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며
김용의 대표작중의 하나인 신조협려는 책의 해설에 나와있는 바와 같이 처음엔 '정'에 대한 소설로 읽혔다. 이는 책의 해설에 나와 있는 다음 구절에서도 확인된다.
"... 처음부터 끝까지 "정(情)"이라는 한 글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情)이란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주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소설 가운데 묘사되고 있는 여러 남녀의 정, 성격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겪는 서로 다른 애정이 어떤 경우는 희극을 만들고 또 어떤 경우는 비극을 만든다. 김용은 지금까지 그 어떤 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여러가지 형태의 애정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작가인 김용은 '신필'의 경지에 오른 이로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행태와 사건의 전개를 살펴보면서 이 소설을 남녀간의 안타까운 '정'에 관한 소설로 읽어야만 하는지, 그리고 김용의 이 작품이 받고 있는 평가가 적합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다음에서 이 소설의 개략적인 흐름을 살펴보고 여기에 대한 느낌과 의문점을 적어보고자 한다.
II. 개략적인 줄거리 (주된 등장인물간의 만남을 중심으로)
1. 가흥 육가장에 이막수가 찾아와 육씨부부를 죽이고 양과는 구양봉을 만나고 곽정과 황용을 만난다.
2. 곽정은 양과를 도화도에 데려가고 양과는 곽부와 무씨 형제에게 멸시를 당하고 황용은 양과에게 경서를 가르친다.
3. 곽정은 중양궁에 가 돕고 양과를 맡기나 조지경이 양과의 사부가 되어 그를 학대한다.
4. 양과는 중양궁에서 도망치고 손노파를 만나 구함을 받는다.
손노파는 학대통에게 죽음을 당하고 소용녀에게 양과를 부탁한다.
5. 양과는 소용녀에게 무공을 배우고 수련도중 소용녀는 내상을 입는다.
홍릉파와 이막수가 고묘에 오고 소용녀와 양과는 구음진경을 배운다.
양과는 소용녀를 위해 죽으려하고 고묘파의 계율은 없어지고 둘은 고묘를 떠난다.
6. 양과는 구양봉을 만나고 소용녀는 윤지평을 양과로 오해해 몸을 빼앗기고
양과는 이를 알지 못하며 소용녀는 떠난다.
7. 양과는 육무쌍, 완안평을 만나 돕는다.
양과는 홍칠공과 구양봉을 만나 그들의 무공을 배우고 홍칠공과 구양봉은 대결끝 에 죽다.
8. 양과는 거지행세를 하며 곽정을 만난다.
9. 소용녀가 양과를 찾아오고 양과와 소용녀는 금륜법왕을 물리친다.
10. 소용녀는 양과가 고묘에서 살 것을 걱정하며 떠나고 양과는 황용을 도와 금륜법왕을 물리친다.
양과는 정영과 육무쌍을 만나고, 이막수에게 죽을뻔하나 황약사의 도움을 살아나고, 양과는 황약사에게 무공을 배운다.
양과는 부친이 곽정에게 죽었다고 생각하고 금륜법왕을 구하며 몽고 쿠빌라이를 만난다.
11. 양과는 주백통을 쫓아 절정곡에 가고 공손녹악을 만난다.
소용녀는 공손지와 혼인하려하나 양과가 나타나고 둘은 공손지와 싸우다 정화에 찔린다.
공손녹악은 어머니 구천척을 만나 공손지를 물리치며 구천척은 양과에게 공손녹악과의 혼인을 강요한다.
12. 공손척은 양과에게 정화의 해독제인 절정단의 대가로 곽정, 황용의 죽음을 요구하고
양과는 쿠빌라이를 도와 곽정을 죽이려하나 죽이지 못하고 돕는다.
13. 황용이 출산을 하고 양과와 소용녀는 금륜법왕에 맞선다.
이막수가 곽양을 뺏앗아 도망가고 양과는 신조를 만난다.
소용녀는 자신을 범한 자가 윤지평임을 알게되어 양과를 떠난다.
