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웹소설처럼 시작부터 사기급 능력을 얻거나,
회·빙·환으로 모든 걸 알고 시작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던 주인공이
냉철한 분석을 바탕으로 도전하고, 실패하고, 배우면서
하나씩 쌓아 올려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적당히 맛있고.
적당히 자극적이고.
적당히 질리지 않으면서.
이상하게 가끔 생각나는.
제 최애 음식인 제육볶음 같은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50만 명이 사라졌다》 입니다.
어느 날, 두 달에 걸쳐 전 세계에서 50만 명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이 사라진 순간.
50만 명 전원이 같은 이세계에 떨어집니다.
주어진 목표는 단 하나.
1년 안에 마왕을 죽일 것.
주인공 김현서는 전직 체스 선수입니다.
검을 잘 쓰는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특별한 마법이나 압도적인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대신 상대를 봅니다.
왜 저렇게 움직였는지.
다음에는 무엇을 할지.
한 번 확인한 행동이 다시 반복되는지.
몬스터를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만난 몬스터에게는 당합니다.
하지만 살아남아 패턴 하나를 확인하면,
다음 전투에서는 그 정보가 무기가 됩니다.
그리고 다시 싸웁니다.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확인하고. 틀리면 수정합니다.
체스판에서 하던 일을 몬스터와 사람이 살아 있는 세계에서 반복하는 셈입니다.
제가 좋아했던 예전 게임판타지에는 특유의 맛이 있었습니다.
레벨이 오르고.
스킬을 하나씩 배우고.
처음 들어간 마을에서 정보를 모으고.
모험가 길드에 등록하고.
조금씩 더 강한 몬스터와 싸우고.
세계가 넓어지는 만큼 주인공도 함께 성장하는 맛이요.
다만 그 감각을 그대로 복원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50만 명의 동시 이세계 전이, 5칸뿐인 스킬 슬롯, 몬스터 패턴의 축적, 클래스와 마나,
그리고 1년이라는 제한시간
같은 요소를 섞었습니다.
옛 게임판타지의 향수는 남기되,
지금 읽어도 지나치게 낡게 느껴지지 않는 작품.
그 균형을 목표로 쓰고 있습니다.
전개 역시 빠른 보상과 자극을 연달아 터뜨리기보다는,
앞에서 던진 설정과 인물, 선택이 뒤에서 다시 의미를 가지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초반에 지나간 한마디가 나중에 돌아오고.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설정이 시간이 지나며 맞물리고.
주인공의 작은 경험들이 결국 큰 싸움의 한 수가 되는 이야기.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읽고 난 뒤 앞부분을 다시 돌아보고 싶어지는 작품.
그런 소설을 쓰는 게 목표입니다.
현재 꾸준히 연재 중입니다.
예전 게임판타지의 향수가 그리우셨던 분.
하지만 너무 오래된 문법은 조금 부담스러웠던 분.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부터 강한 주인공보다
강해지는 과정이 납득되는 주인공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 읽어봐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50만 명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