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화 ㅡ 카론의 미궁과 사랑의 시련]
주변이 갑자기 붉은 별빛이 갈라지듯 흔들렸다. 그 빛은 단순한 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의 색이었다. 늙어가는 별, 태어나는 문명, 사라지는 기억, 그 모든 것이 붉은 파동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해온은 카론을 향해 조용히 무극광명검을 들어 올렸다.
“···시간의 결이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라니.”
그의 발밑은 더 이상 단단한 땅이 아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이 물처럼 흔들리며, 과거의 장면들이 반사되었다.
어린 시절, 히말라야 사원의 눈보라, 그리고··· 해솔과 처음 만났던 순간까지.
“환영이 아니라··· 기억의 잔향인가.”
그 순간 앞에 있던 카론이 시야에서 사라지며 말했다.
“정답에 가까운데, 반은 틀렸다.”
어느새 뒤에서 들려온 카론의 목소리. 해온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카론.”
그 이름을 속삭인 후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처음 그대로의 거대한 존재가 서 있었다.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지만, 얼굴의 절반은 금속, 절반은 검은 안개. 눈은 시계처럼 돌아가고 있었고, 그의 몸 주위에는 수많은 시간의 파편이 떠다니고 있었다. 마치 깨진 거울 조각처럼.
“나는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아니다.”
카론이 웃었다.
“나는 시간에 먹힌 자다.”
그의 말이 끝나자 공간이 한 번 뒤집혔다.
'툭!'
해온의 손에서 무극광명검이 떨어졌다.
“···?”
해온의 손이 늙어 있었다. 피부는 주름졌고, 힘이 빠져 있었다. 카론이 손을 튕겼다.
“이곳은 ‘시간의 시련’. 네가 살아온 모든 시간, 그리고 살아갈 모든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다.”
해온은 조용히 손을 쥐었다. 그러자 온 몸이 밝게 빛나며 다시 젊은 손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조작형 환상은 아니군. 인과 자체를 건드리고 있어.”
“오, 빠른 이해력.”
카론이 거대한 손으로 박수를 쳤다.
“역시 무극의 사자는 다르다니까. 예전 다른 놈들은 설명하다가 내가 먼저 지쳤거든.”
“···예전 놈들?”
“응. 다 죽었어.”
카론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시간의 힘을 못 버티더라고. 인간형 종족들은 특히 연약해. 과거에 집착하거나, 미래를 두려워하거나.”
그의 눈이 빛났다.
“그래서 물어보지. 너는 어느 쪽이냐, 해온?”
그 순간. 공간이 갈라졌다. 해온의 앞에 하나의 장면이 펼쳐졌다. 따뜻한 햇살. 작은 집. 그리고···
“···이건···”
그는 그 장면을 알고 있었다. 지구 행성에서의 삶. 평범했던 어느날의 일상. 그곳에는 그가 있었다. 그리고 해솔이 있었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해솔이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빛이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비어 있었다.
“그 세계선에서는 말이야,”
카론이 갑자기 또 사라졌다 옆에서 나타나며 말했다.
“네가 무극대도를 선택하지 않았어.”
“···뭐라고?”
“그냥 평범하게 살았지. 사랑하고, 늙고, 죽고, 평범한 삶의 끝.”
카론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삶도 나쁘지 않지 않냐? 솔직히.”
그 장면 속 해온이 말했다.
“해솔, 오늘은 바다 보러 갈까?”
“응, 좋아.”
아무것도 모르는 웃음. 아무것도 짊어지지 않은 삶... 해온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때, 카론이 낮게 속삭였다.
“저게 네가 버린 삶이다.”
세 호흡 동안의 정적...
“···버린 게 아니다.”
해온이 말했다.
“선택한 거다.”
카론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 그럼 이건?”
또 하나의 장면이 열렸다. 이번엔 어둠이었다. 완전히 무너진 세계. 하늘은 공간이 갈라졌고, 별들은 붕괴하며 떨어지고 있었다. 그 중심에 해솔이 쓰러져 있었다.
“···해솔!”
해온이 해솔에게 뛰어가려는 순간, 보이지 않는 벽이 막았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존재. 검은 갑주와 붉은 눈의 존재.
“또 다른···나?”
그 존재가 고개를 들었다. 그건 해온의 또 다른 자신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존재.
“이 시공의 세계선에서는 네가 선택을 잘못했지.”
카론이 말했다.
“끝없는 힘을 추구하다가··· 결국 다 잃었어.”
그 또 다른 해온이 입을 열었다.
“하찮은 감정은··· 불필요하다.”
그리고 또 다른 해온의 검이 떨어졌고, 해솔의 형상이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순간, 그 때 그곳의 공간이 무너지며 사라졌다.
“이제 질문이다.”