14. 소용녀는 주백통을 만나 무공을 배우고 중양궁에서 금륜법왕, 전진오자와 겨루다 내상을 입는다.
15. 양과는 곽부에게 팔을 짤리고 신조를 다시 만나 중검을 배운다.
16. 황용이 곽양을 이막수에게서 되찾나 양과가 다시 빼앗아 중양궁으로 가서 소용녀를 구하고 금륜법왕을 물리친다.
윤지평은 자결하고 양과와 소용녀는 부부지연을 맺는다.
17. 양과와 소용녀가 고묘에서 내상을 치료하던 중 이막수가 찾아오고 소용녀는 곽부의 독침에 맞아 중상을 입는다.
18. 양과와 소용녀는 일등대사와 자은을 만나 절정곡으로 간다.
이막수는 홍릉파를 죽이고 공손지를 만나고 공손녹악은 공손지에게 죽고 천축승은 이막수에게 죽는다.
소용녀가 공손지와 싸워 절정단을 얻으나 양과는 이를 버리고 이막수는 불속에서 타죽는다.
소용녀는 양과를 위해 16년후에 보자는 약속을 남기고 떠난다.
19. 양과는 단장초로 정화의 독을 해독하고 신조와 더불어 무공을 익힌다.
20. 16년후 곽양은 신조협이된 양과를 만나고 양과는 일등대사, 주백통, 영고의 화해를 돕는다.
양과는 곽양의 생일선물로 몽고군을 물리치고 떠나고 곽양은 양과를 찾아나섰다가 금륜법왕에게 사로잡힌다.
21. 양과는 가진악에게서 부친의 죽음에 대해서 듣는다.
22. 양과는 소용녀를 만나러 절정곡으로 가나 소용녀가 나타나지 않자 골짜기 아래로 뛰어들고 곽양도 뛰어든다
금륜법왕은 황용 일행에게 사로잡히나 다시 곽양을 데리고 도망간다
양과는 절정곡저에서 소용녀를 만난다.
23. 금륜법왕은 곽양을 인질로 하여 곽정을 위협하고 양과가 암연소혼장으로 법왕을 물리치고
곽양을 구하고 몽고의 대한을 죽인다.
24. 양과는 홍칠공과 구양봉의 묘에서 새로운 천하오절의 하나로 서광(西狂)이 된다.
III. 양과에게 있어서 '협'과 '정"의 의미
'신조협려'의 줄거리를 관통하는 두 개의 중심축중 하나는 '협'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위국위민 협지대자'라는 것인데
이는 양과는 곽정을 부친의 원수로 알고 죽이려하나 그의 '위국위민'하는 태도에 차마 죽이지 못하고
또한 가진악에게 모든 사실을 알게된 순간 그간의 치끓었던 원한을 한순간에 깊은 탄식으로 모두 잊는 부분에서 드러난다.
"양과는 머리를 숙인 채 비분하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자신의 생부가 이처럼 간악했었는지 전혀 뜻밖이었으며 자신의 명성이 아무리 울려 퍼져도 부친의 수치를 씻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
양과는 곽정 부부가 그동안 했던 일들을 돌이켜 보았다. 황용이 시종 자신을 꺼려한 것과 그동안 수많은 오해를 낳았던 까닭이 모두 여
기에 있었던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부친이 없었다면 자신의 몸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그러나 자신의 무수한 번뇌가 사실은 부친 때문에 일어난 것인지라 어쩔 수 없이 깊은 탄식을 토해 내고... "
하지만 아무리 부친이 간악했다 하더라도 어찌 이토록 간단히 부친의 원한을 잊을 수 있을까?
양과는 어려서부터 자신을 사랑해주고 보호해줄 부친이 있기를 바랬다. 그리하여 구양봉을 만나서 그가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라고 하자 망설임없이
그를 아버지라 부르고 그가 죽은 후에는 그에 묘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절을 한다. 그러나 구양봉은 그가 원하는 '아버지'가 되지 못한다.
