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의 김용 무협소설의 감상을 올렸다. 영웅문, 녹정기, 연성결...
많은 분들께서 '김용을 너무 띄우는게 아니냐?' '그의 작품이 그렇게 대단하냐?' 라고들 하신다.
맞다. 그의 작품은 대단하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그 어느 작가보다도 대단하다. 그와 견줄 수 있는 유일한 작가가 '고룡' 이라고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다. 유일하게 금강님께 희망을 걸어보고 있지만, 금강님의 바로 전 작품 ‘대풍운연의’를 보면 아직 김용의 경지에 오르기에는 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교보문고에서 영웅도 라고 이름지어진 책 6권을 보게 되었다. 놀랍게도 작가는 김용이었다. 나는 "또 어느 이름 없는 습작가의 글을 김용의 글이라고 우려먹기는..." 사실 김용이라는 네임벨류에 속아 산 무협소설이 한두권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화산논검' 15권을 김용 이라는 이름에 속아 샀다. 물론 초등학교 5학년 시절, 김용의 문체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할 어린 나이의 실수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책 한권을 빼들었다. 그 당시 성행하던 공장 무협의 형태를 빌렸는지 1,2부로 나뉘어 각 부당 3권씩이었다. 하지만 나의 그러한 생각은 채 열장을 넘기기도 전에 바뀌어야 했다.
분명히 김용의 글이었다.
가슴이 벅차 올랐다.
그때까지 김용의 소설이라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천룡팔부, 소오강호, 녹정기가 전부였던 내게 진짜 김용의 소설은 7번째였다.
두말할 나위없이 전부 사들고 식음을 전폐한 채 읽기 시작했다.
몇 년 뒤에야 안 사실이지만 영웅도 1부의 원제는 벽혈검이었고, 2부의 원제는 협객행이었다.
...
김용의 두번째 작품인 벽혈검에서 김용은 김용 특유의 역사적 전기와 무협의 조화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명말 위대한 장군 원숭환은 청나라를 상대로 연전연승을 한다. 하지만 황제인 숭정은 그런 원숭환을 개인적으로 시기하고 질투한다. 또 간악한 모리배들은 혼자 공을 세우는 원숭환을 두려워해서 그를 비방하고 모함한다. 앞으로는 청나라의 막강한 팔기군과 뒤에서는 보이지 않는 암습과 음해. 이 두 가지를 상대로 외롭게 싸워야 했던 원숭환은 결국 청나라와 내통했다는, 말도 안되는 혐의로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런 원숭환의 아들인 원승지의 복수 행으로 시작한다...
김용은 애시당초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원승지의 아버지인 원숭환과 하청청의 아버지인 금사랑군 하설의로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벽혈검에서는 이 두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김용은 나중에 이 벽혈검에 덧붙여 <원숭환평전>까지 내기에 이르른다. 하지만 벽혈검은 무협소설이고, 원숭환평전은 엄연한 역사서이다.
해서 김용이 원숭환 평전까지 낸 것은 벽혈검의 이해를 돕기 보다는 오히려 사족이 되지는 않았나 싶다.
원승지는 화산의 문하로 들어가게 되며 그곳에서 화산장문인의 마지막 직전제자가 되어 무공을 익힌다.
시대는 매우 혼란스러운 명말. 썩어들어가는 나라안에서 드디어 농민봉기가 일어나고 틈왕 이자성의 봉기는 거대했다. 이자성은 거리낌 없이 싸워 이겨나갔고, 화산파는 그런 틈왕을 돕는다. 당연히 원승지도 그에 합세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바로 원승지의 복수행이다. 원승지의 아버지는 분명 숭정황제에게 죽었으나, 그를 죽게 만든 원인은 바로 청나라의 2대 황제 태종, 즉 홍타이지로 불리우는 인물이다.
놀랍게도 김용은 주인공의 아들인 원승지의 원수의 대상이 ‘국가적 원수’와 ‘개인적 원수’로 나뉘고 하고, 또 어느 한 원수를 갚는 것이 다른 원수에게는 복이 되게 만들었으니, 참으로 이율배반적이 아니다 할 수 없겠다.
