의 말씀 중 딴생각은, 힘의 문제가 아니라 예의 문제입니다.』 나르가 새 칸에 무언가를 새겼다. 『예의는 훈련 중에도 유효합니다.』
부관은 스승을 정확히 닮아 가고 있었다.
넋두리는 주제를 바꿔 가며 이어졌다. 흰바람 다음은 보물이었다.
『그리고 저 서편 세 번째 더미의 왕관 말이다. 저건 대륙 남쪽 왕이 짐에게 조공한 것인데, 세공이 아주 정교해서—』
"아, 예쁘네요."
내가 무심코 대답했다. 손끝의 불이 반짝 살아났다. 카르낙스가 흡족해했다.
『그렇지? 삼백 년간 아무도 예쁘다 해 준 적이 없었다.』
"그 좋은 걸 왜 삼백 년간 아무도 안 봤대요."
『보긴 봤다. 값을 셌지. 다들 저게 얼마짜리인지만 봤다. 예쁘다고 한 건 네가 처음이다.』
『그리고 저 왼편의 갑주는 말이다—』
"그것도 예쁩니다."
『아직 보지도 않았잖느냐.』
"보나 마나요. 스승님 거는 다 사연이 있으니까요. 사연 있는 건 다 예쁩니다."
회선 저편에서 잠깐 말이 끊겼다. 그리고 다시 이어졌는데, 아까보다 목소리가 조금 낮았다. 감동을 들키지 않으려는 낮춤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안다.
나는 비늘을 두른 채 삼천 년 묵은 보물 자랑에 추임새를 넣고 있었다. 힘이 셀수록 리액션이 성실해야 하는 무기라니. 세상에 이런 사기 계약이 없었다.
그날 나는 흰바람 우두머리의 무례를 삼천 년 뒤에 대신 분개해 주면서, 팔뚝의 비늘을 한 시간 동안 유지했다. 수업이 끝날 무렵, 카르낙스가 흡족하게 말했다.
『잘 들었다. 오늘 힘도 잘 섰다. 둘은 같은 말이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인류 최강의 대여 무기를 쓰려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성실한 청자가 되어야 했다. 스승님은 무기를 준 게 아니라, 하소연을 영구 구독하게 만든 거였다.
━ 발췌 끝 ━
이 작품에서 힘은 전부 남에게서 옵니다. 오우거가 새겨 준 인장, 흑룡이 맡긴 이름 한 조각. 그래서 힘을 쓰려면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관계를 유지한다는 건 위 발췌처럼 삼천 년 묵은 보물 자랑에 성실하게 추임새를 넣는 일입니다.
이런 분께 권합니다.
- 강해지는 방식이 수련이 아니라 관계인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 위 발췌에서 손끝의 불은 주인공이 딴생각을 하면 꺼지고, 다시 들으면 살아납니다.
- 주인공만 빼고 전부 오해하는 구도를 좋아하시는 분. 하는 일은 매번 통역뿐인데, 인간 쪽에서는 은둔 최강자가 되고 몬스터 쪽에서는 교주가 됩니다. 본인은 끝까지 부인합니다.
- 완결부터 확인하고 시작하시는 분. 전 40화가 이미 올라와 있습니다. 연재 중단도, 텀도 없었습니다.
『E급 통역사인데 자꾸 최강으로 오해받음』 — 전 40화 완결
처음부터 보실 분은 1화로, 위 장면부터 궁금하신 분은 17화로 가시면 됩니다. 완결작이라 급할 것 없습니다. 선호작에 담아 두고 편하실 때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