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되지 않은
“그날 나랑 붙어먹은 기억은 지웠나 봐.” 충동적으로 나온 음성에 가빠졌던 연서의 숨소리가 멈췄다. 호흡조차 잊은 듯한 그녀의 동공이 자신을 향했다. “난 한 번도 잊은 적 없는데.” 이 빌어먹을 놈의 외사랑. 연서의 시선은 한 번도 태훈을 향한 적이 없었다. 그녀의 미소는 항상 서준만을 향했기에, 감히 바라는 건 사치였다. “아니면 뭐, 서준이랑도 붙어먹어서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큰 모욕을 당했다는 듯 연서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네가 그동안 누구랑 뒹굴었든 상관없어.” 나도 참 등신이지. 나한테 왜 접근했는지 뻔한 여자한테, 마음 하나 간수하지 못하고. 예나 지금이나 호구처럼 흔들리고 말이야. 태훈이 차갑게 웃었다. 감정이라곤 담기지 않은 건조한 미소였다. “그날 밤처럼 잘해 봐.”
못된 것만 배워서
“내가 기어 다니라고 하면 기고, 벗으라고 하면 벗어.” 도현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담배 연기가 서우의 얼굴에 닿았다. 함부로 삼킬 수 없는 독한 연기가 꼭 남자를 닮아 있었다. 아연한 서우에게 도현이 건조한 조소를 던졌다. “앞으로 내 개처럼 살아.” 서늘하고 어둑한 눈동자가 서우를 꿰뚫을 듯 응시했다. “아이를 낳아야 해,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권태에 가득한 표정으로 남자가 느릿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너는 나랑 급이 맞지 않지만.” 도현의 무감한 눈이 서우의 새하얀 얼굴을 여유 있게 훑었다. 서우는 뜨거워진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떴다. 자신과 남자의 급을 나눠 평가할 줄은 몰랐다. 감히 곁에 서지도 못할 사람으로 내칠 줄은. “꽤 꼴리거든. 아내는 곧 생길 거고, 아이만 필요해서.” 남자는 재떨이에 담배를 눌러 껐다. 엉망으로 구겨지는 담배가 마치 서우의 신세 같았다. 결혼을 앞둔 도현이 서우에게 제시할 조건은, 정말로 아니었다.
표소저
촉 지방 거상 왕씨 집안의 외동딸 왕희. 어머니의 바람대로 좋은 혼처를 찾기 위해 경성으로 온 그녀는 영성후부 태부인 친정의 조카 손녀라는 애매한 신분으로 영성후부에 머무르게 된다. 그러나 후한 대접을 받으며 지내는 경성 생활은 왕희에게 지루했고, 그저 하루라도 빨리 촉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왕희는 우연히 옆집 보경장공주부의 후원에서 검술을 훈련하고 있는 남자를 보게 되는데……. 출중한 외모에 빼어난 무술 실력까지 갖춘 그의 정체는 진국공과 보경장공주의 둘째 아들 진락이었다. 한눈에 맘에 들어 그를 호위로 데려가고 싶었지만, 그의 신분을 알게 된 왕희는 깔끔하게 포기한다. 그러나 이후 공교롭게도 왕희는 진락과 계속해서 얽히게 되고 마는데…… * 원제: 表小姐 * 저자: 吱吱 * 번역: 김혜진
대제희
대평(大平) 3년. 대주의 황제가 돌연 병사하고, 이어 황후와 그 후계인 대제희(大帝姬) 보장마저 불행히 목숨을 잃고 만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귀비 진 씨가 황제의 핏줄을 잉태하고 있어 혼란은 빠르게 수습된다. 그리고 7년이 흘러 건흥 원년 봄. 모친과 함께 곽씨 가문에 의탁해 지내던 설청은 호수에 빠져 사경을 헤매다 간신히 깨어났다. 의식을 되찾은 설청은 혼란스러웠다. 