또한 김용 특유의 역사적 전기와 무협의 조화는 벽혈검에서 잘 드러난다. 원승지의 원수인 숭정황제와 홍타이지는 모두 실존 인물이다. 허구적 인물의 원수가 실존적 대상이라는 설정은 그 어느 무협에서도 보여주지 못한 시도라 할 수 있겠다.
즉, 벽혈검에서는 진실이 허구가 되고, 허구가 진실이 되며, 무협안에 역사가 있고, 역사안에 무협이 살아 숨쉬는, 실로 변화막측한 소설이 되어버린 것이다.
벽혈검에서 또 하나 빼놓을수 없는 재미있는 점은 바로 서두와 결말의 부분이다.
책의 서두에서, ‘장조당’ 이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이 사람은 중국의 최남단,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발니국(渤泥國)의 왕의 후손인데, 평소에 사서와 삼경을 탐독한 연후에, 자신의 조국이라고 할 수 있는 명나라로 가서 관리가 되어 이름을 떨치고 싶다는 공명심에, 금은보화를 바리바리 챙겨서 명나라로 떠난다.
하지만 이 때의 명나라는 매우 혼란한 시기여서, 장조당은 황제를 만나기는커녕 관병들에게 습겹을 받아 금은보화를 다 빼앗기고 간신히 목숨만을 건진다.
왜 장조당이 이렇게 서두에서 자세하게 묘사되었는지는 뒤에 가서 나온다.
바로 이 장조당이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인 원승지와 그의 일행인 산당(원숭환의 복수를 위한 단체)을 이끌어 내기 위한 도구적 장치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실제로 원승지가 등장하고 나면 장조당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길이 없다. 다시 발니국으로 돌아갔는지조차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게 될 만큼, 그의 존재는 희미하다.
그러나 아주 공교롭게도, 이 책의 결말부분에서 장조당은 다시 등장한다.
맨처음의 이유와 같이, 그는 또 공명심에 불이 붙어 갖은 금은보화를 챙겨서 다시 중원행을 나선다. 그리고 그는 또 금은보화를 빼앗긴다. 하지만 여기서 그의 금은보화를 빼앗는 존재는 명나라의 관병이 아니라, 농민 봉기군이자 혁명군이었던 틈왕 이자성의 봉기군이었다.
틈왕 이자성은 호방한 인물이었으되, 대인이자 군주의 자질은 아니었다. 그는 북경을 함락시키고, 자금성에 들어앉자마자 화려한 연회를 거듭한다. 청나라의 군대가 코앞까지 다가오고, 아래에서는 청나라와 내통한 오삼계가 호시탐탐 기회를 보고 있지만, 이자성은 북경을 함락시켰다는 매혹에, 또 쌓여진 금은보화와 널린 여인들의 미색에 혹해, 군사들을 이끌고 싸우려 하지 않는다.
그의 군대는 또 어떠한가.
그의 군대는 북경성을 함락하자마자, 성내로 들어와 갖은 약탈을 일삼는다. 실제로 원승지의 일행을 몰라본 몇몇 병사들의 무리가 오독교의 교주이자, 원승지의 제자인 하척수의 미색을 탐해 어이없는 죄목으로 그녀를 강제로 끌고 가려 한다. 싸울줄은 알되, 군율이 어지럽혀진 군대는 이미 제대로 된 군대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김용은 이미 이자성의 운명이 여기서 결정되었음을 그리려는 듯 하고 있다.
