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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에 핀 연꽃, 키론의 아이들
연공(燕公)·2016.06.09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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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을 처음 써봅니다. 필력이 모자라고 말투가 거슬려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가 추천할 글은 키론의 아이들입니다. 글 작성의 편의상 반말을 사용하더라도 양해부탁드립니다. 서론이 깁니다. ㅎㅎ 책 추천을 보고 싶으시면 [본론]부터 보시면 됩니다.
[서론] 나에게 장르소설이란 인생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다. 지친 학창시절에 한 줄기 활력을 불어 넣어준 것은 장르소설이었다. 어린시절부터 우연히 접하게 된 영웅문, 드래곤라자, 룬의 아이들, 월야환담 등은 내 가슴속에 꿈을 불어넣어주었다.
나이가 들고,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되면서 장르 소설이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엷어졌다. 15년전 처음 드래곤라자를 읽을 때 설렜던 감정을 다시는 찾기 어려웠다. 한 동안 텍본이다, 스캔본이다 하면서 출판시장이 죽어갈때 장르 소설이 ‘몰락’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마음 아팠다.
하렘물, 먼치킨물, 게임 소설, 현대판타지 등 내 기준에서 참 미흡하기만 짝이 없는 ‘양판소’ 들만 넘쳐났다. 더 이상 ‘문학’ 이 아니었다. 투명드래곤의 망령이 되살아나서 포효 한번에 모든 몬스터들을 죽였고, 게임 속 특이 직업의 주인공들은 수시로 레벨업을 하며 온갖 히든 퀘스트들을 깨나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현대에서 헬게이트가 열리더니 회귀한 주인공들이 온갖 히든 퀘스트와 보물들을 모으며 삼국지 게임에서 제갈량 주유 여포 조운등을 싹쓸이하듯이 동료들을 수집하며 괴물들을 처리해나갔다.
코흘리개 용돈을 모아 책을 사고, 알바비와 과외비로 책을 사던 내가 정작 소득이 생겨도 이제는 책을 구매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한 페이지에 레벨업 하였습니다라는 문장이 복사 붙여넣기 된 책을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다행히 문피아라는 플랫폼이 (우리나라 장르소설의 시장 파이가 작아서 그렇지, 굉장히 혁신적인 플랫폼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겼고, 양판소의 비중은 줄어드는 것으로 보였다.
이 와중에 여러 볼만한 작품들을 건지게 되었고, 어느날 문피아 연재한담란에서 한 소설을 추천 받았다. ‘키론의 아이들’ 이었다. 연재 편수는 많지만 추천수와 조회수는 적고, 유료화가 되지도 않았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본론] 키론의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소년 소녀들의 성장물을 담은 모험, 정치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비록 아직 연재 된 모든 소설 편수를 읽어본 것은 아니기에 단정할 수는 없다.
비운의 몰락 왕족 특유의 엄청난 능력을 가진 소녀 루리아, 우직하고 성실한 무투파 소년 지토, 세련되고 능구렁이 같은 천재 대공자 제이가 각자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이야기이다. 루리아의 성장이야기, 지토의 모험이야기, 제이의 정치이야기가 한 곳에서 어우러지며 거부감 없이 뒤섞여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글솜씨가 놀라울 뿐이다.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 짜임새 있는 설정, 필력, 맞춤법, 케릭터의 독창성, 글의 전개 방식, 소재의 참신함에 있어서 그 어떠한 것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아쉬운 점은 요새의 ‘추세’와 맞지 않다는 점이다. 요즘 유행하는 ‘현대 회귀 꺵판물’ 은 마치 할리우드 액션물과 같은 느낌이라면, ‘키론의 아이들’은 BBC의 50부작 드라마와 같은 느낌이다. 세계관을 따로 이해해야할 필요가 없는 현대물과 달리 세계관과 설정 하나하나를 이해해야하며, 알아보기 쉬운 레벨업 혹은 스탯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지도 않으며, 빨리 빨리 적들을 때려잡지 않고 로맨스 및 정치적 요소까지 가미된 소설은 확실히 속력이 뒤쳐지고 통쾌한 맛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정통 판타지물에 가까운 소설은 작가만의 세계관과 설정, 독특한 케릭터들의 향연을 묘사해야하며 로맨스와 정치적 요소에 대한 심리묘사 때문에 전개 속도가 느릴 수 밖에 없다. 이를 현대물과 같은 잣대를 들이대며 전개가 느리다라고 비판할 수는 없다. 아예 장르가 다르기 때문이다.(추천글을 올리는 나 역시 회귀물에 해당하는 ‘나는 군주다’ , ‘검에 비친 달을 보다’, 현대물에 해당하는 비따비 등을 재미있게 읽었다.) ‘키론의 아이들’과 같이 짜임새 있는 세계관을 묘사하는 잘 쓰여진 글은 아무래도 요즘의 유행과는 거리가 멀다. 글의 퀄리티를 보았을 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추천수와 조회수를 보며 시대가 요구하는 ‘대중성’을 갖추는데에는 아직 무언가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결론] 하지만, 대중성을 갖추는데 실패한 이유로는 작가의 실력보다는 문피아의 독자층과 홍보의 부족함 역시 한 몫을 하고 있다고 본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라는 말처럼, 양판소와 온갖 깽판소들이 넘쳐나면 자기만의 세계관을 가진 작가는 대중성의 결핍속에서 절필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진흙 속 ‘진주’ 같은 작가들을 살려주고 키워줘야 하는 것 역시 독자들의 몫이다.
물론 추천과 조회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의 ‘대세’ 소설들에 질린 독자들 역시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독자들이 드래곤라자, 룬의아이들, 하얀늑대들, 군림천하 등에 향수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문피아에서 소설을 찾는 시스템이 뭔가 좀 아쉽다고 생각한다. )
우리가 그 책들을 읽을 때 첫 페이지, 첫 한 두 챕터가 재미없다고 글을 내려놓지는 않았었다. 책이란 본디 진득함을 이겨내며 소소한 재미를 모아 큰 기쁨을 누리는 맛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키론의 아이들’은 분명 읽어볼 가치가 있고, 작가는 그럴 실력과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향수에 젖어있고, ‘글다운 글’에 목말라 있는 독자라면 일독을 권유해본다.
p.s. 나는 이런 글을 무료로 보는 것에 죄책감이 들어 커피 한잔 값을 일단 후원을 했다. 작가님이 조회수와 추천수가 적다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며 너무 가슴이 아팠기에..
이 글은 현대판타지물을 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 비따비 등 현대관이 적용된 소설 재미있게 읽기도 했습니다. 단지 제 취향이 강하게 반영되어있다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