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라운지

라운지 감상/비평
내 마음의 무협 암왕
천장지구·2003.11.01 11:37
1,376
2

對酒當歌 술 앞에 두고 노래 부르네

人生幾何 인생이 그 얼마이던가

譬如朝露 아침 이슬처럼 덧없는 것

去日苦多 지난날 괴로움은 얼마이던가

지락을 찾아 세상을 헤메이던 교룡들이 성녀의 말을 양백에게 전하고

꽃배를 탄채 사라지는 장면에서 나오던 조조의 단가행중 일부입니다.

즐거움을 위해 사해오호를 떠돌아 다니지만 결국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의 허무

를 한 편의 시로서 멋들어지게 표현하고 있는 장면이라 생각됩니다.

암왕의 멋스러움은 이러한 시들의 적절한 인용이 한 몫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지요.

작품 전반에 흐르는 비장미와 더불어 애절하게 심금을 울리는 서정성은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 마음들을 시와 노래들이 대신하여

오히려 잔잔한 여운의 미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지금 다시 보아도 암왕의 문체는 간결하고도 투박합니다.

한때 사춘기 시절을 사로잡았던 야설록의 작품들이 지닌 서정적이고도 감성적인 문

체들이 주는 애뜻한 감성과는 참으로 비교되는 부분이지요.

하지만 그 화려함을 대신하는 소박함이 오히려 장면의 여백을 만들어 마음의 울림

을 더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작가도 말했지만 모든것을 가질 수 없다면 자신만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더 좋을 지도 모른다는 말이 바로 거기서 드러나는 것을 볼 수가 있더군요.

작품의 진정한 주제라 할 수 있는 배교의 부활보다 명옹 명강량과 성녀의

사랑이 더 부각되어 보이는 것은 그만큼이나 그러한 장치들이

효과적이었다는 반증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암왕을 최고의 무협으로 꼽는 까닭은 믿음을 위해

죽어가는 이들의 수난사와 복수와 희생이라는 한 종교의 수난과 부활의 역사를

또다른 현실의 재현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장치들을

적실히 사용함으로 보여 주는 종교적 승화의 과정입니다.

天長地久有時盡 하늘과 땅이 영원하다지만 그 다하는 때가 있습니다.

此恨綿綿無絶期 이 한만은 영원히 이어져 그 끊임이 없을 것입니다.

흔치 않게 무협에서 인용되어 왔던 백거이의 장한가중 마지막 구절입니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간절한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평가되기에 자주 이용되었고

또 당대 기녀들 사이에서 오늘날의 유행가처럼 널리 불려졌던 노래이기도 합니

다.

그러나 실상 이 시구의 恨은 단순한 두 남녀의 간절함이라기 보다

인세의 끊없는 어리석음을 나타내고 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한 여인에 대한 집착과 애정이 한 나라까지 망하게 했지만 이러한 인간의

실수는 반복될 것이라는 이야기이지요.

암왕에서도 명강량은 자신의 선택으로 올 모든 세상의 비난을 그 짐들을 짊어지게

됩니다.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올지라도 한 여인에 대한 그의 마음때문에 말

입니다.

이 인간적인 결정은 인간이기에 선택하게 되는 필연적 과정일지 모릅니다.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전형적인 방법 바로 복수이지요.

이처럼 영원한 무협의 테마인 사랑과 복수를 다루지만 그 절정의 순간

명강량은 희생이라는 선택을 통해 종교적인 승화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땅에 묶인 존재이던 그가 하늘 저편에 존재가 된 성녀와 재회하게 됨으로

모든 은원과 갈등들에서 자유스러워집니다.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그 마음...그 모든것들이 배교의 천년을 이어온 것이었습니

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그들의 딸 애령이 깨달을 때 그 순간의 격정 때문에

제 마음을 흘려보내었습니다.

5년만에 다시 보아도 그 때 그 시절의 감동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런 행복한 글읽기를 선사해준 장경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