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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호위무사--그 명성에 비해 너무 어설픈 개연성.
탈퇴한 회원·2003.07.24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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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상 존칭은 생략합니다)

조회수가 작품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바로미터는 아니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는가?

그래서 고무림 최고 조회수를 기록한 작품중의 하나라는 객관적 판단 근거와 함께, 주변의 수많은 명성들을 되새기며 떨리는 심정으로 호위무사를 읽게됐다.

  

처음부터 15년 동안이나 자신의 남성을 죽여가며 한 여자를 지키려 용부로 들어가는 설정이 비장함으로 다가와 자연 몰입하게 되었다. 말장난이 난무하는 소설들과는 다른 유려함과 매끄러운 문체는 책장을 너무 쉽게 넘기게도 해 주었다. 또한 치열하고 정교한 결투신은 몰입도를 한층 강화시켰다.

그런데 1권 중반부를 넘어가며 아쉬움과 함께 씁쓸함이 느껴졌다.

아쉬움의 근거는, 나무로 따지면 줄기는 크고 굵은데, 그 줄기에서 뻗어 나온 가지가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다.

용설아를 봉성으로 데려가면서부터 많은 싸움이 벌어지고 엄청난 적들이 사공운과 싸우게 된다. 그리고 그 적들 중에는 자신의 문파에서 실전된 절기들을 몇 백년만에 제일 완벽하게 익힌 인물들도 나온다. 그만한 사람들이라면 장문인들 정도로 비중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그런 사람들이라면 그만큼 비중 있는 개성부여와 그렇게 움직이게 된 최소한의 과정을 그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전개 과정이 전혀 없다.

엄청난 사람들이라는 것 정도는 짐작하겠는데 전혀 그런 비중이 없이, 주인공을 돋보이기 위한 소모품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주인공은 어디서 그렇게 많이 나타났는지 이해가 안 가는 적들을 계속해서 물리친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에 대한 개성이나 개연성을 너무 그려놓지 않으니 나중에는 누가 아군이고 적인지도 모를 상황으로 비춰졌다.

엄청난 적들을 계속해서 멋지게 물리치는 주인공!

멋진 전투 장면과 주인공을 탄생시켜, 나무로 따지면 훌륭한 꽃과 열매를 맺게 했지만 그 전개과정이 너무 부실하여, 전봇대처럼 쭉 뻗은 줄기에 가지는 없고 풍성한 열매만 왕창 달린 것 같아 아쉬운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요즘 독자들은 복잡하고 튼튼한 가지는 필요없고, 달콤한 열매만 많으면 좋아한다는 평을 떠올리니 오히려 이렇게 쓰는 것이 낫겠구나 생각과 함께 씁쓸함이 함께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아쉬움 정도로 그쳤다.

처음으로 실망을 하게 된 부분은 위기에 처한 주인공을 대신해서 주인공의 사부가 목이 잘리며 대신 죽고, 주인공은 멀쩡하게 살아 나오는 장면이었다.        

주인공은 중원 십대고수 중 한 사람이라고 몇 번이나 언급되었다.

십대고수를 키운 사부라면 그 이상이나, 아무리 청출어람이라도 그 비슷한 수준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어도 되는 것일까?

제자 사랑이 너무 극진해서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주인공의 사문은 용설아의 가문인 용부와는 뼈에 사무친 원한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그 철천지원수 가문의 여식을 구하려는 제자를 위해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 있을까?

열 번 양보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사부가 그렇게 죽기까지의 과정이라도 전개가 되어야 한다. 어떤 수법으로 사부가 최대 위기를 맞은 주인공과 바뀌고, 어떻게 그 도산검림을 빠져나오고 하는 과정들이라도 그려 주어야 한다. 애초에 비중을 안 두고 창출한 사부라면 모르겠지만 제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분히 그만한 비중과 자격이 있는 사부가 아닌가?

그 과정이 깨끗이 생략되고, 독자들에게 사부가 대신 죽고 주인공은 살았다는 그 한마디로 얼버무릴 수는 없다고 본다.

처음으로 실망감과 함께 작가의 무성의함까지 느꼈던 부분이다.

나중에 주인공이 그 사실을 알고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통곡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긴박한 순간에 그럴 시간이 어디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무엇보다 그건 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 그 전에 성의를 보여 주었어야 할 일이다.

가지는 전혀 없고 어느 순간, 모든 조건 무시하고 제자를 위해 목숨을 던진 사부라는 열매 하나가 더 열렸다.

두 번째로 실망한 부분은 주인공의 죽은 남성이 되살아나는 부분이었다.

처음 접했을 때 15년이라는 세월동안 남자구실을 못하는 것을 감수하며 내원 호위무사로 뛰어드는 주인공을 보며 비장함을 느꼈다.

그런 설정은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는 하나의 큰 룰로 작용해야 한다.

그런데 용설아가 내민 약봉지 하나로 간단히 해결되어버린다.

물론 그 약봉지를 받기까지 엄청난 수고를 했다. 하지만 너무 간단하게 처음 정한 룰을 바꿔버렸다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세 번째로 실망한 부분은 용설아가 낳은 아이가 하나뿐이 아니라 쌍둥이고, 진아라는 아들이 있다는 설정이었다.

