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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법2] 응조권, 번자권
검우(劒友)·2003.01.20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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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조권(鷹爪拳)

응조권의 특징

응조권, 정식명칭 [응조번자권]은, 이름 그대로, 독수리가 먹이를 잡는 모양을 참고한 움직임으로 기법이 형성된 북파권법이다.

정식으로는, 독수리가 먹이를 잡을 때의 동작이 아닌, 잡을 때의 발톱을 본뜬 [응조수(鷹爪手)]라는 손 모양을 나타낸다.

공방의 때에는, 이 응조수로 상대를 치고, 상대의 기(技)를 받아 낸다. 공격과 방어 어느 쪽을 하던지, 먼저 응조수를 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후는,단숨에 연타를 구사함으로서 승부를 낸다.

또한,응조수에 의한 공격은, 항상 상대의 눈이나 사타구니,점혈 같은 급소를 노린다.

방어 시에도 상대의 공격을 받아 냄과 동시에 응조수로 상대의 점혈을 찔러 넣는다. 이 점혈에 찔러 넣는 기법은 [사경(死勁)]이라 불 리는, 응조권 독특의 경법이라고 알려져 있다.[독수리의 발톱과 같은 손에 의한 연타로 상대가 쓰러질 때까지 끊임없이급소를 찔러 넣는다]는 것이 응조권이다.

 

역사와 배경

응조권은 송 대(960-1279) 중엽의 무장으로서 이름을 떨친 악비(岳飛)라는 인물이 원형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발상지에 대해서는, 하북성이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상세한 연대와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단언은 할 수 없다. 다만,청대(1644-1911)까지,하북성 이 외의 지역에서의 전승이 확인되지 않았던 경위로 봐서 발상지에 대해서는 거의 분명하다고 말해진다.

 

완성

역사상 기록에 응조권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다른 많은 문파들과 마찬가지로, 명대의 기효신서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기록에 의하면 유사사(劉士梭)라는 권사가 악비가 남긴 [분절쇄골법(分筋鎖骨法)]과 [사경응적(死勁?敵)]이라는 두 가지의 기법을 중심으로 응조권의 기법을 완성했다고 한다.

분골쇄골법은 72종에 이르는 신체의 단련법으로, 현재에도 권사들의 수련법에 반드시 포함되는 것으로서, 발경을 점혈에 찔러 넣는 108가지 방법의 집대성이며 사경응적과 마찬가지로 현재까지 기법상 빠질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 때문에,응조권은,그 두 가지 기법을 산출한 악비가 원형을 만든 인물로, 그것을 근본 기법으로 완성을 이룬 것이 유사사라고 불려진다.

 

실전성을 높이면서 야기된 쇠퇴

유사사에 의해 완성을 본 응조권은 근대에 이르러 응조번자권으로 이름을 고친다. 번자권의 기법을 대폭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응조권의 전승자 중 하나였던 진자정(陳子正)(1883-1938)이 1910년에 상해정무체육회에 교사로서 초대되어 갔던 것이 계기가 된다. 상해 정무체육회는,수 많은 문파의 보급 활동을 했던 것으로 유명했던 조직이다. 진자정은 뛰어난 수완으로 응조권에 국기(國技)로서 거기에 모인 권법의 기법을 첨가해 실전성을 높이려 했다.

그 중에서도 비슷하게 연타를 구사하는 기법이 뛰어났던 번자권에 주목, 순식간에 승부를 결정짓는 응조권의 특징을 높여,정무체육회에서 교육한 권법 중에서도 최고의 것으로서 자리잡는데 성공했다.

그 때문에,응조권은 태극권,당랑권과 더불어 {정무삼대문파(精武三大門派)}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정무체육회의 활동을 추진했던 청조가 붕괴하면서,응조권은 쇠퇴하게 되었다.

중화민국(1912-1949)의 건국과 더불어 국술관이라는 새로운 무술 전승 조직이 만들어졌으나 응조권은 그다지 추천되어지지 못했다.

