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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魔)의 탄생
비멍·2026.10.09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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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적을 미워하지 않았다.

아군을 사랑하지도 않았다.

사람을 죽이면서 분노하지 않았고, 사람을 먹으면서 기뻐하지도 않았다.

그저 살아 있는 살덩이와 죽어 있는 살덩이가 있었을 뿐이었다.

사내는 어느 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검붉은 피가 손등을 덮고 있었다. 그 피가 자신의 것인지 타인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문득 기이한 물음이 떠올랐다.

내 피와 저자의 피가 다르지 않다면.

내 살과 저자의 살이 다르지 않다면.

나와 저자는 무엇이 다른가.


사내는 다시 걸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사내가 쓰러진 자의 곁에 앉아 그 살을 취했을 때, 무언가가 흘러들었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기운이었다.

사내는 고개를 들었다.

사방에 수없이 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 시체들에서도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삶의 흔적이었다.

사내는 그것을 업이라 부르지 않았다.

내공이라 부르지도 않았다.

그런 말을 배운 적이 없었으므로.

다만 알았다.


그 모든 것이 자신에게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어차피 모두 같은 것이었다.

내 것과 남의 것이 무엇이 다른가.

먹는 자와 먹히는 자가 무엇이 다른가.

이제 그에게는 구분이 없었다.

죽은 자의 기운이 사내의 몸으로 흘러들었다. 한 사람의 것이 다른 한 사람의 것과 뒤섞였다. 열이 백이 되고 백이 천이 되었다.

그가 죽인 자들의 업이 모였다.

그가 먹은 자들의 업이 모였다.

사내는 받아들였다.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천하를 구하겠다는 뜻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복수하려는 마음도 없었다.

그저 받아들였다.

자신과 타인의 구분이 없었으므로.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 모여서는 안 될 것들이 한 사람에게 모였다.

처음에는 바람이 불었다.

동쪽에서 불던 바람도, 서쪽에서 불던 바람도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사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서 있었다.

바람이 거세졌다.

핏물이 땅을 거슬러 흘렀다. 진흙 속에 스며들었던 피가 다시 배어 나왔고, 오래전에 말라붙은 검붉은 얼룩마저 액체가 되어 꿈틀거렸다.

죽은 자가 살아난 것은 아니었다.

그들 안에 남아 있던 마지막 기운이 한곳을 향해 끌려가고 있었다.

사내를 향해서였다.

곧 바람이 울부짖었다.

핏물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찢긴 살덩이가 떠올랐고, 부러진 뼈가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수천의 시체가 남긴 기운이 뒤섞였다.


누군가의 원망이 있었다.

누군가의 공포가 있었다.

서로 다른 삶이었다.

서로 다른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모여들었다.

사내는 그것들을 구분하지 않았다.

아니, 구분할 수 없었다.

이미 자신조차 잊었으므로.

피바람이 일었다.

처음에는 붉었다.

붉다 못해 검붉어졌다.

검붉다 못해 마침내 어둠에 가까워졌다.

그것은 밤의 어둠과 달랐다. 빛이 사라져 생겨난 어둠이 아니었다. 너무도 많은 피가 모이고, 너무도 많은 죽음이 응축되어, 더는 붉다고 부를 수 없게 된 어둠이었다.

전쟁터 전체가 검붉은 회오리에 휩싸였다.

그 중심에 사내가 있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지도 않았다. 그저 고요히 서서 끝없이 받아들였다.


그때.

하늘이 울었다.

콰르르르릉!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쳤다.

푸른 섬광이 전쟁터를 가르고 검붉은 회오리의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핏물은 잠시 빛났으나 흩어지지 않았다. 벼락이 남긴 기운마저 피바람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콰과과광!

다시 벼락이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불경하다.


누가 외친 것은 아니었다.


불경하다. 불경하다!


하늘이 대경하여 노호하는 듯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천지는 다시 벼락을 내렸다.

그러나 사내는 벼락과 싸우지 않았다. 하늘을 거스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내리친 벼락마저 그에게는 흘러드는 수많은 기운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었다.

마침내 산들바람이 숨을 죽였다.

천지가 고요해졌다.

오직 검붉은 피바람만이 움직였다.

만일 누군가 그 광경을 보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것은 사람이 보아서는 안 될 광경이었다.


사람이 만들어놓고도, 정작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런데도 중심에 선 사내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두려움도 없었다.


환희도 없었다.


타인의 피를, 살을, 기운을, 삶과 죽음을 그저 받아들일 뿐이었다.


마침내 그 모든 것을 자신이라 부를 수조차 없게 되었을 때.


바람이 멎었다.


핏물이 땅으로 떨어졌다. 허공에 떠 있던 뼈와 살이 쏟아졌다. 벼락도 그쳤다.


전쟁터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 한가운데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글을 모르던 농부.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조차 모르던 사내.

그저 밭을 갈며 살았을 인간.

그에게는 여전히 두 팔과 두 다리가 있었다. 눈도, 입도, 사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목구멍도 있었다.

그러나 그 입으로 말할 이름이 없었다.

스스로를 가리킬 '나'가 없었으므로.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하늘을 거스르려는 뜻이 없었으므로.

그는 땅을 내려다보지도 않았다.

천하를 지배하려는 뜻도 없었으므로.


그날, 최초의 마(魔)가 탄생했다.


마는 하늘이 내려준 것이 아니었다.

땅이 품어 기른 것도 아니었다.

자신을 잊었기에 타인도 잊었다.

타인을 잊었기에 타인의 업을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수많은 희생 위에 하나의 존재가 쌓여 올랐다.

그것이 마의 시작이었다.

훗날 사람들은 그 존재를 두려워했다.

그는 두려워하는 자를 비웃지 않았다.

무릎 꿇은 자에게 은총을 내리지도 않았다.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으나, 처음 그를 섬기기 시작한 이들의 기도에는 오래도록 침묵했다. 그에게는 그들을 미워할 까닭도, 사랑할 까닭도 없었다.

인간은 그 침묵마저 제멋대로 해석했다.

한 사람이 엎드렸고, 열 사람이 뒤따랐다.

그들은 그를 신이라 불렀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무리는 일월신교(日月神敎)라 불리게 되었고, 그들이 섬기는 존재에게 하나의 이름을 바쳤다.


천마(天魔).


하늘마저 두려워한 마.

하늘이 허락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증오가 길러낸 마.

그러나 정작 그 이름을 얻은 자는 자신이 농부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무엇을 원하며 살았는지, 어떤 이름으로 불렸는지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 빈자리에 각자가 바라는 역사를 채워 넣었다.

그렇게 진실은 잊혔다.

그러나 마는 잊히지 않았다.

한 육신이 스러져도 모여든 업은 완전히 흩어지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 그 흐름은 다시 육신을 얻어 세상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이를 천마의 재림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때마다 서로에게 검을 겨누었다.


천마를 두려워하여.

천마를 섬기기 위하여.

천마를 없애기 위하여.

그렇게 또다시 피가 흘렀다.

마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았다.

마는 그저 존재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인간은 마의 이름으로 서로를 미워했다.

처음의 전쟁터에서 그러했듯이.


하늘은 마를 낳지 않았다.

땅도 마를 기르지 않았다.

인간이 낳았고, 증오가 길렀다.

그리하여 하늘마저 두려워하는 천마가 탄생하였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것을 두려워하며, 다시 서로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무협
마를 품은 검
비멍
총 16화 조회 69 2026.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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