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사당에 묻은 사랑을, 딸은 같은 자리에서 되풀이했다.
늦가을, 사당 마당의 은행나무는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잎을 떨구었다.
아무도 그 나무가 무엇을 지켜보았는지 알지 못했다. 한 세대 전, 그 아래에서 나마지막 밀회와 마지막 입맞춤을. 그리고 한 세대 뒤, 같은 자리에서 되풀이된 또 다른 밀회를.
사람들은 신라를 성골의 나라라 불렀다. 하늘이 내린 핏줄, 가장 귀하고 가장 순수해야 할 그 혈통을 지키기 위해, 이 나라는 형제를 남편으로, 자매를 아내로 삼는 일마저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을 신성한 의무라 불렀다.
그러나 핏줄로 지켜낸 것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한 여인은 사랑하는 이를 사당 그늘 아래 묻어둔 채, 평생 다른 이름으로 살아야 했다. 그녀의 딸은, 알지 못한 채 어머니와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그 사랑의 끝에서, 딸은 결국 손에 독배를 들었다.
신라 마지막 공주는 왜, 나라의 두 번째 권력자를 독살했는가.
훗날 사관들은 이 사건을 짧게 기록했다.
"공주, 상대등을 독살하다."
그 여덟 글자 뒤에 감춰진 것이, 두 세대에 걸친 사랑과 배신과 침묵의 전부였다는 것을, 그들은 결코 적지 않았다.
- 성골로 태어나, 사랑 대신 혈통을 선택해야 했던 어머니
- 그 사랑을 짓밟힌 채, 권력으로 복수를 완성해가는 사내
- 어머니와 같은 자리에서, 어머니와 같은 사랑에 빠진 딸
- 그리고 그 사랑이 만든, 지울 수 없는 비밀 하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하나는 괴물을 만들었고, 하나는 살인자를 만들었다.
이 이야기는, 사관이 적지 않은 그 침묵을 대신 전한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은,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던 어느 봄날의 책봉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