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주시는 열 분에게 소소하지만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이 글에서 프롤로그가 너무 중요한 장치인데 10화 이상 연재한 지금도 고민이 많습니다.
1. 원본 형태는 18,000자 정도 되기 때문에 여기에 올릴 수 없어서 연재로 올렸습니다.
2. 문피아 느낌을 반영해서 긴장감을 먼저 주는 프롤로그 형태도 작성했습니다.
3. 원본 프롤로그의 진행을 따라가면서 절반 이상 줄인 프롤로그도 있습니다.
주변 지인 몇 명에게 보여줘도 다들 의견이 갈리는데 문피아에서 웹소설을 주로 읽는 분들은 어떤 버젼이 그나마 읽기 편하실지 알 수가 없네요.
의견을 남겨주실 때 E-mail. 주소도 함께 남겨주시면 작지만 마음을 담은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형님들, 문린이가 앞으로도 계속 연재할 수 있도록 큰 도움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ㅠㅠ
1. 프롤로그
연재글에 있습니다.
2. 프롤로그
학교 수업이 마쳤다. 중학교 옥상 위에는 오로지 평범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차가운 바람이 교복 셔츠 안으로 파고들었다.
평범은 천천히 옥상에 난간 쪽으로 걸어갔다. 평범은 몇 개월 째 반 아이들에게 심각한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처음 시작은 체육 선생님이었다. 할머니가 꿰매 준 양말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체육 시간에 아이들 눈을 피해 가장 뒤에 서서 운동화를 갈아 신을 때였다.
마침 그 모습을 체육 선생님이 뒤에서 보게 되었다.
“요즘 세상에도 양말을 꿰매 신는 애가 있네! 평범아, 양말 정도는 웬만하면 사서 신어라.”
선생님의 우렁찬 목소리 덕분에 아이들은 평범의 흰 양말이 검은 실로 꿰매진 걸 보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양말을 손가락질 하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날 이후였다. 애들은 평범을 만만하게 보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야, 평범이 양말 검사.”
“오늘도 꿰맸냐?”
처음에는 양말이었다. 그다음은 낡은 운동화, 작은 교복까지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평범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덩치가 작은 평범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더 노골적으로 괴롭혔다. 아이들의 비웃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뒤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할머니가 시장에서 장사를 한다는 이유로 평범을 괴롭혔다.
어려운 책을 읽는다거나 수학 시간에 만점을 받는 것도 괴롭힘의 이유가 되었다. 평범은 이제 왕따의 원인을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체육 선생님의 놀림 앞에는 자신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떠난 아버지가 있었고, 집을 나간 어머니가 있었다. 그렇게 계속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자신이 태어난 것까지 원인으로 삼아야 할 것 같았다.
난간 앞에 서서 운동장을 내려보았다.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공 하나를 따라 스무 명이 넘는 학생들이 움직였다. 누군가는 패스를 달라고 소리쳤고, 누군가는 공을 빼앗긴 친구에게 화를 냈다.
평범은 한동안 그 모습을 내려다봤다. 문득 연습장에 적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사람은 공보다 마음을 쫓는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아이들은 작았다. 저렇게 작은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누군가 신발 보관함에 종이 조각과 함께 낡은 양발을 잔뜩 넣어놓았다. 종이에는 ‘평범이 후원 물품’ 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화장실을 갔다 왔는데 배식받은 식판이 없어졌다.
가방을 운동장 뒤편 쓰레기장에서 찾은 적도 있었다.
체육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교복 셔츠 뒤편에 ‘거지’라는 글자가 매직으로 쓰여 있었다.
자신이 교실로 들어오는 순간 아이들이 조용해졌다가 자리에 앉으면 다시 웃음이 터졌다.
사실 옥상문에 자물쇠가 풀려있다는 사실도 아이들이 숨겨놓은 운동화를 찾으러 다니다가 알게 되었다.
그 모든 일들이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졌다.
고등학교만 진학하면 이 모든 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남아있는 세 학기를 더 버틸만큼 힘이 남아 있지도 않았다.
바람에 섞인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평범은 시선을 돌렸다. 멀리 문수동의 아파트들이 보였다. 그중 어딘가에 자신의 집이 있었다. 조금 더 멀리에는 할머니가 도라지를 팔고 있을 시장이 있었다.
