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기린외전을 읽고 말한다. 과연 무협이 킬링타임용이고 싸구려 소설인가?
무협을 킬링타임용으로 알거나 혹은 무엇인가를 전혀 배울수 없는 저질의
장르로 생각한다는 분들이 있으시면 반대 의견을 제시 합니다.
왜냐하면 일반소설이나 역사소설 못지 않게 무협 작품들 속에서도
윗사람에 대한 공경, 형제간의 우애, 친구사이의 의리나 우정, 여러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 섞여있는 갈등...... 등등을 수많은
인간들의 군상속에서 보고 느끼고 배울수가 있습니다.
무협을 킬링타임용으로 알거나 뭔가를 배울수 없었다는 분들은 한마디로
쓰레기만 읽어 오셨다거나 아니면 사람 냄새가 솔솔나는 작품의 향기를
전혀 맡지 못하는 축농증 걸린 코와 시각적인 만족감만을 위해 화려한
불야성만 좇아 다니느라 작품안에 살며시 숨어 있는 따뜻한 인간애의
이면을 보지 못하는 야맹증 걸린 환자들 입니다.
물론 무협이 초인문학이라 하늘을 날고 일장에 산도 부수고 하는 굉장한
과장이 있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의 중독적인 대리만족의 경향을
보이게 하긴 하지만 자세히 밑바닥을 들여다 보면 좋은 작품들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본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즉! 다시 이야기 하자면 과장이 섞인 장면들을 걸러내고 나면 현실에서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삶과 별로 다르지 않은 인간들의 이야기 입니다.
구분이 약간 모호해 지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좋은 인간과 나쁜 인간의
이야기를 가지고 양념을 버무려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 가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울기도 하고 감동도 느끼고 분노도 느끼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현실에서 내 안에 쌓여있던 애증, 분노, 등등 여러 감정들을
혹자는 삭이고 혹자는 날려 버림으로서 자기 만족과 해방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리고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한다든지 아니면 작가가 의도했던대로
'따뜻한 인간애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에 긍정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작가가 그리는 인간의 여러 감정과 사상을 공유내지는 간접
학습하게 되는 것이죠. 결국은 작가의 생각이나 철학이지요.
자기 자신은 모르지만 실생활에서 나 또는 타인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거나
사회의 약자들이 불합리한 경우에 처하게 되면 무의식에 속해있던 간접학습
의 효과들이 바깥으로 분출되어 현실에서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하도록 하는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순기능적인 역할을 합니다.
무협은 장르소설입니다. 시작은 중국에서 되었지만 이미 우리식으로 정착이 된
우리만의 소설이지요. 이미 여러 작품들은 김용이나 와룡생의 작품보다 더 낳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국어로 번역을 해서 중국 독자들에게 보여줘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이 꽤 많습니다. 이런 무협소설들이 킬링타임용
이라거나 배울 것 없는 싸구려 소설이란 인식은 정말 잘못된 생각입니다.
무협은 일반소설이나 역사소설에 전혀 뒤질게 없는 한 장르입니다.
포장은 무협이지만 여기에는 역사도 있고 교훈도 있고 배울 것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오히려 일반소설이 추구할 수 없는 이야기를 통해서 역사도
넣고 인간 이야기도 넣고 교훈적인 이야기도 넣고 여러가지를 버무려서 더
풍부한 이야기로 만들어 나갈 수도 있는 무협만의 독특한 장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점을 인식하고 후대 작가들을 양성하기 위해 고무림에서 이런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독자들이 무협을 싸구려라거나 배울거 없는 장르라거나 이건 킬링타임용
이라고 자기 비하를 해버리면 무협은 점점더 운신의 폭이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무협을 읽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계속 무협을 읽으실 요량이라면 우리 다음대를
위해서 후대를 양성하려는 고무림의 노력에 찬물을 쏟아 붓지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작가들(오랫동안 글을 써오신 분들과 분량은 얼마 되지 않아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소수의 작가분들 그리고 신세대에 가깝지만 여러
명가들의 작품을 읽고 작가의 꿈을 키워오신 몇몇분들에 한해서)의 몇몇
작품들은 정말 말로 표현 할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고 대하서사적이기도
한 소설입니다. 과연 상상력만으로 저런 명작을 써낼수 있을까요?
