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책의 표지에 쓰인 광고가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것은 대여점에서 책을 빌어오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어
느 정도는 선택에 영향을 미치게 되겠지요. 더구나 책 표지에
쓰인 광고 문구가 선정적이라거나 자극적인 경우에는 한번이
라도 더 눈길을 주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이번 공동
구매를 통해 구입한 임준욱의 네 번째 소설 건곤불이기는 그
런 광고문구 때문에 출간당시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책이었습
니다.
아무리 대중문화의 유행을 쫓는다 한들 [조폭마누라 길들이
기]라던가, [눈감고 고수되기] 따위의 현란한 문구가 적힌 책을
얼씨구 좋다고 집어 들만큼 유행에 민감하지 못한 지극히 개
인적인 취향 탓이긴 했습니다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실망감
이 더 크게 작용해서 대여점에서조차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그 기대란 것이 어처구니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시공사에서
국내 판타지와 SF, 추리, 밀리터리, 스릴러, 로맨스 등과 만화
적 상상력이 결합된 새로운 장르소설의 종합 브랜드라는 이름
으로 거창하게 만든[마술램프]에 관한 나름대로의 환상 같은
것이었지요. 무협을 선두로 한 장르문학 분야에 메이저 출판사
까지 진출하는 시기에, 나름대로 입지를 다져온 시공사가 드래
곤북스라는 브랜드를 두고 또 다른 브랜드를 만들어 책을 낸
다는 사실에 흥분되기까지 했습니다. 거 왜 있지 않습니까? 새
로운 브랜드가 출시될 때는 거창하게 시작하려는 의미에서 제
법 무게있는 작품을 초반에 낼 것만 같은 기대감이랄까, 그런
느낌 말입니다.
그런 흥분 속에서 처음 대하게 된 마술램프의 책이 임준욱의
건곤불이기였는데, 그것이 책장 한번 넘겨보지 못하고 겉 표지
에 쓰인 마음에 들지 않는 광고 때문에 팽개치게 되었던 것이
지요.
책을 모두 읽어보신 분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겠습니
다만, 대체 조폭마누라 길들이기와 건곤불이기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물론 제목을 놓고 보거나
내용의 극히 미미한 일부분일망정 전혀 관계가 없다 말할 순
없습니다만, 책표지에 실어 광고할 만큼은 못되는 것이라 생각
합니다.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구입을 미루고 있었던 책을 이번 공.구
를 통해 구매하게 됐습니다.
읽고 난 이후의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아쉬움]입니다.
다 좋은데 왜 하필 마무리를 무덤으로 했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것만 빼면 더없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기관과 진식이 혼재돼 있고, 거기에 술법까지 가미된 오래된
유적이나 함정에 등장인물 전부가 들어가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던 대단원의 막이 내리는 형태의 무협은 질릴 만큼 많이 읽
었습니다. 책 읽는 독자가 질릴 만큼이니 글 쓰는 작가는 그런
소재를 채용한다는 것이 진부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런 장면들을 만나게 되는
것을 보면, 그런 장면이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가 봅니다.
요즘은 거의 찾아 볼 수 없게된 [절벽 추락 후 기연을 얻는
씬]처럼 - 그나마도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만, 무협의 유
행 조류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것은 게으름의 산물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고 어찌 어찌 전개시켜 이끌어 왔는데, 근사
한 마무리를 생각하기 귀찮아서 관계된 모든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그동안 깔아 놨던 복선도 모두 풀어놓고, 전개됐던
이야기를 한꺼번에 종결시키는 장치로 무덤이나 오래된 유적,
혹은 인위적으로 만든 함정만큼 근사한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
까? 그러니 너도나도 차용해 쓰는 것이겠지요.
작가가 게을러서 그렇다는 발상은 자칫 위험한 것일 수도 있
습니다. 작품의 끝머리에 그런 설정이 나온다 해서 모든 작가
가 게으르단 얘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얘기 한 것처럼 생각하기 귀찮고 게으르며 마무리가
약해서 그런 장치들을 차용해서 쓴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길을 피하려면, 그런 장치들이 등장해야만 하는 설정에 좀
더 설득력 있는 문구를 삽입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될
것입니다.
이번 공동구매에 힘쓰신 모든 분들께 다시금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