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거의 첫마디는 욕이었습니다. 그 욕을 옮긴 게 이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각성으로 얻은 능력은 전투가 아니라 '듣는 귀'였고, 그 귀 하나로 갱도의 밀린 임금을 받아 내고 국가 정상 앞에도 앉았습니다. 그런데 19화에서, 그 귀가 처음으로 반갑지 않은 걸 듣습니다. 이십 년 전 첫 번째 문이 열리던 날, 사이에 서서 통하게 해 주겠다던 통역자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전 40화 완결작입니다. 완결일자는 8월 13일였습니다. 아래는 19화 속 두 장면입니다 — 이십 년 전 문을 판 통역자의 정체가 드러나는 대목과, A급 스타 헌터 강세라가 협회가 아니라 주인공 쪽에 서기로 정하는 대목입니다.
━ 19화 발췌 ━
우리는 정제소를 빠져나온 뒤에야 숨을 골랐다. 야산 그늘에서 나는 회선을 닫기 전에 물었다.
"스승님. 그 사람이 누굽니까."
『첫 접촉의 통역자다.』 카르낙스의 목소리가 낮았다. 『이십 년 전 그 겨울, 첫 문은 우리가 열었다. 죽어 가는 세계에서 도망치려고. 넘어와 보니 이곳에도 말이 있었다. 그때 인간 하나가 나섰다. 양쪽을 오가며 통하게 해 주겠다고. 우리는 믿었다. 말을 아는 자를 어찌 안 믿겠느냐, 우리 같은 자들이.』
카르낙스가 잠시 말을 멈췄다. 삼천 년을 산 목소리에 오래된 피로가 얹혔다.
『그자는 배우는 게 빨랐다. 우리 말을, 문의 말까지. 짐은 그를 어전에 들여 문을 여닫는 말을 조금 보였다. 그것이 짐의 실수였다. 그자는 열쇠를 훔쳐 이곳의 권력자들에게 팔았고, 그날부터 문은 이쪽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협상이 될 뻔한 것이 전쟁이 됐다. 통역자 하나가 다리 대신 열쇠를 판 것으로.』
"이름은요."
『짐은 그자의 진명을 모른다. 이름을 맡길 만한 자가 아니었으니까. 그자는 스스로 이름을 지웠다. 남긴 것은 목소리뿐이고— 방금 그 목소리가 이십 년 만에 다시 문을 부르고 있었다.』
카르낙스가 말을 이었다. 넋두리 없는 목소리로.
『통역자. 그자와 너는 같은 재능을 가졌을 것이다. 그래서 짐이 더 무섭다. 같은 문 앞에서, 한 사람은 팔았고, 한 사람은— 아직 안 팔았다. 회선을 닫아라. 코피가 멎지 않는다.』
회선이 닫혔다. 팔뚝의 비늘이 스러졌다. 그리고 스승님이 삼천 년 동안 지켰던 침묵도 같이 걷혀 버렸다. 나는 그 빈자리가 이상하게 허전했다.
(중략)
강세라가 온 건 그날 밤이었다.
노크 없이 문을 열었다. 경호 대상 방에 노크가 필요하냐는 논리였는데, 사실은 그냥 그녀 성격이었다. 손에 두꺼운 서류철을 들고 있었다.
"헌터 협회 마정석 유통 기록. 최근 이 년 치예요."
"그거 어떻게—"
"A급이 이 년 동안 잡은 폭주 몬스터가 몇 마린 줄 알아요? 그 마정석이 어디로 갔는지, 나는 서명할 권한이 있어요. 유통 서류에 헌터 서명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뽑았어요." 그녀가 서류철을 책상에 놨다. "열이틀마다 유통량이 튀어요. 당신이 말한 그 박자대로. 을지로 다음 날도, 영등포 다음 날도. 폭주가 나면 창고가 찼어요. 우연이 이 년 동안 이렇게 규칙적일 순 없어요."
나는 그 표를 봤다. 숫자가 정직했다. 물건은 거짓말을 못 하고, 장부도 거짓말을 못 한다. 사람만 한다.
"강세라 씨. 이거 내면, 당신도 저처럼 됩니다. 라이선스, 방송, 다요. 협회가 당신을 무단 침입 공범으로 걸겠다고 벌써 얘기했어요."
"알아요."
"그런데 왜요."
강세라가 창가에 기대섰다. 잠깐 밖을 봤다가, 나를 봤다.
