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동안 한 번도 서두른 적 없는 걸음이 있다.
문 앞엔 줄이 없다.
줄을 설 이유가 없으니까. 사람은 한 번에 하나씩, 정해진 순서로 떨어진다. 그 경계에 선 이는 천 년째 같은 자리에 있다. 위에는 백여덟 채의 집, 아래는 지옥. 둘 다 그의 책 한 권에 속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미 풀려난 이름이 다시 그 책에 떠오른다. 있어선 안 될 일이다.
그 균열을 따라가다 보면, 심판자는 자신이 한 번도 묻지 않았던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기억하지 못한 채로 그냥 지나쳤을까.
이 소설은 벌이 아니라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다.
천 년을 혼자 있던 자가,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사흘을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
다크판타지. 낮은 언어로 씁니다. 이번엔 공포보다, 침묵 속에서 자라는 정(情)을 봐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