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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연재 시작하는 <망각은 더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 작품을 소개합니다
메로빈지언·2026.09.19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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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식고, 녹슬고, 잊혀집니다. 물리학은 이를 엔트로피라 부르고, 500년 전 피렌체의 한 남자는 소멸, 즉 ‘코룹티오’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끝내 흘러가지 못하고 어딘가에 걸려버린 흔적들이 있습니다. 16세기 파르마의 화로 속에서 맨손으로 건져 올린 회색 안료, 베네치아의 화려함 뒤로 이름을 지워야 했던 어느 여인의 삶, 그리고 500년의 시공간을 건너 서울의 낡은 상가 건물 아래까지 이어진 서늘한 잔류자기처럼요.


이 소설은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주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리의 법칙 아래 썩어가지 못하고 멈춰 선 것들, 그리고 100%의 진실만을 모아 타인의 삶을 지워버리는 한 남자에게 맞서 흩어진 궤적을 되짚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세월의 윤곽이 허물어지는 그 서늘하고도 묵직한 풍경 속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오래된 종이 냄새와 차가운 금속,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시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거대한 엔트로피의 흐름 속에서 조용히 궤적을 쫓아가는 이 길에 끝까지 함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첫발을 내딛습니다.



1540년 파르마. 임종을 앞둔 화가가 자신의 마지막 그림을 화로에 던졌다. 일곱 살 계집아이가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맨손을 넣어 그것을 꺼냈다. 자신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였다. 왼손등의 화인(火印)은 평생 아물지 않았다.

아이는 자라 베네치아에서 가장 화려한 여자가 되었으나 결국 모든 것을 잃었다. 이름마저 버린 채 이십 년을 쫓기다 숨을 거두었고, 여자를 쫓던 남자는 그 곁에서 운명을 같이 했다.

서울. 월세 60만 원짜리 낡은 상가 3층.

우상은은 이사 첫날 복도 바닥이 물처럼 흘러내리는 것을 본다. 일곱 살 때부터 늘 그래왔다.

그는 세월의 윤곽이 허물어지는 광경을 세상에서 가장 똑똑히 보는 사람이자, 평생 그 풍경으로부터 도망쳐온 사람이기도 하다.

왜냐고? 무서우니까.

세상에는 모든 형체를 흐려지게 만드는 이상한 힘이 있다. 국이 식고 쇠가 녹슬듯, 사람의 흔적도 시간이 지나면 무너져 내린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도록 퍼져나갈 뿐이다.

그러나 다 흐르지 못한 채 어딘가에 걸려서 멈춰 버린 잔재들이 있다.

주차장 시멘트 밑에 묻힌 50년 전 당산나무 밑동.

아이들이 자꾸만 그만두는 2층 피아노 학원.

그리고 큰길 건너 공사장 구덩이에서 나온, 50년 전 정월 제(祭)가 끊긴 뒤 아무도 손대지 않았던 제기 여섯 점.

그리고 500년 전 그 남자가, 지금 서울로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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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은 더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
메로빈지언
총 12화 조회 315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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