오늘 아침에 할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할미가 양말 하나 사줄까?”
조끼 주머니를 뒤져 구겨진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던 거친 손이 떠올랐다. 할머니가 준 천 원은 식탁 위에 그대로 올려두었다.
며칠 동안 무릎이 아프다며 파스만 붙이던 할머니가 병원에 가길 바랐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버티기 힘들었지만 옥상에 있는 지금이 오히려 마음은 평화로웠다.
이상할 정도로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가방에서 낡은 연습장을 꺼냈다. 종이는 구겨져 있었고 군데군데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점심 시간에 아이들이 빼앗아 교실 밖으로 던졌던 연습장이었다.
평범은 첫 장을 펼쳤다.
‘나는 누구인가?’
몇 장을 넘겼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나는 존재하는가?’
다음 장을 펼쳤다.
‘한 사람의 말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또 다음 장을 펼쳤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과연 나는 존재했던 걸까?’
평범은 한동안 그 문장을 바라봤다. 책을 읽을수록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답은 늘어나지 않고, 질문만 늘어났다.
불교책에는 모든 일이 원인과 조건에 의해 일어난다고 적혀 있었다. 양자역학은 관측하기 전에는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고, 관측하는 순간 결과가 정해진다고 쓰여 있었다.
평범은 그 말들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모든 것에 원인과 조건이 있다면,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관측되지 않았다면 다른 결과가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살아 있는 평범이 있었다. 그리고 죽은 평범도 있었다.
교실로 돌아가는 평범이 있었고, 난간을 넘어가는 평범도 있었다.
아직은 어느 것도 확정되지 않았다.
평범은 연습장을 천천히 넘겼다. 예전에 적어놓았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세계를 품고 살아간다.’
평범은 볼펜을 꺼냈다. 그 아래에 처음으로 답을 적었다.
‘그렇다면 내 세계는 여기까지다.’
손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한 문장을 더 적었다.
‘관측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면, 결과를 선택하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
평범은 연습장을 덮었다. 가방 위에 올려놓았다. 누군가 옥상에 올라오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후.......”
길게 숨을 내쉬었다. 난간 가까이 다가갔다.
한쪽 발을 올렸다. 무서웠다. 평범은 자신이 정말 죽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죽고 싶은 마음과 무서운 마음이 동시에 존재했다.
그때, 난간 위로 새 한 마리가 날아갔다.
평범은 그 모습을 바라봤다.
자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새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지는 것과 자유로워지는 것은 다른 일일지도 몰랐다.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나?”
평범은 정말 말하고 싶었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아이들이 무섭다고, 누군가 웃는 소리만 들어도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도 없어.”
할머니가 양말을 꿰매던 거친 손이 떠올랐다. 자신이 학교에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게 되면 할머니는 분명 자기 탓이라고 할 것이다.
그것만큼은 싫었다. 난간 위에 서 있던 평범의 발이 조금 흔들렸다. 내려가고 싶었다.
그 순간, 뒤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양말 거지, 거기서 뭐 해?”
평범이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누군가 실제로 말한 것인지, 머릿속에서 들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평범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난간 위로 완전히 올라섰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마지막 순간에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라지면 세상은 계속 존재할까?’
‘아니면 나와 함께 끝나게 될까?’
혼자 남을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왕이면 후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범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발끝이 난간에서 떨어졌다.
순간 세상이 뒤집혔다. 하늘이 아래로 내려갔다. 운동장이 위로 올라왔다.
바람 소리가 귀를 가득 채웠다.
곧이어 몸이 커다란 나뭇가지에 부딪혔다. 굵은 가지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졌다.
평범의 몸이 한 차례 튕겨 나갔다. 허공에서 방향을 잃었다. 그리고 화단 위로 떨어졌다. 붉은 꽃잎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조금 늦게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평범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가 곧 사라졌다.
주변의 소리가 멀어졌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물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희미해졌다.
잠시 뒤, 사이렌 소리와 함께 여러 사람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학생, 들려요?”
“호흡 확인해!”
“경추 고정!”
누군가 평범의 머리를 양손으로 잡았다. 평범은 눈을 뜨려고 했다. 잘 보이지 않았다.
붉은색 구조복을 입은 사람들이 주변에서 움직였다.