카론의 목소리가 울렸다.
“너는 어느 길을 택할 거냐?”
그의 손짓에 세 개의 길이 나타났다. 첫 번째, 평범한 삶. 두 번째, 절대적인 힘, 그러나 고독. 세 번째,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
“셋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카론이 웃었다.
“참고로, 세 번째는 제일 위험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서 아직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거든.”
잠깐의 침묵. 그리고 해온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너, 꽤 친절하네.”
카론이 눈을 깜빡였다.
“뭐?”
“설명도 자세히 해주고, 선택지도 주고.”
해온이 어깨를 가볍게 움직이며 풀었다.
“근데 하나 빠졌다.”
“뭐가?”
해온이 오른손에 무극광명검을 다시 쥐었다.
“나는 선택하는 쪽이 아니라...”
그의 눈이 깊게 빛났다.
"나는 창조하고 만드는 쪽이다.”
그 순간, 카론이 보여준 다른 시공의 세 개의 길이 동시에 흔들렸다. 카론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다.
“···뭐야, 이건.”
해온의 발밑에서 은은한 무극의 파동이 퍼졌다. 빛도 아니고 어둠도 아닌, 그 사이의 어떤 것.
“무극은 선택이 아니다.”
그가 한 걸음 내디뎠다. 그 세 개의 다른 세계선의 길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억지로 분리되지 않은 원래 하나의 상태다.”
카론이 이를 갈았다.
“그건 대우주의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야.”
“아니.”
해온이 말했다.
“무극은 모든 규칙을 초월한 바깥이다.”
'콰아아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시공간이 찢어졌다. 시간의 파편들이 한순간에 역류했다. 카론이 처음으로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이 녀석··· 진짜로···”
해온이 무극광명검을 다시 들었다.
“카론.”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선명하고 확실했다.
“넌 시간을 다루는 게 아니다.”
한 걸음 더.
“시간에 갇혀 있는 노예인거다.”
카론의 눈이 흔들렸다.
“닥쳐라.”
“과거에 묶이고,”
또 한 걸음 더.
“미래에 집착하고,”
다시 또 한 걸음 더.
“현재를 잃어버린 채로.”
실제 시간보다 카론의 느낌상 더 긴 정적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카론의 몸이 떨리며 흔들렸다.
“···그건···”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가··· 선택한 게 아니야.”
그 순간, 주변의 시공간이 다시 한번 일그러졌다. 그리고 완전히 다른 장면이 열렸다. 어두운 실험실, 수많은 기계, 그리고 한 소년이 보였다.
“실험 코드 C-01. 시간 동기화 시작.”
기계음이 들리고 소년이 비명을 질렀다.
“그만해! 싫어!”
시간이 반복됐다. 수백 번, 수천 번... 그 소년이 바로 어릴적 카론의 모습이었다. 해온이 지그시 눈을 떴고, 그 앞에는 카론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만··· 제발 그만 해.”
그의 몸이 시공간속으로 붕괴되고 있었다. 시간의 힘이 그를 갉아먹고 있었다.
“도저히 난··· 멈출 수 없어···”
해온은 조용히 카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카론이 떨리는 눈으로 해온을 봤다.
“···왜?”
“초월하면 결국 하나의 같은 길이니까.”
해온이 말했다.
“나도··· 한때는 그 하나를 잃어버렸으니까.”
잠시 정적이 흐르고, 카론이 웃었다.
“···진짜 웃기네.”
그는 힘없이 말했다.
“적한테··· 위로 받는 날이 올 줄이야···”
그의 몸이 빛으로 산란하듯 흩어지기 시작했다.
“해온, 무극의 사자...”
마지막으로 그가 말했다.
“조심해라.”
“···뭘?”
카론의 눈이 마지막으로 빛났다.
“이 시련··· 진짜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그 순간, 그의 몸이 완전히 사라졌다. 고요한 정적, 그리고 '딱' 소리가 나며 무언가가 떨어졌다. 해온이 내려다 보니, 작은 빛의 구체가 있었다. 천명 함대의 슈퍼 인공지능 세이렌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의 시련 클리어! ‘시간의 핵’을 획득하였습니다.”
그 때 멀리서 해솔의 목소리가 들렸다.
“해온! 들리니?! 나 이상한 공간에—”
그리고 해솔의 목소리가 갑자기 뚝 끊겼다.
해온의 눈빛이 강렬하게 변했다.
“···해솔.”
그의 앞에 새로운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완전히 검은 문이었고, 세이렌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다음 시련인 ‘의식(意識)’의 영역 진입.”
잠깐의 침묵 후, 해온이 피식 웃었다.
“···이번엔 또 뭐가 나오려나.”
그리고 그는 망설임 없이 그 문을 향해 걸어갔다.
