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해 전, 백두산.
달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등을 밀었다. 천지 밖의 바람이었다. 그 바람을 맞는 순간 그는 제 안에서 무엇이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횃대에 묶인 매의 발목에서 가죽끈이 끊어지는 소리였다.
눈앞이 끝없이 맑아졌다.
몰려오던 살수들이 일제히 멈췄다. 숨이 막혔다. 공기가 바뀌고, 바람이 멎었다. 흩날리던 눈송이들이 떨어지지도 날리지도 않고 허공에 멈춰 섰다.
고진악이 검을 들었다. 초식의 이름도 정해진 길도 떠오르지 않고, 검이 가야 할 곳만 보였다.
검이 한 번 움직였다.
허공에 멈춰 있던 눈송이들이 한꺼번에 둘로 갈라졌다. 맨 앞에 선 살수 열댓의 손에서 비수가 동시에 떨어졌다. 그들은 제 손이 어떻게 된 것인지도 모르는 얼굴로 서 있다가 차례로 무릎을 꿇었다. 누구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현경(玄境). 천 년 동안 이 산의 어떤 위주도 닿지 못한 자리였다.
그때 횃불의 무리가 양쪽으로 갈라졌다.
갈라진 길 끝에서 한 사람이 얼음 위를 걸어왔다. 흰 옷에 눈구멍만 뚫린 백색 가면, 허리에는 손때 묻어 검게 윤이 나는 칼집.
그 걸음을 고진악은 알았다. 사흘 동안 같은 상에서 술을 나눈 사람이었다.
가면 쓴 자가 멈춰 서서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칼집에서 검이 반 치쯤 빠져나왔다.
맑고 차가운 하늘빛이 얼음 위로 번졌다.
발해 멸망 백 년, 봉인을 지키던 가문이 불타던 밤. 살아남은 아이의 손목에는 하늘색 끈 하나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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