그중 한 남자가 평범의 얼굴 가까이 몸을 숙였다. 구조 헬멧을 쓴 남자였다.
“학생, 정신 차려요!”
평범은 대답하지 못했다. 남자가 다시 말했다.
“내 말 들려요?”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무섭지 않았다.
평범은 마지막 힘을 다해 눈을 떴다. 흐릿한 얼굴이 보였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죽기를 선택한 자신을 끝까지 살리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남자의 가슴에 달린 이름표가 보였다. 강도진이었다.
평범은 그 이름을 읽으려고 애썼다.
“학생 괜찮아요. 내가 옆에 있어요.”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정신 차리고 절대 잠들지 말아요!”
분명 괜찮지 않은데 그 사람은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도 거짓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평범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조금만 더 이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시야가 어두워졌다. 마지막까지 보였던 것은 강도진의 얼굴이었다.
삐.
삐.
삐.
멀리서 심장 소리가 들렸다. 소리 사이의 간격이 점점 길어졌다.
의식이 사라지기 직전, 평범은 마지막 질문을 떠올렸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 일은 일어났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또 하나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누군가 보고 있는 지금의 나는 살아 있는 걸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빛이 사라졌다. 소리도 사라졌다.
평범의 의식이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슬프게도 세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선생님들도 퇴근했다.
앰뷸런스의 사이렌은 여수의 도로를 가로질렀다. 그 시간,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는 시장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도라지를 다듬고 있었다.
사이렌 소리가 시장 골목 위로 길게 지나갔다. 할머니는 천천히 허리를 일으켰다.
“아구구구.......”
굽은 허리를 두드리며. 멀어지는 앰뷸런스를 잠시 바라봤다.
“우리 강아지도 이제 학교 끝났겠네.”
다른 사람들에게는 금방 잊힐 평범한 하루였다. 모든 사람들 가운데 오직 평범에게만 허락되지 않은 평범한 하루였다.
다음 날 아침 여수의 바다 위로 다시 해가 떠올랐다.
국동항에는 어선들이 들어왔다. 문수동의 아파트에는 하나둘 불이 켜졌다.
다음 날 학교 옥상의 자물쇠가 새걸로 바뀌었다.
그리고 평범이 없는 세상에서도 새로운 하루는 시작되고 있었다.
3. 프롤로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수학 문제를 푸는 것보다 어려웠다.
수학 문제는 아무리 복잡해도 답이 있었다. 조건을 하나씩 정리하고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하나의 답에 도착했다.
하지만 사람은 달랐다. 같은 말을 들어도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상처받았다. 어제까지 친하게 지내던 아이가 오늘은 눈을 피했고, 평소에는 웃고 넘기던 농담이 어느 날에는 싸움의 이유가 됐다.
평범은 늘 그것이 궁금했다.
사람의 마음에도 공식이 있을까?
모든 조건을 알 수 있다면 누군가의 다음 행동도 계산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친구들에게 해본 적은 없었다.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쉬는 시간에 사람의 마음에도 공식이 있는지 묻는다면 다음 날부터 별명이 하나 더 생길 것이 분명했다.
이름만으로도 충분했다.
이평범.
아빠는 특별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 무사하고 평범하게 살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그 말을 해준 아빠는 오래전에 집을 나갔다.
엄마는 다른 도시에서 살았다. 가끔 전화가 왔지만 통화는 늘 짧았다.
“밥 먹었어?”
“응.”
“학교는 잘 다니고?”
“응.”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응.”
전화를 끊으면 엄마 목소리가 잠시 머릿속에 남았다가 곧 사라졌다.
그래도 평범에게는 할머니가 있었다. 둘은 여수 문수동의 오래된 주공아파트에서 살았다. 겨울이면 창문 틈으로 바람이 들어왔고,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베란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졌다.
할머니는 물이 떨어지는 자리에 대야를 놓으며 말했다.
“집도 늙으면 오줌을 못 참는다.”
“할머니도 우리 집처럼 그래?”
“나는 아직 멀었다.”
“대야 하나 더 사둘까?”
“말대꾸하는 거 보니 밥을 덜 먹었네.”
할머니의 손이 평범의 등을 툭 쳤다. 평범은 웃었다. 가난했지만 집에서는 웃을 수 있었다.