그 부분에서 결국 책을 덮고 말았다.

자신이 아이를 낳았다는 기억이 되살아나지만 쌍둥이라는 사실은 기억 못하는 설정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딸을 낳을 때는 깨어있었고 아들을 낳을 때는 정신을 잃었단 말인가?

가사상태에 있었다가 아들을 낳고 나서 딸을 낳을 때 깨어나 버렸다면 억지로 말이 될 듯은 싶지만...

어쨌든 쌍둥이에 아들이 하나 더 있다는, 이제껏 전혀 짐작도 못한 갑작스런 설정!

기막힌 반전일까?

절대 아니라고 본다.

반전이란 주어진 틀 속에서 독자들도 이미 알고있는 요소들을 이용해 독자들이 미처 생각 못한 한 차원 높은 상황전개로 독자들을 감탄시키는 것이다.

이제껏 전혀 틀 속에 들어있지 않던 요소를 갑자기 추가하는 이런 식의 설정은 틀 자체를 수정하거나 무너뜨리는 것이지 반전이 아니다.

반전이 아니라 그냥 설정이라고 해도 그렇다.

이런 큰 설정은 간단한 말 한마디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바둑은 가로세로 19줄의 판에서 두어진다. 그러나 시간이 없거나, 처음 두는 사람들은 가로세로 9줄 바둑을 두기도 한다.

9줄 바둑을 두자는 룰을 정하고 한참 심각하게 두는데, 주인공의 남성이 되살아나며 11줄 바둑이 되어버렸다. 그럼 처음부터 다시 두는 기분으로 두어야 한다. 그런데 이제껏 단 한 줄의 언급도 없었던 용설아의 아들이 나타나며 11줄 바둑도 다시 13줄 바둑으로 바뀌었다.

그런 경우 사석이 요석이 되고, 요석이 사석이 되기도 한다.

독자 입장에서는 또 룰을 새로 짜는 기분으로 읽어야 한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어떻게 초반의 설정을 신뢰하고, 그 기분을 유지하며 읽을 수가 있겠는가?

물론 초반의 설정이 끝까지 변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래서도 안되고....

하지만 개연성을 고심하지 않은 이런 갑작스런 설정이나, 설정 변경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 식 불신을 유발시킨다.  

언제 어느 순간에 주인공의 사부가 다시 나타나 주인공을 구해주면서 ‘사실은 주인공의 사부는 그때 죽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강제 역용시켜 죽이고 자신은 이제껏 결정적으로 주인공을 도울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는 한 줄 설명과 함께 판을 뒤집거나, 또 용설아의 자식이 두 쌍둥이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갑자기 세쌍둥이로 바뀔지도, 무공을 모르는 용설아가 극강한 고수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불신감이 존재하게 되었다.

신뢰가 떨어지며 몰입도도 떨어졌다.

처음의 비장함이 너무 간단한 남성의 복구로 사라져 버렸고, 위기 속의 긴장감이 언제 나타났는지도 모른 사부의 목이 베어지고 대신 주인공은 살아나는 순간 느슨해 졌으며, 용설아가 딸만 놓고 다시는 아들을 못 낳는다는 애절함이 불쑥 나타난 아들 때문에 우스워져 버렸다.

이젠 용설아가 별로 애절해 보이지도 않고, 아무리 주인공이 위기에 처해도 위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어느 위기의 순간, 주인공의 가슴에서 전혀 개연성 없는 화탄 하나가 튀어나오며 ‘실은 주인공은 용부에 들어오기 전에 화탄 하나를 준비하고 있었다’ 라는 설정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이해가 안되는 설정도 많았다.

우선, 엄청난 힘과 그만한 경쟁세력들을 가진 용부의 용설아가 무공을 모른다?

주인공을 상대적으로 멋지게 보이는 설정이기는 하겠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설정이다.

그건 용설아가 납치되어 사공운과 함께 정이 들대로 들만큼 살다가 임신까지 하고 나타난 사실을 용부사람들 거의 전부가 모르고, 이대 호법이 바로 구해왔다고 믿고 있다는 설정만큼이나 당황스러운 설정이었다.

사공운과 6개월을 같이 살고, 애를 낳을 때까지 8-9개월간 가사상태로 두었다는데....  

남들이 볼 때는 납치되었다가 바로 구해진 후, 그 다음부터 족히 1년 이상을 두문불출이다.....

용부에서 용설아의 위치를 생각할 때, 어떻게 구해왔다고 믿을 것이며, 그 기간동안 구구한 억측 한 마디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그 후 쌍둥이를 낳은 여자를 봉성으로 과감히 시집보내는 용부는 무슨 똥 배짱인가.

수궁사란 것이 있고, 아이 낳은 여자와 안 낳은 여자는 왠만하면 알아본다.

담황이 눈감아 줄줄 미리 알고 보낸 것일까?

개연성 부족의 극치는 맹각이 사라진 용설아를 만나는 부분에서 이루어진다.

