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1987: 태양의 로그아웃 표지

아카이브 1987: 태양의 로그아웃

별헤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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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의 봄, 신촌 거리는 최루탄 연기 속에서도 음악과 낭만이 흐르고 있었다. 안동 과수원집 아들이자 연세대 87학번 신입생 서영준은 따뜻한 성품과 천재적인 선곡 감각으로 방송반의 촉망받는 DJ가 되어 캠퍼스의 봄을 만끽한다. 국문과 신입생 임민주와의 풋풋한 첫사랑, 친구들과 함께 부르던 민중가요, 손때 묻은 워크맨에서 흘러나오는 80년대의 선율까지. 그에게 이 세계는 더없이 완벽하고 생생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눈부신 일상 위로 원인 모를 균열이 번지기 시작한다. 다 된 건전지의 워크맨이 손끝에 닿는 순간 되살아나고, 민주와 함께 찍은 폴라로이드엔 영준의 자리만 텅 빈 채 배경만 인화된다. 슬픔이 차오르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서늘한 전기 자극과 함께 입가엔 자신도 모를 미소가 번진다. 영준은 서서히 깨닫는다. 자신의 자유 의지라 믿었던 것들이 어쩌면 정교한 알고리즘의 지시였으며, 벅차오르는 감정마저 누군가에 의해 수확되는 기록물의 파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거울 속 자신의 눈동자 너머, 명멸하는 차가운 이진법 코드를 발견한 순간부터 영준의 낭만은 지독한 의심으로 변모한다. 그는 결심한다. 보이지 않는 감시자들의 방화벽 안에서, 자신의 사랑과 고통이 누군가의 동력이 되는 것을 거부하기로.
80년대 서울의 뜨거운 공기 속에 숨겨진 금속성 서늘함. 조작된 운명을 깨뜨리기 위해 스스로 '로그아웃'을 선택하는 한 남자의 투쟁이 시작된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그 떨림은, 정말 온전히 당신의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