새 물건이 필요하면 먼저 고쳐 쓸 수 있는지 살폈다. 운동화 밑창이 떨어지면 접착제로 붙였고, 점퍼 지퍼가 망가지면 안전핀을 달았다. 양말에 구멍이 나면 할머니가 실로 꿰맸다.
평범은 누군가 보기 전까지 그런 일이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들켜야 비로소 부끄러워지는 일도 있었다.
그날 아침도 그랬다. 체육 시간이 있는 수요일이었다. 평범은 신발보관함 앞에서 아이들이 모두 운동장으로 나가기를 기다렸다.
전날 밤 할머니가 흰 양말의 구멍을 검은 실로 꿰매놓았다.
“왜 흰 실로 안 하고 검은 실로 꿰맸어?”
“검은 실밖에 없다.”
“티 나는데.”
“발가락 안 나오면 됐지. 누가 니 발만 보고 다니냐?”
할머니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발만 보고 다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아이들 가장 뒤에 서서 실내화를 벗었다.
그때였다.
“어?”
뒤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체육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평범의 발을 내려다봤다.
“얘들아, 이거 봐.”
운동장으로 뛰어나가던 아이들이 하나둘 뒤를 돌아봤다.
“요즘 세상에도 양말을 꿰매 신는 애가 있네?”
평범은 급히 발을 뒤로 숨겼다. 이미 늦었다.
“평범아. 양말 정도는 웬만하면 사서 신어라.”
몇몇 아이가 웃었다. 누군가 평범의 발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진짜 검은 실로 꿰맸어.”
“저거 할머니 양말 아니야?”
웃음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평범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귀 안이 웅웅거렸다.
체육 선생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손뼉을 쳤다.
“그만 웃고 빨리 나가. 수업 시작한다.”
평범도 아이들을 따라 웃었다.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웃으면 자신도 그 농담을 받아들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평범은 축구를 하지 않았다. 운동장 구석의 큰 나무 아래에 혼자 앉아 아이들을 바라봤다. 스무 명이 넘는 학생이 공 하나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공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공을 잘 차는 아이를 바라보는 눈에는 부러움이 있었고, 패스를 받지 못한 아이는 공이 아니라 친구를 노려봤다. 큰소리를 내는 아이는 경기보다 사람들이 자기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평범은 연습장을 꺼냈다. 한 줄을 적었다.
‘사람은 공보다 마음을 쫓는다.’
잠시 뒤 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얼마 전 읽었던 양자역학 책에는 관측하기 전에는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고, 관측하는 순간 하나의 결과가 정해진다고 적혀 있었다.
평범은 자신의 양말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까지는 그저 구멍을 꿰맨 양말이었다. 선생님이 그것을 가리켰고 아이들이 보았다. 그리고 다같이 웃었다.
그 순간 양말은 부끄러움이 되었다. 평범은 연습장에 질문을 하나 더 적었다.
‘사람들이 나를 가난한 아이라고 보면 나는 가난한 아이가 되는 걸까?’
양말 사건 이후 아이들은 평범을 볼 때마다 발부터 봤다.
“야, 평범이 양말 검사.”
“오늘도 꿰맸냐?”
처음에는 양말이었다. 다음은 낡은 운동화였다. 그다음은 작은 교복이었다.
곧 부모님 이야기가 나왔다.
“쟤 엄마도 없잖아.”
“아빠가 버리고 갔다며.”
마지막에는 할머니까지 놀림의 대상이 됐다.
“시장 거지 할머니 손자.”
평범은 그때만큼은 화를 냈다.
“우리 할머니 거지 아니야.”
아이들은 더 크게 웃었다.
“거지새끼 화내는 거 봐.”
화내면 찔린다고 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인정했다고 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결과는 같았다. 시간이 지나자 이제 이유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평범이라서 놀렸다. 책을 읽으면 잘난 척한다고 했다. 수학 문제를 맞히면 재수 없다고 했다. 교실에 들어오면 아이들의 대화가 잠시 멈췄다가 자리에 앉으면 다시 웃음이 터졌다.
누구도 무엇이 웃긴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담임은 몰랐다 아니, 어쩌면 조금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담임은 평범을 불렀다.
“너 요즘 왜 그러냐?”
“네?”
“성적도 떨어지고. 무슨 고민 있어?”