대개의 경우 개연성부족은 우연의 중복이라는 모습으로 가장 많이 다가온다. 아니, 우연의 중복은 필연적으로 개연성 부족을 낳는다.

맹각이 도화랑군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다. 그러나 그것은 첫번째 우연이기에 문제 될 것이 없다. 뒤이어 도화랑군이 우연히 용설아와 만나 보자기로 납치해 가다가 맹각과 마주치게 되자 ‘이 여자는 아이를 가졌고, 다가오면 아이와 산모까지 죽인다’ 라고 거짓 협박을 했다. 그러나 우연히도 도화랑군이 납치한 용설아는 그때 아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안 되자 도화랑군은 용설아를 감싼 보자기를 던졌고, 던진 보자기를 맹각이 잘못 잡은 우연이 겹친다. 그 때문에 용설아가 보자기에서 흘러내려 하필 돌에 머리를 부딪치는 우연이 또 겹친다. 결국 단엽 사부의 영몽환이 효력을 잃고 용설아의 기억이 부분적으로 되살아난다.

몇 개의 우연히 중복되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막힌 우연은, 그 전에 단엽의 사부가 용설아에게 영몽환을 복용시키면서 용설아에게 복용시킨 것은 뜻하지 않게 너무 오래된 것이라 머리에 충격을 받으면 깨어날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한다. 그리고 정확하게 용설아가 머리에 충격을 받는다.

하필 그런 중요한 순간에 싱싱한 영몽환은 다 떨어지고 오래된 것만 남아있었을까?

우연치고는 기막힌 우연이다.    

그 장면에서는 우연과 함께 논리적 어설픔도 뒤따른다.

도화랑군인가 하는 자는 용정현의 용부 근처에서 여자를 겁탈하려다 맹각에게 발각되고 3일동안 도망가다 용설아를 만난다.

결국 용설아는 용부근처에서 도화랑군이 3일동안 달려서 도달할 만한 거리에서 6개월을 살았다는 말이다. 그것도 도화랑군이 용설아를 업고 100여리를 더 달렸을 때가 3일이 지난 거리이니 어쩌면 이틀 반 정도의 거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내6존에 버금가는 맹각이 그동안 용설아를 못 찾았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등잔밑이 어두워서일까?

아무리 단엽이 용설아를 집 박으로 못나가게 했고, 등잔밑이 어두웠다고 하지만 도화랑군이 3일만에 도달할정도로 용부와 가까운 거리에 용설아가 6개월 동안 살았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그런 곳에 둘을 살게 한 단엽사부야 말로 정말 이상하다.  

단엽 사부의 깊은 심계일까? (분명히 5년 휴가라 했는데.....)

깊은 심계에 의한 의도적인 행동이라면 단엽 사부는 나중에 살아날 확률이 높다.

그게 아니고, 미리 모든 계산(?)까지 하고 죽은 것이라면 제갈공명 100명이 와도 못 당할 사람이다.

그리고 용설아가 사라지고 나서 기억이 되살아나 호위무사로 들어올 때까지의 5년동안 단엽은 무얼 한 것일까?

사라진 아내를 찾고자 ‘이런 여자 못 봤소’ 하며 초상화라도 들고 집 주변에서부터 사방으로 수소문하고 다니다보면 용부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당장 소문이 나던지 무슨 일이 벌어져야 할텐데....

단엽사부가 막은 것이라 볼 수 있겠지만 아내를 애타게 찾고자 하는 남편을 사부라고 무슨 권리로 막을 것인가?

오히려 백방으로 도와 주는 척이라도 해야지.  

그리고 맹각이 어떤 사람인데 도화랑군이 3일 달리고 다시 한 눈을 판단 말인가?

아무리 취음정에 취한 여인을 구하다 추격이 늦춰졌다고 하지만 3일 동안 안 잡힌 것만 해도 억지스러운 일인데 한눈까지 팔다니?

용설아가 다시 용부로 구출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우연과 억지가 있었는지 머리가 아프다.

중간 중간에 용설향이란 여자가 용부 제일의 두뇌 중 한 사람으로 나오는데 실상은 그렇게 뛰어나 보이지도 않아 어설픈 감이 있었다.  

사공운을 잡기 위해 엄청난 사람들을 동원했고, 그 엄청난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는 여자기에 엄청난 두뇌의 소유자라는 삼단논법식 결론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한번쯤은 독자도 깜박 속을 만한 명석함이 보여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덧붙이자면 주인공을 보고 주변인물들이 너무 많은 감동을 받는다.

그렇게 처절하게 싸우고 지쳐도, 막강한 적이 나타나면 언제 지쳤냐는 듯 또 이기는 주인공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궁극적으로 감동을 시켜야 할 사람은 작품 속의 주변인물들이 아닌,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다.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이 너무 많은 감동을 받다보면 독자들이 감동을 받을 여지가 줄어든다.

이상은 용설아에게 아들이 있다는 설정이 나오는 부분까지 읽고 느낀 점들을 적은 글이다.

이후, 기막힌 반전에 의해서 앞의 개연성부족이 말끔히 해결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너무 뒤로 밀리는 반전은 좋지 않다. 길어도 같은 권 내에서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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