모든 빛이 꺼졌다. 아니, 정확히는 빛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졌다. 해솔은 한동안 자신이 눈을 떴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둠이 아니라, ‘인식할 수 없는 상태’였다.
“···여기··· 어디지?”
그녀의 목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파동처럼 퍼져나갔다. 그리고 미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말하네.”
낯선 목소리가 응답했다. 해솔의 의식이 번쩍 깨어났다.
“···누구야?”
그러자 갑자기 그녀의 앞에 나타나 서 있는 존재가 보였다. 전체 형태는 인간과 비슷했지만, 얼굴은 흐릿했고, 경계는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기억 속에서 덜 완성된 누군가처럼.
“나는 이곳의 안내자야.”
그 존재가 말했다.
“나는 두 번째 시련인 ‘의식’의 존재가 아니라···”
잠깐 멈칫 한 후...
“···정정할게. 너한테는 어쩌면 ‘사랑’의 형상이다.”
해솔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거, 내 의지에 따른 선택형 아니었어?”
"기본적으로 원래는 그래.”
안내자의 존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넌 좀 특이 케이스라서...”
“···특이?”
“응. 너는 이미 시작했거든.”
잠시 정적과 함께 그 말이 끝나자 주변 시공간이 또 무너졌다. 따뜻한 햇살과 바람, 잔잔한 파도 소리에 해솔은 눈을 떴다.
“···여긴···”
이곳은 바다였다. 푸른 지구 행성의 바다. 해솔에게는 아주 익숙한 풍경이었다.
“···이거···”
그녀의 발이 바닷가의 고운 모래를 밟았다. 그 감촉이 너무나도 현실적이었다.
“환상··· 아니야.”
“맞아.”
해솔의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해솔이 돌아섰다. 그리고 잠시 숨이 멎었다.
“···해온?”
그가 서 있었다. 그리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모습보다도 평범하게...
“왜 그렇게 놀라?”
해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여기 자주 오잖아.”
해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건··· 의식의 기억이야?”
“기억이 아니라...”
그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의 가능성이지.”
그 순간, 푸른 파도가 크게 밀려왔다. 그리고 시간선의 장면이 서서히 바뀌었다.
“축하해요! 두 분 결혼 10주년입니다!”
"와아아—"
사람들의 큰 함성과 박수 소리. 따뜻한 실내와 기다란 식탁. 그리고 해온과 해솔의 모습들이 보였다.
“···이게 뭐야···”
해솔의 손이 떨렸다. 그녀의 왼손 약지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해온이 앉아 있었다. 조금 더 나이 든 모습, 하지만, 분명히 해솔과 똑같은 외모의 사람.
“왜 그래?”
그가 웃었다.
“케이크 안 먹어?”
해솔의 입술이 떨렸다.
“···이건··· 우리가 아니야.”
“왜 아니야?”
그가 말했다.
“너랑 나잖아.”
그 순간 갑자기...
“틀렸어.”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들리며, 보이는 모든 시공간이 갈라졌다. 그런 다음 다시 칠흑같이 어두워진 후, 그 어둠속에서 세상이 점점 밝아지면서 또 다른 시공간에서 새로운 세계선의 장면이 나타났다.
이번엔 어느 대형 종합병원 병실 내부의 모습 이었다. 건조한 공기와 의료기기의 기계음이 '삑— 삑—' 소리를 내며 병실의 적막함을 깨뜨렸다.
“···아···”
해솔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침대 위에 해온이 누워 있었다. 눈을 감은채, 말없이 움직이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이건··· 아니야···”
그녀가 상심하며 뒤로 물러났다.
“이건··· 정말 아니야···”
“이건 ‘또 다른 가능성’이다.”
굵고 낮은 안내자의 목소리가 병실에 울렸다.
“그가 선택을 조금만 늦췄다면...”
'삑—ㅡ', 갑자기 기계음이 길게 이어졌다.
“이렇게 됐겠지.”
잠시 침묵과 정적 후, 해솔의 호흡이 빨라지고 무너졌다.
“···그만해.”
“왜? 운명의 가능성인데...”
“그만하라고.”
“이건 그 가능성에 의한 현실이야.”
안내자가 말했다.
“사랑은 항상 행복으로 끝나지 않아.”
해솔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젖어 있었다.
“···그래서 뭐?”
“그래서—”
안내자가 한 걸음 다가왔다.
“넌 어떤 사랑을 선택할 거지?”
그의 손짓에 수십 개의 장면이 동시에 펼쳐졌다. 행복한 삶, 비극적인 이별, 서로를 잊어버린 미래, 끝까지 함께한 노년, 그리고 혼자 남겨진 해솔의 황혼. 그녀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게··· 가능성의 전부야?”
“아니.”