평범은 잠시 생각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담임은 아이들을 부를 것이다. 아이들은 사과할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이 없는 곳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다.
평범은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친구들이랑은 잘 지내고?”
“네.”
담임은 안심한 듯 웃었다.
“그래. 중학생 때 친구가 평생 가는 거야.”
집에 돌아가면 할머니도 비슷한 질문을 했다.
“오늘 학교는 어땠노?”
평범은 언제나 같은 대답을 했다.
“평범했어.”
“친구들은?”
“잘 지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얼굴을 보면 거짓말이 쉬워졌다. 사실대로 말하면 할머니는 학교로 찾아갈 것이다. 아이들은 할머니의 굽은 허리와 낡은 옷을 보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양말을 꿰매준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만큼은 싫었다.
어느 날 평범은 연습장에 새로운 질문을 적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짓말하는 것도 사랑일까?’
며칠 뒤 아침, 신발보관함을 열자 낡은 양말이 수북하게 쏟아졌다. 그 사이에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평범이 후원 물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평범은 양말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또 며칠 뒤에는 연습장이 사라졌다.
점심시간에 교실로 돌아왔을 때 한 아이가 교탁 앞에서 연습장을 읽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교실에서 웃음이 터졌다. 아이가 다음 장을 넘겼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나는 존재하는가?”
더 큰 웃음이 터졌다.
“철학자 납셨네.”
“야, 우주도 좀 구해봐.”
평범은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돌려줘.”
아이는 연습장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왜? 좋은 말씀인데 같이 보자.”
연습장은 아이들의 손을 타고 교실 안을 날아다녔다. 마지막으로 연습장을 받은 아이가 창문을 열었다.
“야, 평범아.”
평범이 그 아이를 바라봤다.
“네가 안 보면 이 연습장도 존재 안 하냐?”
연습장이 창밖으로 날아갔다. 아이들이 웃었다. 평범은 창문 아래를 내려다봤다. 늘 혼자 앉던 큰 나무 아래에 연습장이 펼쳐진 채 떨어져 있었다.
바람에 페이지가 계속 넘어갔다. 평범은 화를 내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단 하나를 깨달았다. 사람들이 왜 자신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해한다고 덜 아픈 것도 아니었다. 그 뒤로 일은 더 심해졌다.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식판이 사라졌다. 가방을 운동장 뒤편 쓰레기장에서 찾은 적도 있었다.
체육 시간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는 교복 셔츠 뒤에 검은 매직으로 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거지.’
평범은 화장실 세면대에서 셔츠를 비누로 문질렀다. 글자는 지워지지 않았다. 검은색만 주변으로 번졌다.
문득 거울에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마른 몸과 팔에 남아 있는 다른 색깔들의 멍들, 그리고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이 있었다. 평범은 문득 생각했다.
‘거울 속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손을 들었다. 거울 속 아이도 손을 들었다. 평범은 잠시 어느 쪽이 먼저 움직였는지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에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배가 아파.”
할머니에게 거짓말했다. 할머니는 시장에도 가지 않고 죽을 끓였다. 점심이 지나자 평범은 더 견디기 힘들어졌다.
자기 때문에 할머니가 하루 장사를 포기했다는 사실이 학교에 가는 것보다 더 괴로웠다. 결국 가방을 들었다.
“이제 괜찮아. 오후 수업은 갈게.”
할머니가 현관까지 따라나왔다.
“평범아.”
“응?”
“학교에서 무슨 일 있나?”
평범은 멈췄다. 그날만큼은 정말 할머니에게 말하고 싶었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아이들이 무섭다고,
누군가 웃으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고,
이제는 누가 자신을 바라보기만 해도 먼저 눈을 피하게 된다고,
하지만 할머니의 손이 보였다. 도라지 껍질과 흙물이 배어 거칠어진 손, 그 손이 검은 실로 양말을 꿰매던 모습이 떠올랐다.
평범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도 없어.”
그날 밤 평범은 책을 읽지 못했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연습장을 펼쳤다.
‘사람은 왜 다른 사람을 괴롭힐까?’
다음 줄을 적었다.
‘한 사람의 말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평범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적었다.
‘선생님이 웃었다.’