"북한산에서 처음 당신을 봤을 때, 나는 폭주 몬스터를 제일 많이 잡는 헌터였어요. 그게 강한 거라고 믿었고요. 그런데 그 숫자들이— 실은 누가 일부러 문을 열어서 만든 거였다는 걸 알았어요. 나는 강한 헌터가 아니라 남이 벌인 채굴의 인부였던 거예요. 이 년치 표창이 이 년치 채굴 실적이었던 거고요."
방이 조용해졌다.
"내가 잡을 때마다, 저쪽에서 하나씩 죽었겠죠." 그녀가 창밖을 봤다. "나는 그걸 실력이라고 방송에서 웃으면서 말했어요. 그 생각을 하면, 이 년치 인터뷰를 다 게워 내고 싶어요."
"정체가 뭔지는 여전히 몰라요." 그녀가 말했다. "근데 이제 그건 안 중요해요. 이 나라에 지금, 몬스터 편도 카르텔 편도 아닌 사람이 딱 하나 필요해요. 나는 그 사람 편에 서기로 했어요."
"···후회 안 하시겠어요."
"방송 짤리는 건 후회할 수 있죠. 근데 이 년치가 채굴 실적이었다는 걸 알고도 가만있는 건— 그건 후회로도 못 갚아요." 그녀가 서류철을 톡톡 쳤다. "그래서 나는 무대를 만들게요. 나는 방송 나가는 사람이잖아요. 제일 잘하는 거."
"강세라 씨." 나는 물었다. "왜 저를 믿으세요. 협회 말대로면, 저도 나중에 팔 수 있잖아요. 초대 통역자처럼."
강세라가 나를 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경호가 아니라 사람으로 웃었다.
"당신, 오늘 아침에 라이선스 걸린 채로 그 여섯한테 '어른'이라고 비꼬았다면서요. 협회에 소문 다 났던데."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팔 사람은 그렇게 안 해요. 팔 사람은 웃으면서 시간을 벌죠. 당신은 손해 보는 쪽으로만 정직해요. 그게 재능이면, 참 안 팔리는 재능이고요." 그녀가 서류철을 챙겼다. "그래서 믿어요. 안 팔리는 재능은, 팔 수가 없거든요."
문을 나서려던 그녀가 멈췄다.
"아, 하나만요. 협의체 회의록 번역본에서 이상한 걸 봤는데."
"뭘요."
"의제 스물여섯 번. '인간 측 통역자 처우 개선(안)'. 이게 뭐예요?"
나는 잠깐 대답을 골랐다. 고르는 사이에 이미 늦었다.
"···제 일당 얘깁니다."
"일당이요?"
"구만 원인 거요. 소문이 났습니다. 다섯 종족이 다 압니다."
강세라가 나를 빤히 봤다.
"···이십 년을 싸운 종족들이, 당신 월급이 박한 걸 안다고요."
"압니다. 딱해한다고도 하고요. 오우거는 저더러 자기들보다 못 번다고 했습니다."
"협회는요?"
"협회는 아직 수당 규정이 없어서 못 올린다고 합니다."
강세라가 웃음을 참았다. 참다가 실패했다.
"···이 나라 진짜 큰일 났네요. 몬스터 쪽이 결재가 빨라."
"저는 그 얘기를 몇 달째 하고 있습니다."
━ 발췌 끝 ━
이 작품에서 물건은 거짓말을 못 합니다. 사람만 합니다. 강세라가 이 년 동안 자랑스러워하던 전적이 실은 조작된 채굴 실적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녀가 고른 건 침묵이 아니라 무대였습니다.
이런 분께 권합니다.
- 화려한 전적 뒤에 숨은 조작을 알고도 침묵 대신 폭로를 고르는 캐릭터를 좋아하시는 분. 위 발췌에서 강세라는 방송이 끊길 걸 알면서도 유통 기록을 들고 옵니다.
- 경계하던 인물이 서서히 아군으로 넘어오는 흐름을 좋아하시는 분. 강세라는 그전까지 경호 임무로 곁에 있었을 뿐인데, 이 회차에서 처음으로 사람으로서 편을 정합니다.
- 무거운 장면 옆에 생활감 있는 농담이 바로 붙는 톤을 좋아하시는 분. 국가 단위 음모 얘기를 하다가도, 주인공의 일당 구만 원짜리 신세로 다섯 종족이 다 딱해한다는 대목이 이어집니다.
전 40화가 이미 다 올라와 있는 완결작이라, 끊길 걱정 없이 몰아보실 수 있습니다.
『E급 통역사인데 자꾸 최강으로 오해받음』 — 전 40화 완결
처음 읽으실 분은 1화부터, 이 장면이 궁금해서 오신 분은 19화부터 펼쳐 보세요. 완결까지 다 있으니 어느 쪽으로 시작해도 그날 안에 몇 화씩은 넘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