안내자가 웃었다.
“이건 일부야.”
그의 눈이 빛났다.
“진짜는—”
또 보이는 시공간이 완전히 무너졌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완전한 공백. 그곳에 해솔 혼자 있었다.
“···이건 뭐야?···”
대답은 없었다. 시간도, 공간도, 감정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냥 걸었다. 한 발, 또 한 발씩...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아.”
여긴 해온이 없는 세계였다. 그 순간 심장이 아려오고 찢어지듯 아팠다.
“···해온!···”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녀는 바로 주저앉았다.
“왜···”
눈물이 흘렀다.
“해온··· 왜 여기에는 없어···”
다시 얼마간 정적이 이어지고, 멀리서 아주 희미한 파동의 음성이 들렸다.
“···해···솔···”
그녀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해온?!”
하지만 그건 금방 사라졌다. 다시 적막한 공허속에서 해솔의 눈이 흔들렸다.
“···이건··· 시험이지···”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속지 않아.”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는··· 알아···”
그녀가 중얼거렸다.
“해온은··· 사라지지 않아···”
그 순간 주위 공간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런데 시련의 시공간의 밖, 리사리아 성단에 있는 천명함 내부에 경보음이 급하게 울렸다.
“경고. 리사리아의 중앙 통제 AI 네트워크 불안정.”
천명함의 슈퍼 AI 세이렌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아린이 고개를 들었다.
“뭐야 또?”
“무극 신호와 동기화중 충돌 오류 발생.”
구도가 중얼거렸다.
“···설마 시련이 외부까지 영향 주는 거냐?”
“가능성은 87%입니다.”
라카가 헛웃음을 쳤다.
“와, 이거 점점 스케일 미쳐가네.”
그때, 화면에 한 소녀가 나타났다. 하얀 머리와 푸른 눈의 소녀.
“···아르셀?”
설하가 숨을 삼키자, 아르셀이 말했다.
“그녀가··· 무너지고 있어요.”
“···누가?”
아르셀의 눈이 흔들렸다.
“해솔.”
잠시 놀람의 침묵과 정적.
“그녀의 감정 파동이 리사리아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어요.”
아린이 분노의 욕을 삼켰다.
“···이거 그냥 개인의 시험 아니네.”
세이렌이 분석을 이어갔다.
“사랑의 시련... 행성 단위 공명 발생 중.”
라카가 고개를 저었다.
“연애 감정의 문제 하나로 행성이 흔들린다고?”
구도가 툭 던졌다.
“그게 보통 연애 감정이냐?”
“···그건 인정.”
다시, 시련의 시공간과 세계선의 내부.
해솔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해온···”
그녀의 손이 떨렸다.
“···어디 있니?···”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다. 해온과 처음 만났던 순간,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상하게 운명적으로 끌렸던 그 느낌.
“···”
그녀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래.”
조용한 목소리.
“나는 기억해.”
공간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우리는 수많은 생에서 수없이 헤어졌고—”
어둠의 시공에 빛이 생겨났다.
“···수없이 다시 만났어.”
해솔의 강한 의지에서 파동이 퍼졌다.
“···그러니까—”
그녀의 눈이 밝게 빛나며 크게 열렸다. 강하게 확신하며...
“반드시 없을 리가 없잖아.”
'콰아앙—'
그곳의 공간이 찢어졌다. 그 찢어진 공백 속에서 하나의 빛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해온의 형상이 나타났다.
“해솔...”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가 밝게 웃었다.
“···찾았다.”
그 순간, 시련의 시공간 전체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외부의 리사리아 성단의 중심 수정기둥에서 엘리시온의 눈이 번쩍 열렸다.
“···이건···”
그의 목소리가 낮게 떨리며 울렸다.
“사랑의 시련을... 강제로 재정의했다.”
그의 눈에 흥미가 스쳤다.
“··· 매우 재밌군.”
시련의 세계선 내부에 해솔과 해온이 마주 서 있었다. 하지만 해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진짜 나 맞냐?”
해솔이 피식 웃었다.
“조금 덜 멍청한 해온 2.0 버전.”
“야.”
“농담이야.”
잠깐의 정적, 그리고 둘이 동시에 웃었다. 그 순간, 그곳의 시공간이 완전히 무너지며 빛이 폭발했다. 그리고 세이렌의 단호한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사랑의 시련 클리어! ‘공명 핵’ 획득.”
그리고 이어서 엘리시온의 목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또다시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세 번째 시련은 이미 시작됐다.”
검은 공간, 그 깊은 곳에서 누군가 눈을 떴다.
“···드디어···”
그리고 음산하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깨어났네.”
그 음산한 존재의 눈은 해온의 눈과 똑같았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어둠의 기운이었다.
“이제 내가 나서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