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폐비, 동대문 패션 전설이 되다
J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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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고 비워도 끝내 비울 수 없었던 단 하나의 그리움.
500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배오개(동대문)의 전설이 되다.
“영도교를 건너는 순간, 이미 죽어 다시 태어난 몸입니다.”
열여덟의 나이에 궐 밖으로 내쳐진 정순왕후.
그녀는 82세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6명의 임금을 떠나보내며
묵묵히 동대문 여인시장의 무쇠솥을 저었다.
부정도, 분노도, 원망도 모두 비워낸 솥 안에는
오직 님을 향한 지독한 그리움만이 자주빛 물로 남았다.
그리고 500년 뒤, 서울 동대문.
학교를 자퇴한 18세 소녀 송정순.
패션을 배운 적도, 미술을 공부한 적도 없건만
그녀의 손끝은 기억하지 못하는 전생의 잔상을 그려낸다.
기와지붕의 유려한 직선,
영도교 위에서 마지막으로 스쳤던 옷고름의 떨림,
그리고 여인 시장 장대에 나부끼던 서늘한 자주색 원단의 결까지.
“가장 늦게까지 남는 옷을 만듭니다. 버려도 버려도 끝내 버릴 수 없는 옷.”
전생의 여인네들에게 받은 덕을 현생의 소외된 이들과 나누며
그녀는 자신만의 패션브랜드를 일궈나간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지 않으나 그 무엇과도 어울리는,
가장 한국적인 미니멀리즘이 동대문 시장 바닥에서 피어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갈증과 그리움을 안고 스케치를 이어가던 어느 날,
그녀는 운명처럼 한 남자를 마주하게 되는데…….
손끝의 감각이 기억하는 전생의 실루엣.
동대문의 흙먼지 속, 진짜 패션의 이야기에서 다시 피어나는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