‘그때부터 모두가 나를 웃어도 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체육 선생님에게 자신을 괴롭힐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그저 농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악의가 없다는 사실이 결과까지 없애주는 것은 아니었다.
한 사람의 말이 원인이 되었다. 아이들의 웃음이 조건이 되었다. 불교책에서 읽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이 모여 일어난다.’
평범은 그 아래 질문을 하나 더 적었다.
‘내가 사라지면 세상은 달라질까?’
마지막 질문이었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과연 나는 존재했던 걸까?’
평범은 볼펜을 내려놓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모든 것이 끝날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세 학기가 남아 있었다. 평범은 자신에게 그만큼 견딜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옥상 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이들이 숨겨놓은 운동화를 찾던 날이었다. 철문 틈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평범은 옥상 문을 열었다. 옥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날 평범은 난간을 넘지 않고 교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뒤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옥상을 떠올렸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장소,
아직 결과가 정해지지 않은 장소,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장소,
마지막 날도 특별한 일은 없었다.
새벽 다섯 시에 할머니는 평소처럼 시장에 가지고 갈 도라지를 봉지에 나누어 담았다. 평범은 옆에 앉아 봉지 입구를 묶었다.
아침을 먹던 할머니가 물었다.
“오늘 체육 수업 있나?”
“응.”
할머니의 시선이 평범의 발로 향했다.
“할미가 양말 하나 사줄까?”
“갑자기?”
“전에 꿰맨 거 실이 풀렸더라.”
“다른 거 신으면 돼.”
할머니는 조끼 주머니에서 구겨진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
“오는 길에 하나 사라.”
“괜찮아.”
“사라면 사.”
할머니는 돈을 평범의 교복 주머니에 넣었다. 평범은 학교로 가기 전 천 원을 식탁 위에 다시 올려놓았다. 며칠 동안 무릎이 아프다면서도 병원에 가지 않는 할머니가 그 돈이라도 보탰으면 했다.
그날 학교에서는 수학 시험을 봤다. 평범은 백 점을 받았다. 마지막 문제를 맞힌 학생은 평범 하나뿐이었다.
수학 선생이 말했다.
“이 문제는 평범이 혼자 맞혔다.”
아이들의 시선이 모였다.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공부만 잘하면 뭐 하냐. 거지새낀데.”
평범은 못 들은 척했다. 백 점짜리 시험지를 가방에 넣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아이들이 교실을 빠져나갔다. 평범은 가방을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옥상의 철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철문을 밀었다. 차가운 바람이 교복 셔츠 안으로 들어왔다. 옥상에는 평범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난간까지 걸어갔다. 아래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공 하나를 따라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움직였다.
누군가는 패스를 달라고 소리쳤다. 누군가는 공을 빼앗긴 친구에게 화를 냈다.
평범은 한동안 그 모습을 내려다봤다. 연습장에 적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사람은 공보다 마음을 쫓는다.’
옥상에서 내려다본 아이들은 작았다. 저렇게 작은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멀리 문수동의 아파트들이 보였다. 그중 어딘가에 평범의 집이 있었다. 조금 더 멀리에는 할머니가 도라지를 팔고 있을 시장이 있었다.
평범은 가방에서 낡은 연습장을 꺼냈다.
첫 장을 펼쳤다.
‘나는 누구인가?’
몇 장을 넘겼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나는 존재하는가?’
다음 장,
‘한 사람의 말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또 다음 장,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과연 나는 존재했던 걸까?’
책을 읽으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답은 늘어나지 않고 질문만 늘었다.
양자역학 책에서 읽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관측하기 전에는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관측하는 순간 결과가 결정된다.’
살아 있는 평범,
죽은 평범,
교실로 돌아가는 평범,
난간을 넘어가는 평범,
아직 어느 것도 확정되지 않았다.
평범은 연습장을 넘겼다. 예전에 적어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세계를 품고 살아간다.’
볼펜을 꺼냈다. 처음으로 그 질문 아래에 답을 적었다.
‘그렇다면 내 세계는 여기까지다.’
손이 잠시 멈췄다. 한 줄을 더 적었다.
‘관측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면, 결과를 선택하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
연습장을 덮었다. 누군가 옥상에 올라오면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도록 가방 위에 올려놓았다.
“후.......”
길게 숨을 내쉬었다. 난간 가까이 다가갔다. 난간에 한쪽 발을 올렸다.