무릇 아버지라 함은 아들에게 바른 길을 가르치고 그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터이니 이에 합당한 이는 곽정밖에 없다. '신조협려'에서 양과가
곽정을 대하는 자세는 바로 아들이 '바람직한 아버지', '존경할만한 아버지'에게 대하는 자세와 다름이 없다. 즉 양과는 '부친의 원한을 잊은 것'이
아니라 '간악하며 소인배인, 죽은 아버지'를 버리고 '영웅이며 대협인 산 아버지'를 택한 것이다. '협'은 아버지를 선택하는 기준이었다.
한편, 또 하나의 중심축인 '정'은 양과와 소용녀가 사회규범을 거부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서로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사랑'으로 나타난다.
양과는 이막수가 옥녀심경을 차지하려 고묘에 들어오자 부상당한 소용녀를 위해 죽으려 한다. 또한 소용녀는 중인들 앞에서 거리낌없이 서로 사제관계이며
동시에 부부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양과는 소용녀가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애써 구한 정화의 해독제인 절정단을 버린다. 또 소용녀는 자신때문에
양과가 해독제인 '단장초'를 먹지않을까봐 '16년후에 보자'는 말만 남기고 골짜기 아래로 뛰어들고, 양과는 소용녀를 16년간 기다리다가 그녀가 나타나지 않자
골짜기 아래로 몸을 던진다. 하나 결국 모든 역경을 딛고 사랑을 이룬다.
하나 이렇게 양과와 소용녀만 보면 지고지순한 '사랑'인 이들의 관계는 잠시 양과의 행적을 살펴보면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
양과는 이상하게도 소용녀에 대해서는 '정욕'을 느끼지 않는다. 기껏해야 소용녀에게 입을 맞추는 정도인데 이와 달리 양과는 홍릉파, 육무쌍, 완안평, 공손녹악에게는
사뭇 다른 자세를 취한다.
" 양과는 그녀(홍릉파)의 팔꿈치에 감겨 안겨서, 등으로는 그녀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 코로 향기로운 그녀의 체취를 맡으며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서 산에 올랐다
그녀와 함께 있자 그녀의 향기가 마치 난초와 같아서 그는 그녀의 몸에 가까이 갈수록 기분이 좋았다. 양과는 그녀의 몸에서 나는 소녀의 향기로운 체취를 맡고 매
우 즐거웠다. "
" 양과는 여자를 가까이 해 보지 않았고, 이때 마침 처음으로 양기가 돌기 시작해 강렬한 욕정을 느꼈다. 접골 때 본 그녀의 희고 부드러운 가슴을 떠올리자 양과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고개를 들어 그녀(육무쌍)에게 입맞추려 했다. 입술에 닿기도 전에 달콤한 향기를 맡고는 마음이 움직이고 혈기가 용솟음쳤다. "
"네(완안평) 눈에 입을 맞추고 싶어. 안심해 ! 오직 눈에다만 입맞출 뿐 다른 짓은 하지 않을 테니까. "
"돌연 소리를 냅다 질러 대면서 양과는 완안평을 끌어안고는 그녀의 눈꺼풀에 입을 맞추었다"
"양과는 창 밖에서 그녀(공손녹악)의 수정같이 맑고 하얀 몸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그도 사내인지라 자신도 모르게 혈맥이 부풀어올랐다."
정영 또한 양과에게 애정을 느껴 자신의 목숨을 보전해준 손수건을 주며, 심지어 곽부 또한 양과를 미워한 것이 양과에 대한 애정때문이란 것을 말한다.
" 비록 그녀(곽부)는 일생동안 아무것도 부족한 게 없었으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실로 말 못 할 유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무엇이든 원하는 것은 곧 구할 수 있었으나 진정으로 가장 원했던 것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곽양은 양과를 따라 죽으려한다.
" 이 순간 그녀는 양과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그에 대한 깊은 정 때문에 마치 땅 속까지라도 그를 따라가려는듯 두 발을 박차 깊은 골짜기로 뛰어들었다."