저런 명작에서 과연 배울 것이 없는 단순한 시간 때우기용 소설로 치부
할 수 있을까요?
답은 '절대로! 전혀 끝까지 아니올시다.' 입니다.
저는 혈기린 외전 1부를 오래전에 읽고 이번에 2부가 나와서 보는김에
일권부터 다시 음미를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전에 읽던 것과는
달리 새로 느껴지는 점들이 많더군요. 물론 읽는 사람마다 보는 관점들이
모두 다르긴 하겠지만 저는 혈기린 외전에서 내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배웠는지
저의 관점에서 인간에 대한 이야기만을 해보겠습니다. 물론 윗글에서 이야기한
'무협은 싸구려 소설이고 킬링타임용인가?'라는 주제를 포함해서 쓴 것입니다.
왕일은 대 기근에 의한 흉년으로 굶주리는 가족들을 위해 진가소를 대신하여
군역을 짊어지고 남만의 전쟁터로 나갑니다.
제 나이 또래나 바로 윗 세대의 사람들은 보리고개나 전쟁에 관해서 아주
선명한 기억과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만해도 시골에서 보릿고개를 심하게
겪었습니다. 이틀 삼일 굶는 경험도 많이 했지요. 그리고 우리 주변의 누이들과
여동생들은 굶주리는 식구들을 위해 자기 몸이 부서지고 망가지고 천대와
경멸을 받으면서도 공장으로 심하면 양색시로 술집 작부로 서슴없이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6.25전쟁중에 부자집 아들 대신 군역을 나갔다가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왕일의 이야기가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이 도대체 왜 벌어질까요?
여기에는 굶주리는 가족들을 위하는 애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내 가족
내 부모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저런 자기 희생을 못합니다.
이건 책을 읽는 독자 누구라도 가족이 저렇게 굶고 있다면 몸이라도
팔아서 그 상황을 해결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저런 상황들이
벌어지고 이야기로 만들어지기도 하지요.
왕일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건 작가의 간접 경험이 투영된 이야기입니다.
이런 부분에서는 가족에 대한 왕일의 절실한 마음과 사랑이, 작가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느껴집니다.
작가는
'혈기린' 스토리를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이런 심리묘사와 상황들이 상상만
으로도 가능 할까요?
답은 '절대로 아니다.' 입니다.
좌백님의 나이로 보면 적어도 본인이 일부 겪었거나 보았고 윗세대들로 부터
이야기를 들어서 간접적인 경험이 누적되어 있습니다. 이런 경험과 대가들의
작품을 읽은 토양이 합해지고 거기에다 작가 본인의 철저한 고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따뜻한 마음이 곁들여져서 저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써지는 것이지요. 이 순간에 몰입한 독자들은 누구라도 왕일과 같이
주인공이 되어 가족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겁니다. 당연히 현실에서
우리도 저런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 왕일과 마찬가지로 같은 행동을 할 것입니다.
즉 상상만으로 절대 저런 스토리와 심리묘사가 나오는 것이 아니지요.
왕일은 남만 전쟁중에 독사에 물린 동료 마달을 남겨두고 척후 임무를 위해
밀림속으로 들어갑니다. 물론 기본적인 치료를 해주고 가긴 합니다만, 아주
냉정하기만 사나이로 비춰집니다.
그러나 나중에 임무를 마치고 오는 길에 마달을 구해서 데리고 갑니다.
그러나 우리 독자들은, 왕일이 독사에게 물린 마달을 두고 임무를 완수
하기 위해서 다시 밀림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읽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반응은 자기 입장에 따라 여러가지로 갈렸을 겁니다.