이유는,청대 진자정 때문에 눌려지냈던 타 문파들로부터의 불평이 국술관 창설자들의 귀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말해지나 사실인지 여부는 분명치 않다.

일반적으로는, 언제나 급소를 공격하는데서 오는 위험성 높은 권법이란 것이 보급을 꺼리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응조권 쇠퇴의 역사는 우수했던 높은 실전성을 증명한다.

번자권의 특징

번자권은, 주먹 연타를 공격의 주체로 하는 북파권법이다.이름에 단긴 [번]은 [번생불식(숨도 쉬지 않고 연속으로 한다)]라는 단어의미를 간략화한 것으로서 번자권의 싸움법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다.

접근한 상태에서 상대가 쓰러질 때까지 단숨에 좌우의 주먹 연타를 퍼부어 승부를 내는 것이 번자권의 전법이다.기법은,일격필살보다도 연속 공격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전법을 기본으로구성되어 있다. 예를들어,번자권에서는 하나 하나의 기술을 구사할 때 팔을크게 휘두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주먹을 쏠 때, 상반신은 팔꿈치 앞부분을내지르는 정도, 하반신도 허리를 가볍게 돌리는 정도에 그친다. 극히 작고재빠른 동작으로 일격을 펼침으로서 스무드하고 신속한 주먹의 연타를 치는것이 가능하게 된다.빠르고, 틈이 없는 연타는 일괘편,중국에서 축제때 쓰는 긴 폭죽 꽃불과같다고 불릴 정도이다.

또한,번자권은, [팔섬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것은,번자권의주요 기법이 8종류의 기술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으로, 연타의 신속함이 섬광과 같다고 묘사되기 때문이다.

동작이 작기 때문에 일격의 위력은 약하지만, 그 문제점은 신속한 연타를점혈에 찔러 넣음으로서 해소한다.[신속하고 틈이 없는 연타로 상대를 제압한다]는 것이 번자권이다.

 

역사와 배경

수수께끼에 쌓인 역사

번자권의 기원에 대한 상세한 것은 거의 밝혀지지 않고 있다. 예로부터 하북성 고양현,교양현,박야현,려현이라는 4개 지역에서 널리 전해져 왔다는것 정도만 알 수 있을 뿐, 발상의 연대, 창시자에 대한 기술이나 전승들이일체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상의 기록들에서 번자권의 존재가 확인된 것은 明代(1368-1644)부터가된다. 많은 문파의 역사를 고증하는데 가장 유력한 증거가 되는 [기효신서]속에 [팔섬번]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번자권이 팔섬번이라고 불렸던 것이후세 책등에서 확인되기 때문에 최초의 증거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明代부터 淸代(1644-1911) 후기에 이르기까지 다시 역사가 확실하지 않게 된다. 명 대부터 청 대 후기에 이르기까지,번자권에 대한 전승이나기록들이 불가사의하게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당시의 전승자가 번자권의 기법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꺼려 철저한 비밀주의를 지켰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설이 강하다. 그러나 진위에 대해서는아직도 수수께끼에 쌓여 있다.

 

단가의 등장

청 대(1644-1911) 후기, 하북성의 段家라고 하는 분파의 손에 의해 다시세상에 퍼졌다.

동시에 하북성 이 외 지역에서도 보급되었다.단가가 번자권을 다시 퍼트리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번자권과 착각(발차기를 주체로 하는 문파)의 달인인 무관, 趙爛益이 퍼트리도록 단가의 사람에게 명령했다고 하나,진위여부는 알 수가 없다.

또한, 단가의 등장으로 인해 다른 분파도 기법을 퍼트리게 되었다고 한다.번자권은 근대에 국기의 하나로 인정되면서 각지에 급속히 퍼졌으나 그 계기를 만든 것은 단가라고 간주되고 있다.

그 이전의 전승 경로에 대해서는조사하려고 해도 참고가 될 만한 전승이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앞으로도 밝혀질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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