장조당이 처음에는 명나라 관병에게 당하고, 두 번째에는 이자성의 혁명군에게 당하는 장면을 구태여 보여준 이유는, 주인공인 원승지를 자연스럽게 끌어냄과 또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하는 소설의 도구적 측면도 있지만, 더 정확히는 난세를 살아가는 힘없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려는데 의의가 있다고 본다. 난세에 있어 백성들은, 누가 나라를 다스려도 상관이 없다. 어차피 위정자라는 작자들은 거기에서 거기인 것이다. 아무리 대인의 풍모를 지녔고, 한때 그 자신도 백성이었을지라도 일단 권력의 맛을 알고나면 변한다는 것, 김용은 이 점을 이자성과 장조당을 통해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벽혈검에서 재미나는 부분은 사건의 전개의 필연적인 부분을 역사적인 사건의 전개와 맞물리게 한다는 점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그의 원수는 국가적 원수와 개인적 원수로 나뉘어져 있다. 따라서 그는 대의와 자의에 의해 틈왕 이자성을 돕는다. 즉, 숭정황제와 청나라에게 원수를 갚는 이 두 가지 일을 이자성을 도움으로서 이룰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바로 천하의 백성을 위하는 일이었고, 사사로이는 자신의 복수를 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것은 일반적인 무협에서 자주 써먹던 ‘무공을 배워 원수를 갚다’ 와는 다르다. 원승지가 무공을 배워 원수를 갚는 그 과정과 17세기의 중국의 역사적 발전 과정이 함께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승지가 안소혜(安小彗)를 도와 하청청에 의해 빼앗겼던 이천 냥의 황금을 되찾는 장면은 그저 일반적인 강호의 ‘정파’와 ‘사파’간의 싸움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이 황금은 바로 틈왕 군대의 군수 물자였다는 것처럼 말이다. 또 원승지와 하청청이 보물을 빼앗이 숨기는 장면은 일반적으로 강호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보물 또한 바로 틈왕 군대의 군수 물자였다.
소설 속에서 가장 통쾌한 장면중의 하나였던, 선도파의 제자 민자화가 강호의 친구들을 불러 모아 금룡방주인 초공례에게 복수해 달라고 하는 장면과 같은 싸움도, 겉보기에는 그저 순수한 강호의 사건 같지만, 실제로는 청나라의 첩자인 ‘태백삼영’의 교사를 받아 일어나게 된 사건이었다.
원승지 등과 ‘오독교’ 간의 복잡한 갈등과 싸움 역시 엄밀하게 따져 말하자면 운남 귀주 일대의 오독교가 줄곧 황태감인 조화순의 요청으로 목숨을 바쳐 가면서 조정을 위해 일하던 반역적인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강호의 무림 인물들은 많든지 적든지, 드러내 놓든지 안 그렇든지, 혹은 직접적이던지 간접적이던지, 모두 당시의 청나라와 명나라, 틈왕이라는 이 세가지의 정치적, 군사적 세력과 연관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벽혈검이 역사적 사실만을 허구적으로 다룬 평범한 무협소설이냐 하면 그것은 또 그렇지 않다. 김용은, 그 신필과도 같은 경지의 필력으로 그 자신만의 특기인 인간과 인간, 정과 정에 대해서도 애절하게 다루고 있다.
바로 그러한 대표적인 역할을 하는 이가 바로 금사랑군 하설의 이다.
그는 자신의 복수를 위해 모든 힘과 수단을 다해 오독교의 신물인 금사검, 금사추, 중보도를 훔쳐 강남의 온씨 집안에 복수를 하러 간다. 그곳에서 그는 사십여 명을 죽이고 부녀자들을 강간하다가 온씨 집안의 딸인 온의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어 결국 ‘애정’ 때문에 ‘복수’를 포기하고 만다.
그는 더 이상 온씨 집안에 복수를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또 다시 재물에 대해 탐욕을 부리다가, 원한을 기억하고 있던 온씨 집안의 다섯 노인에 의해 함정에 빠져, 결국 손과 발의 경맥을 끊기고 무공이 소설되어 죽기 직전에 이르나, 다행이 옛날 정인이었던 하홍약에 의해 목숨을 건지게 된다. 하지만 하홍약은 또 그녀 자신의 질투 때문에 하설의에 대해 한을 품고, 정 때문에 원한을 품게 되어, 결국 화산의 산동굴 속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이것은 참으로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정에 대해 깊은 통찰로서 그려내고 있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강호의 복수와 그 복수를 채 이루지 못한 사랑, 재물에 대한 탐욕과 그로 인해 목숨을 잃어야 했던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강호인의 인생을 김용은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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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 그는 벽혈검을 통해서 그 자신이 가진 빼어난 재주를 능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와 전기, 무와 협, 인간과 인간, 정과 정이 함께 맞물려 잘 돌아가는 시계추와 같은 이 벽혈검이야 말로 실로 보배라 아니 부를 수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