사실 깨어난 그는 진짜 ‘설청’이 아니라 비행기 사고로 그의 몸에 들어온 다른 영혼이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몸의 주인이 자신과 같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곽씨 가문의 외동딸과 혼인하기로 되어 있다는 게 아닌가. 남장을 하고 모두를 속이며 사기 결혼까지 하려 하다니. 어떻게 빙의를 해도 이런 인물에 빙의할 수가 있지? 이 난감한 상황을 벗어나 살길을 찾기 위해 설청은 곽 대노야와 거래를 하게 되고, 명망 높은 청하 선생의 사학에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설청’에게는 그보다 더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는데……. * 원제: 大帝姬 * 저자: 希行 * 번역: 아름드리나무
러브 인 프로덕션
"하 대리가 추 작가 좀 꼬셔볼래?" "추 작가님 다시 글을 쓰게 만들면 저한테 뭐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있나요?" 종합채널 TBM의 드라마 기획팀 대리 하혜진은 만화가를 꿈꾸던 소녀시절이 있었다. 낮에는 방송국 직원으로, 밤에는 웹소설 작가로 꿈을 키우지만 소설에는 도무지 재능이 없는 듯하다. 회사에서는 쏟아져 나오는 소설, 만화와 투고되는 시나리오를 대신 읽고 검토해줄 계약직 알바를 한 명 충원해주는데 이상한 남자가 채용되었다. "저한테 뭔가를 숨기신 게 있으십니까?" "세상에. 그걸 벌써 알아차리시다니. 정말 눈치가 빠르시잖아요." 기러기아빠이자 모바일회사 엔지니어인 추천혁은 이상한 여름을 겪는다. 아내는 아이를 위한다며 이혼을 요구하더니 곧장 재혼을 한다. 회사는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천혁은 어이없이 실업자가 된다. 동종업계 취업금지 기간에 묶인 6개월 동안 천혁은 선배의 권유로 방송국의 시나리오 리뷰어 알바를 해주기로 한다. "그런데 왜 지금 다시 글을 쓰고 싶어지신 거예요?" "제가요? 제가 하 대리님께 글을 쓰고 싶어졌다고 말씀을 드렸습니까?" 전형적인 공돌이 엔지니어인 천혁은 스토리텔링에 관해서는 전문가 이상의 지식을 가진 스토리 오타쿠다. 천혁의 리뷰를 읽으면서 스토리텔링의 숨은 구조에 대해서 배우는 혜진은 점차 이 남자에게 흥미가 생긴다. 그러나 다가가보니 이 남자는 이미 결혼 경험이 있는 이혼남에 유학 중인 딸도 있다. "제가 받고 싶은 생일선물은 하루예요. 작가님의 하루. 작가님의 스물하고 네 시간을 온전하게 저한테 주세요."
북부 대공가에 입양된 마녀입니다
북쪽 숲에서 오랜 시간을 홀로 지낸 눈의 마녀, 일라이나. 죽어 가는 인간을 살리려다 졸지에 어려졌다! 구해 준 인간은 무려 제국에서 악명 높은 북부 대공가의 일원. 눈의 마녀가 나타났다고 자신을 괴롭히지는 않을까 단단히 각오했건만. “혼자가 아니야. 내가 있잖아. 나랑 같이 나가자.” 자신을 덥석 안아 들더니 갑자기 대공가로 데려가는 테오. “와, 진짜 귀엽다. 맨날 속 썩이는 누구들과는 천지 차이네.” 우락부락한 겉모습과는 달리 너무나 다정다감한 맏형, 세드리안. “비켜 봐, 형. 형이 너무 위협적으로 생겼으니까 그렇지.” 까칠하게 툴툴거리긴 해도 은근슬쩍 손에 사탕을 쥐여 주는 루크까지. “네가 우리 아들의 생명의 은인이군. 널 절대 해치지 않을 테니 무서워할 필요 없다.” 무서워 보이던 대공마저 무뚝뚝한 말투에서 다정함이 묻어나는데……. 그들의 애정과 관심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나 고민했던 게 무색하게도 일라이나는 따뜻한 대공가에 금세 적응하고. “오랜만이야, 이나야.” 게다가 아주 오래전에 헤어진, 그리운 친구까지 만났다. 정말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거겠지?