무서웠다. 정말 죽고 싶은 것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죽고 싶은 마음과 살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존재했다.
그때 난간 위로 새 한 마리가 날아갔다. 평범은 새를 바라봤다. 자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새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지는 것과 자유로워지는 것은 다른 일일지도 몰랐다.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나?”
정말 말하고 싶었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아이들이 무섭다고.
난간 위에 올라선 평범의 발이 흔들렸다. 난간에서 내려가고 싶었다. 그 순간 뒤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양말 거지, 거기서 뭐 해?”
몸이 굳었다. 정말 누군가가 말한 것인지 머릿속에서 들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평범은 눈을 감았다.
난간 위로 완전히 올라섰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마지막 순간에도 이상한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사라지면 세상은 계속 존재할까?’
‘아니면 나와 함께 끝날까?’
혼자 남을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왕이면 후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범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발끝이 난간에서 떨어졌다.
순간 세상이 뒤집혔다. 하늘이 아래로 내려갔다. 운동장이 위로 올라왔다. 바람 소리가 귀를 가득 채웠다.
곧이어 몸이 커다란 나뭇가지에 부딪혔다. 굵은 가지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졌다. 평범의 몸이 한 차례 튕겨 나갔다.
허공에서 방향을 잃었다. 그리고 화단 위로 떨어졌다. 붉은 꽃잎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조금 늦게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가 사라졌다. 주변 소리가 멀어졌다.
얼마 뒤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여러 사람이 뛰어왔다.
“학생, 들려요?”
“호흡 확인해!”
“경추 고정!”
누군가 평범의 머리를 양손으로 잡았다. 평범은 눈을 뜨려고 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붉은 구조복을 입은 사람들이 주변에서 움직였다. 그중 한 남자가 평범의 얼굴 가까이 몸을 숙였다. 구조 헬멧을 쓴 남자였다.
“학생, 정신 차려요!”
평범은 대답하지 못했다. 남자가 다시 말했다.
“내 말 들려요?”
목소리는 다급했지만 이상하게 무섭지 않았다. 평범은 마지막 힘을 다해 눈을 떴다.
흐릿한 얼굴이 보였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죽기를 선택한 자신을 끝까지 살리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남자의 가슴에 달린 이름표가 눈에 들어왔다.
‘강도진’
평범은 그 이름을 읽으려고 애썼다.
“학생 괜찮아요.”
남자가 말했다.
“내가 옆에 있어요.”
분명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그런데도 거짓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정신 차리고 절대 잠들지 말아요.”
평범은 조금만 더 이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곧 시야가 어두워졌다. 결국 마지막까지 보였던 것은 강도진의 얼굴이었다.
삐.
삐.
삐.
멀리서 심장 소리가 들렸다. 소리 사이의 간격이 점점 길어졌다. 의식이 사라지기 직전, 마지막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 일은 일어났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하나가 더 떠올랐다.
‘그렇다면 누군가 보고 있는 지금의 나는 살아 있는 걸까?’
더 이상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빛이 사라졌다. 소리도 사라졌다. 평범의 의식이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세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선생님들도 퇴근했다.
앰뷸런스의 사이렌은 여수의 도로를 가로질렀다.
그 시간,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는 시장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도라지를 다듬고 있었다.
사이렌 소리가 시장 골목 위로 길게 지나갔다. 할머니는 허리를 천천히 일으켰다.
“아구구구.......”
굽은 허리를 두드리며 멀어지는 앰뷸런스를 바라봤다.
“우리 강아지도 이제 학교 끝났겠네.”
그리고 다시 도라지를 집어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금방 잊힐 평범한 하루였다. 모든 사람들 가운데 오직 평범에게만 허락되지 않은 평범한 하루였다.
다음 날 아침, 여수의 바다 위로 다시 해가 떠올랐다.
국동항에는 어선들이 들어왔다. 문수동의 아파트에는 하나둘 불이 켜졌다. 학교에는 학생들이 다시 등교했다.
평범이 올라갔던 옥상 철문에는 새 자물쇠가 걸렸다.
그리고 평범이 없는 세상에서도 새로운 하루는 아무렇지 않게 시작되고 있었다.
제발 도움 부탁드립니다 ㅠㅠ 감사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