이러한 양과의 애정편력이라 부를 수 있는 여러 여성들과의 관계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양과에게 있어서 소용녀는 연인이 아니라 일종의 '어머니'로서 작용하고, 그녀에 대한 양과의 사랑은 일종의 '모성애의 갈구'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양과의 어머니 진남금은 양강에게 몸을 강제로 빼앗겨 양과를 낳았고 양과가 11살때 병으로 죽었다. 양과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죽을 때 남긴 몇 마디 말뿐이다.
이처럼 양과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그에게 사랑을 주지 않은 존재일 것이다. 양과는 자신이 도화도에서 멸시믈 받고, 중양궁에서 학대당하던 가장 불우한 때 소용녀를 만났고,
소용녀는 그의 사부였기에, 소용녀를 어머니처럼 자신을 보호해주는 존재로서 사랑하는 것이지 정욕을 품는 여자로서 사랑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소용녀가 아닌 다른 여자들을 만나면 금방 정욕을 품고, 그녀들에게 수작을 걸고, 혹은 마음을 빼앗는다.
또한 소용녀가 양과에게 있어서 어머니와 같다는 점은 소용녀가 윤지평을 용서하는 장면에서 나타난다.
"과아야, 내 이 사람으로 인해서 몸을 더럽혔으니 설령 상처가 다 낫는다고 해도 오랫동안 너를 보살펴 줄 수가 없구나.
다만 그는 목숨을 내걸고 나를 구해주었으니 너는 더 이상 저 사람을 괴롭히지 말아라. 이 모두는 내 팔자가 사납기 때문이다."
"여러 도사들은 소용녀가 하는 말을 듣고 또한 윤지평이 죄를 인정하며 자살하는 것을 보고는 정말로 그가 전진의 대계율을 어기고
비겁한 수단을 이용해 소용녀를 욕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용녀 말에 윤지평의 자신의 음행을 고백하며 자진하고 여러 도사들은 이 사실을 알게되나 양과는 아무 반응이 없다. 그가 남녀관계를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소용녀는 어머니이고, '어머니'는 항상 다른 '남자'와 몸을 섞기 때문이다.
결국 다소 비약하여 해석한 듯한 느낌은 있으나 양과에게 있어서 '협'이란 '존경할만한 부친을 갖는 것'이고, '정'이란 '자신이 보살피고 자신을 보살펴줄 어머니를 갖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이해는 '신조협려'를 전혀 다른 방향의 소설로 읽히게 했다.
IV. 그밖의 의문점 및 불만
'신조협려'에서 가장 의아한 부분중의 하나는 소용녀가 양과에게 16년을 기다리라고 한 것이다. 하필이면 왜 16년인가?
소용녀는 양과가 왜 16년을 기다리라고 했냐고 물으니 "나에 대한 당신의 깊은 애정이 짧은 8년 동안에 결코 식어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아! 16년 후의 약속을 믿고 당신은 계곡으로 뛰어들지 않았나요?"라고 답한다. 이것은 작가의 억지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그냥 16년이 떠올라서 16년을 기다리라고 했다고 답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왜 소용녀, 아니 '김용'이 16년을 기다리라고 했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곽양'때문이다.
김용이 생각하기에 양과가 소용녀를 만난다면 더이상 강호에 머무를 이유가 없고 소설은 끝나야 했다. 그들은 매번 같이 있는 것을 방해받았기에 그들이 남들의 이목이 없는 곳에서 만나는 그 순간 그들의 사랑은 완성되고 소설은 끝나야 한다. 하지만 양과는 대협이 되야했고, 그가 전혀 관심없어하는 천하5절도 되어야 했기에 골짜기에서 나와 몽고의 대한을 죽여야 했다. 또 양과가 골짜기에서 나오는 이유는 '곽양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이기에 곽양이 양과에게 애정을 갖고 스스로 양과를 따라 골짜기로 몸을 던질 정도의 자각이 있는 나이, 혹은 양과가 곽양에게 애정을 갖을 만한 나이는 되어야 했다.
