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을 블랙코미디로 변질(?)시키는 한상운의 1998년 데뷔작입니다. 감상이라면서 줄거리가 부분적으로 소개됩니다. 그 이유는, 어차피 이 작품은 단순한 줄거리보다는 한상운 특유의 비틀기와 유머러스한 표현들이 핵심이기 때문입니다.(이하 경어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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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육을 요리하는 법이 적힌 요리책인 천도서. 종이는 사람의 가죽이고, 글씨는 먹이 아닌 피로 씌여진 책. 그 책을 사이에 두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거기에 무림을 지배하는 화씨세가의 내부문제까지 얽히면서 이야기는 복잡해지고...
1. 주인공
유상진... 주인공의 이름이다. 무협을 보고 나서 꽤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 그 작품에 대해 떠올리면 많은 것들을 잊어 먹어도 주인공 이름 하나는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유상진이라니... 주변에서 한번쯤은 들어 볼 것 같은 이름이다. 인터넷 전화 번호부로 그 이름을 검색해 봤다. 수록된 이름만 전국에 86명이다. 무협에 나올 이름이 아니다. 우스운 것은 그 이름이 가명이고 본명은 '유화덕'이란 것이다. 유덕화가 아니고...^^
한상운 작품의 주인공들이 그랬듯 유상진 역시 강호도의, 무림평화 등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손가락에 난 작은 생채기에도 아파하는 겁쟁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재주도 없는 인간도 아니다. '천무상'이라는 전설적인 요리사의 제자였다. 다만, 그의 인생이 꼬인 것은 순전히 운이 없어서다. 우발적으로 저지른 몇 번의 살인은 그의 인생을 바꿔 버린다. 첫 살인의 대상이었던 사부는 넘어가더라도, 두 번째로 죽은 이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림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화씨세가의 이공자였으니... 재능은 있지만 불운한 인간. 우리 주위에서 한번쯤은 볼 듯한 사람이다. 결국 평범한 보통의 사람..
2. 양각양
두 다리를 가진 양...
고대 중국에서는 양이란 가축이 꽤나 특별했나 보다. 덩치가 큰(大) 양(羊)을 보고 아름답다(美)고 했다. 양(羊)에게 밥(食)을 먹이면 기르는 행위(養)가 되고, 양(羊)을 본다는 것(示) 자체가 상서로운 일(祥)이다. 내(我)가 양(羊)을 떠받드는 것을 의로운(義) 행동이라고 했으니... 그러나 인육을 양고기라 한 것은 이런 유목시대의 전통보다는 오히려 '양들의 침묵'이란 영화가 한몫 했음직하다. 도살될 양을 지키지 못한 유년의 기억을 갖고 있는 크라리스와 식인의 전력이 있는 한니발... 연상이 더 쉬웠다.
어쨌든 일반인은 함부로 먹지 못하고 감히 먹을 생각도 못할 사람고기... 그것을 좋아라 하며 즐겨 먹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관부, 유림, 무림 그리고 상계의 실력자들이다.
물 대신 맥주 먹인 소를 먹는 사람들. 비싼 유기농 야채가 아니면 밥을 못 먹는 사람들. 샤토 라피트 로칠드를 마시며 고기를 먹어야 하는 사람들, 남들이 거실에 비싼 카페트를 까니까 더 비싼 원목으로 거실을 장식하고, 남들이 국산 고급차를 사니까 서둘러 외제차로 바꾸는 사람들... 어떻게 하면 보통사람과는 다르게 보일 수 있을까 고민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한상운식의 통렬한 비웃음의 코드가 바로 사람고기인 것이다.
3. 결코 평범치 않은 내공 전수
도객 주신봉... 자기 말로 젊은 시절 한 인물 했다던 그는 정파의 고수로 제법 알려진 인물. 그러나 유상진이 감옥에서 만났을 때의 주신봉은 감언이설로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지하감옥에서의 기상천외한 거래... 억눌린 욕망의 분출... 마지못해 실현되는 약속... 그걸 기연이라 부르려니 웃음밖에 안 나온다.
감옥 속에서 벌이는 두 사람의 신경전과 실랑이에서부터 주신봉이 죽는 장면까지가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다.
4. 그리고... 허무해지는 결말
나름대로 주인공은 살려고 발버둥을 쳤다. 돈에 팔려 살인도 하고(결국 그 때문에 사건이 시작된다.) 내공을 얻기 위해 자신의 뒤(?)까지 내 줬는데.... 결국은 주인공이 죽을 것을 암시한다. 천신만고 끝에 어찌어찌 해서 돈도 챙기고 사랑하는 여인도 찾았지만 유상진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양각양의 창설자이자 무림십대고수 중 하나인 무색야차 양여천. 살고자 아등바등 했지만 결국은 죽는 운명...
살인, 남색, 동성동본간의 사랑(사랑하는 여인이 유가영이다.) 등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놈은 죽어야 한다는 사필귀정에 대한 향수인가 아니면 죽을 운명을 타고난 평범한 사람들, 즉 우리들의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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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각양>은 고월과의 공저로 나왔지만, 추천글에 따르면 고월보다는 오히려 <활검살도>의 작가인 상관월과 함께 한 작품인 듯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뒤이어 나왔던 <독비객>에서의 사정없는 비틀기를 감안하면 데뷔작인 이 작품에서는 상당히 절제(?)된 모습을 보입니다. 작품 곳곳에서 보이는 한상운의 재기와 엽기적인 장면들은 한상운이 그 시작부터 범상치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기회가 되면 한번쯤 접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