감성적인 독자는 왕일에게 나쁜놈이라고 했을거고 냉정한 이성이 있는 분들은
왕일의 판단이 옳았다고 했을 겁니다. 혹자는 무덤덤하게 킬링 타임용이니까
하고 그냥 넘어가는 분들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작가는 왕일과 마달이 다시 남만으로 가서 인간으로서 겪는 극한의
고통과 좌절감을 끝까지 극복하는 장면인, 왕일이 그많은 고통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의식을 잃은 마달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혈기린에게 가서 임무를
완수해내는 시점에서 독자들이 주인공인 왕일에게 가졌던 여러 불만들을 일거에
침몰시키고 마는 복선을 깔아 두고 있었습니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친구(동료)란 이런것이다.'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을 겁니다.
동료에서 친구로, 단순한 친구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로...... 그런 친구
라면 어떤 어려움과 고난에 처해 있어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안고 같이 간다.
혈기린 외전은 제가 보는 관점에서는 단 두가지 입니다.
물론 협이라던가 의리라던가 하는 여러 관점이 있지만 다른건 다 제외하고
두가지로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왕일의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복수후에 허무하고 고독만 남은 외로운 심정의
왕일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가 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동료)들
만들기입니다.
작가는 이 두가지에다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고 왕일은
결국에 혈기린의 제자가 되어 강호로 나와서 또다른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양대세력의 가운데 서서 서로의 불만과 전대의 은원을 해결하고
그 결과로 여인의 사랑과 동료들의 마음을 얻습니다.
새삼 느끼지만 저에게는 혈기린 외전이 친구(동료)들 이야기로 느껴집니다.
현실 사회에서는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나 동료 만들기가 점점 더
힘들어 집니다.
그만큼 사회가 분화되어서 이웃간의 친절했던 관계가 조그만 이익만으로도
서로를 외면하고 마는......인간들의 관계가 메마르고 점점 더 소외되어서
서로의 마음을 나눌 곳이 사라진다는 반증이겠지요.
소설과 같이 현실에서도 저런 서로간의 갈등과 쌓여서 풀을 수 없는 은원들을 해결
할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아니 최소한 소설에서는 어떻게 해결 할 수 있는가를
방법을 제시하고는 있습니다.
작가는 혈기린 외전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나는 외로워,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들고 싶어! 아마 이 책을
읽는 너희들도(독자들도) 마찬가지 일거야! 더 늦기전에 망설이지 말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거친 사내들의 세계로 들어가봐, 마음의 가식을
벗어 던져 버리고 다른건 생각하지마, 얽매이면 떨쳐버려! 늦으면 이젠 더이상
친구라는 단어조차 남아나지 않게 될지도 몰라. 나는 나를 이해 해주는 친구를
만나면 고난과 어려움이 닥쳐도, 그것들을 친구와 나누어서 짊어지고 세상 끝까지
라도 같이 걸어갈거야, 너희들도 망설이지 말고 그런 친구를 만들어 그것이 네 인생을
더 가치있고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인생의 말년에 가서는 후회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느끼게 해줄거야. 아직도 늦지 않았어,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다면 당장 네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만나러 떠나."
다시 읽은 혈기린 외전에서는 정말 느낀 것도 많고 배운 것도 있고 사람을 보는
새로운 시각도 얻었습니다.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원초적인 궁금증도
생기더군요. 그리고 무협이 싸구려 소설이나 킬링타임용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다시 굳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부가 99년도에 나왔고 2부가 2003년에 나왔으니 거의 5년만에 2부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는 좌백님이 그동안 진정한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
방황한 결과가 아닌지 궁금합니다.
최소한 친구에 대한 답을 구했는지도 모르지요.
책이 나왔으니 아마도 진심으로 자기를 이해 해주는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의 마음
을 얻었을 겁니다.
한쪽으로 삐닥하게 구부러진 가지를 가지고 얼마나 마음에 맞고 자기를 이해 해주는
친구를 만났는지 아주 궁금하군요. 혹시 우쪽으로 구부러진 우백이란 친구를 만났을
지도......
혈기린 외전에 대한 감상겸 무협을 킬링타임용이거나 아무것도 배울 수 없는 싸구려
소설로 인식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서 나름대로 혈기린 외전과 연관해서 조악한
글을 올렸습니다.
거칠고 감정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이 섞였다면 아무쪼록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