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의 리뷰는 웹사이트 "드래곤북스"의 무협웹진 리뷰 "리노님"의 글에서 "등선협로"에 관한 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소설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힘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주인공의 안에서 일어나는 내적 갈등이고, 또 하나는 주인공의 바깥에서 일어나는 외적 갈등이다. 장르 무협에서 외적 갈등의 대부분은 '폭력'을 통해, 내적 갈등의 경우 '주인공의 깨달음'이라는 장치를 사용하거나 혹은 보다 손쉽게 할 경우 내적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를 '절대악'으로 치부함으로써 간단히 해소한다. 이 때의 '절대악'은 독자들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오물 덩어리로, 작게는 하는 일 없이 말만 많은 상사가 되기도 하고, 크게는 독자 개인의 힘으로는 절대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세상의 불합리함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이러한 절대악을 해치우는 우리의 영웅은 절대로 속을 수도 없으며, 배반당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주인공을 속이거나 배반하는 이들은 '죽음'이라는 (어쩌면 치졸하다 할만한) 독자의 응징을 받기 때문이다. (이때의 응징은 작가의 응징이 아니다. 장르판에서 글을 쓰는 작가는 한때 장르의 추종자였으며, 지금도 그러한 장르의 성은(?)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그들이 장르 안에 있는 동안은 독자와 똑같은 법칙에 영향을 받는 사람인 것이다.)
통상 정통 무협이라고 할 때 그 '정통성'이 바로 그 유치함을 이르는 말이고, 장르 무협을 이끄는 힘의 8할도 이 치졸하다 할 만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 유치하고 치졸한 부분이 장르 무협을 이끄는 원동력은 될지라도 장르 안에서 명작을 만드는 부분은 단연코 나머지 2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등선협로(登仙狹路)』는 그 유치함과 치졸함을 힘으로 삼고 수많은 고사성어(古事成語)들로 만드는 복고적인 분위기를 2할로 삼아 만든 완성되지 않은 명작이다.
무당으로서 갖은 수모를 당했을 무당의 자식으로 살아야 했고, 또한 원치 않았을 신내림에 대한 불안감과 원망으로 인해 생기는 갈등도 없이, 그저 천성적인 선함으로 부모의 원수인 호노인과의 관계조차 용서로써 해소되니 천상 서기영은 선골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선골적인 기질이 그를 단선적인 캐릭터로 남게 하였을지라도 그가 보여주는 협객의 희생적 모습과 그의 의형이자 또 하나의 주인공인 풍갑제의 칼날에 살아 숨쉬는 강인한 사나이의 숨결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장르의 발전은 장르 외적인 힘을 이용해 영역을 넓힘으로 발전되는 경우와, 그 반대로 장르의 중심에서 더욱 정교한 세공을 거쳐 독립체로 우뚝 서는 경우가 있다. 90년대에 발생한 경향무협 ― 무협작가 진산이 이야기한 조어로 신무협이라는 용어보다 더 적합한 듯하다 ― 의 경우 사무라이 소설과 순문학의 영향을 받았다면, 『등선협로』의 경우는 명 · 청대의 공안소설들이 보여주는 협객들의 영웅담과 와룡생의 『천하쟁패론』을 연결하는 무협의 정통적인 모습이 더욱 발전된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가벼운 무협소설들로 굳어진 어깨를 풀어주고 싶을 때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보다 진중한 무협소설로 생활에 자극을 받고 싶어질 때도 있다. 만약, 그대가 그러한 자극을 필요로 한다면, 나는 망량도의 신들린 듯한 칼부림과 서기영의 따사로운 미소가 살아있는 『등선협로』를 찾아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