또한 양과가 아래있다는 말에 중인들이 내려가 찾으려고 골짜기에 '밧줄'을 설치하였기에 양과와 소용녀가 골짜기를 빠져나온 것을 생각해보면 곽양이 결코 8살이 되어서는 안된다. 너무 어리면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결국 남녀간의 애정에 눈을 뜨고 사람들이 곽양의 말을 믿어줄만한 나이가 되어야 했다. 곽양이 철이 들 때까지 양과와 소용녀는 안타까워하면서 헤어져있어야 했다. 그것이 15살이되던지, 17살이되던지간에...
또한 소용녀가 자신을 범한 것이 양과가 아니라 윤지평임을 알자 그를 따라다니나 어찌하지도 못하고 그가 자기를 위해 부상을 입자 그를 용서한 부분이다.
이건 한국무협에서도 종종 사용하는 수법이자 남성들의 아주 오래된 착각이며, 김용이 혹평을 받은 부분이 있다면 이것이 아닐까하고 생각되기에 간략히 짚고만 넘어간다.
여성은 타의로 처녀성을 상실해도 무조건 자신을 범한 남자를 따른다는 발상이 이토록 자연스럽게, 팔자탓이라고 나온 것은 김용의 사고가 당시에는 고루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아니 소용녀가 너무 순진무구해서 그런가?
(실제 의천도룡기에서는 기효부가 양소에게 몸을 빼앗긴후 딸을 낳고 이름을 '불회(不悔후회하지 않는다)"라고 지은 것에 비하면 ..)
또 이막수가 천축승을 죽인 부분도 소설의 구성상 매끄럽지 않다.
주자류가 이막수에게 자신의 사숙인 천축승을 왜 죽였냐고 하니 이막수는 그냥 죽였다고 한다.
" 그래, 내가 그를 죽였다. 세상의 좋은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나는 모두 죽일 것이다. 아이고 나 죽겠네! 나 죽겠네!
너희들은 왜 살아 있는 거야? 너희들도 모두 같이 죽어 버려라"
그래도 소설의 시작부분에서는 이막수가 하자와 원자가 육전원의 아내 하원군의 이름과 같은 글자라는 것 때문에 하노권사 일가를 몰살시켰고, 또 원강에서 '원'자가 붙은 배 들을 박살냈다는 부분은 이해가 가나 숨어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천축승을 죽인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이막수가 그냥 성격이 더러워서 죽였다. 아니 소용녀의 독을 해독하지 못하도록, 좋은 말로는 소설의 구성상 죽였다고밖에는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곽양을 구하기 위해 황약사가 이십팔숙대진을 구성하고 성밖으로 나가 싸우는 장면도 다소 이해가 안된다. 양양성을 지키는 수장으로 나오는 곽정이 자신의 딸을 구하기 위해 몽고군이 진을 치고 기다리는 곳으로 수 만명의 병사를 이끌고 나가 싸우는 것은 '위국위민'하는 '대협'의 자세가 아니다. 김용이 망루에 곽양을 매달고 곽정을 협박하고, 황약사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고 양과가 곽양을 구하는 대규모 전투장면을 넣어 소설의 극적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서 '대협'이 '협'을 포기한 셈이다.
V. 나가며
처음 읽을 때는 사건이 너무 많고 복잡하고, 양과와 소용녀의 신세가 안타깝고, 정화니 암연소혼장이니 해서 감탄을 했다.
다시 꼼꼼히 사건들을 정리하고 보니 재미있기는 했어도 인물들의 행동이 이상하고, 일부러 늘이고 꼬고, 다잡은 법왕을 놔주고 다시 잡고, 결국엔 죽이고, 진작에 끝났어야할 얘기를 다시 시작하는 것같아 긴장감도, 또한 동감가는 부분도 많이 사라졌다.
해서 세번째는 아니 읽는 것이 좋을듯하다.
추신 : 이 글은 오로지 제가 신조협려를 읽고 느낀 점을 적은 것에 불과하며 작가를 모욕하거나 그의 글을 비방할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닙니다.
저도 김용의 글을 무척 좋아합니다. 다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정도로 보아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