이혼성립조건
“차 회장한테 잘 보이려고 널 데려왔으니, 끝까지 네 역할을 다해.” 이 연극 속에서 눈치 없이 그를 사랑해 버린 건 그녀, 유보나의 죄였다. 그래서 차세운과 결혼했다. 그의 야망을 채워 주기 위해서. 그가 목표한 것에 다다랐다 생각했을 때 그를 떠나려 했으나 그건 그녀만의 착각이었다. “……지금부터 뭘 하면 되는데요.” “아이를 가져.” “……미쳤어요?” 그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럼 이혼해 주지.” 보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깊게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좋아요. 해요, 우리.”
공포 추리 게임 속에 갇힘
난, 반드시 살아남을 거야. “그러니까…… 저희 중에서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으라고요?”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공포 추리 게임, ‘디어 마인’. 나를 비롯한 게임 속 등장인물들은 에렌스트 저택에 갇힌 채 저택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범인을 밝혀내야 했다.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 범인을 찾아내는 방법뿐이다. 남주들은 우리 중에 숨어 있는 살인마를 잡겠다며 혈안이 되었다. “내가 그렇게 의심되면 방을 뒤져 보라고!” “제가 대체 당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 줄 알고 이러십니까?” “명백히 다르죠. 이쪽은 피해자, 그쪽은 살인자.” 그들에게 붙잡히게 된 살인마는 필연적으로 잔혹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부디 범인을 찾아서 정의의 심판을 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그대가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어.” 다행히, 나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바로 그들이 찾고 있는 살인마, 비비안 로페였으니까. #책빙의로판, #시스템, #츤데레남주, #까칠자상남
임신의 덫
“결혼 후 쉽게 이혼할 수 있는 상대를 찾고 있어.” 명일 그룹의 후계자, 채하준 상무가 아이를 낳아 줄 상대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은 세은. 비서인 그녀는 ‘임신 계약서’라는 다소 민망한 제목의 계약서를 접할 때만 해도 그것이 그저 남의 일인 줄만 알았었다. 그랬는데……. “계약 결혼, 저와 해 주세요.” 오랫동안 병을 앓아 온 어머니의 수술비를 감당하지 못해 먼저 그에게 계약 결혼을 청하고야 말았다. 그가 놓은 덫인 줄도 모른 채……. * * * “내가 말했던가? 호텔 객실. 한 개만 예약한 거.” “그게 무슨…….” 세은이 눈을 크게 떴다. 방 하나에서 그와 함께 자야 한다니. 침대도 당연히 하나뿐일 텐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세은을 바라보며 그가 입을 열었다. “명색이 첫날밤 아닌가?” 첫날밤. 모르는 단어도 아닌데 아주 생소하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즉……. “그러니 방을 따로 쓰면 이상하겠지?” 그녀를 잡아먹을 것처럼 바라보는 선명한 눈동자. 세은은 그에게 완전히 잠식되기 전에 도망쳐야 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최대한 빨리 임신하고 그의 곁에서 사라지겠다고.
잃어버린 아내
“그럼, 시나리오대로 연애부터 할까요?” 비현실적인 근사한 외모, 매체 등에서 담을 수 없는 독보적인 오라. 어떻게 이 정도로 완벽할 수 있을까 싶은 남자, 강인하. 하은수는 첫눈에 그에게 온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현대판 신데렐라, 처음부터 계획된 결혼이었다. 아픈 엄마, 하루 벌어 먹고살기도 힘든 은수의 처지에 한경그룹의 며느리 자리는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그러나 그런 건 이제 다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식 올리고 내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요, 나는.” “저도요…….” 행복했다. 그와 함께라면. 자신을 보는 눈빛에 진심이라 믿었다. 그것이 씻을 수 없는 독이 될 줄도 모르고……. “내 눈, 속이려고 머리 많이 썼네.” “머리를 쓰다니요!” “앞으로 내 허락 없인 바깥출입 금지야.” 이제, 그라는 감옥에서 벗어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