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드라마의 제왕.
죽는 연기의 제왕.
K-문화의 제왕.
이 문피아에서 배우/감독물, 혹은 문화를 다루는 현대판타지를 오랫동안 눈여겨보셨던 독자님들이라면 익숙한 이름일 겁니다. 모두 좋은 평가를 받으며 유료화를 진행했던 작품이니까요.
저 역시 그 세 작품을 모두 봐온 입장으로서 이런 믿음이 있습니다. 고별이라는 작가는 정말 믿고 볼만한 작가다라는 믿음이요.
새로 올라온 소설을 물색하다가 고별이라는 필명을 보고 들어간 건 그런 이유입니다. 그리고 9화라는 짧은 화수에도 추천글을 작성하는 이유 역시 이런 이유입니다. 왜냐고요?
곧 있으면 다른 누가 추천글 먼저 써서 첫번째 추천글 자리 뺏길 것 같으니까
흠흠.
리뷰 시작합니다.
---줄거리---
영화가 좋았다.
그리고 보는 것보단 찍는 게 더 좋았다.
아마 그래서 내가 죽은 것 같다.
보육원에서 생활하던 주인공은 한 비디오가게의 포스터에 눈을 빼앗깁니다.
하루에 5분이든, 10분이든, 30분이든.
늘 와서 포스터를 바라보고 있는 주인공을 신경쓰던 비디오가게 사장님은 어느날 주인공을 안으로 들여서 영화를 보여줍니다.
그건, 분명 별 이유는 없었을 겁니다.
보육원 출신인 주인공이 안타까워서. 혹은 자꾸 가게 앞에서 서성거리는 것이 신경 쓰여서. 어쩌면 영화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기특해서.
주인공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초대에 망설이지 않고 비디오가게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거기서 영화 하나를 봅니다.
1988년작. 주세페 토르나토레가 연출한 흑백영화. '시네마 천국'.
주인공은, 거기서 세상을 봅니다.
정저지와井底之蛙.
우물안 개구리는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세계가 개구리의 전부니까요.
그러나 우물에서 나와 바깥을 바라본 개구리는 어떻습니까? 자신이 본 것을 망각하고 우물 안으로 돌아가서, 그 좁은 세계가 전부라고 스스로를 속일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소년은 아니었습니다.
1년, 2년, 3년.
소년은 비디오가게에 들러 영화를 봅니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사장님과 나눕니다.
소년의 식견에 감탄한 사장님은 소년에게 영화 평론가가 되길 권합니다. 그 식견이면 잘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소년의 목표는 평론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불현듯 소년은 내뱉습니다. 보는 쪽보다 찍는 쪽이 되고 싶다고.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장님은 조용히 한 마디를 내뱉습니다. 하지 말라고.
이유야 논할 것도 없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영화배우는 고달픈 직업입니다. 돈이 많이 드는 직업이고, 성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직업입니다.
한때 영화감독을 지망했던 비디오가게 사장님은 그 현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습니다. 영화를 찍을 때 졌던 빚을 아직도 갚고 있으니까요.
말을 듣지 않는 소년을 설득하기 위해 사장님은 자신이 썼던 콘티를 가져와 주인공에게 보여줍니다. 네가 호평한 이 콘티는 쫄딱 망했다. 영화란 한 사람이 좋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돈, 사람, 시간, 운, 실력, 모든 것이 맞아떨어져야 만들어지는 것이 영화라고.
이건 쓰레기다. 쓰레기가 되었다. 그러니 너는 그렇게 살지 말아라. 후회만 한다.
사장님은 말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주인공은 2주동안 고민하고 결정합니다.
영화 찍겠다고.
열아홉살에 단편 하나. 관객 80명. 부산국제 영화제 출품. 수상 없음.
스무살에 단편 하나. 어느 작은 영화제의 본선 진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상금과 트로피 없음.
스물하나에 단편하나. 영화제 예선 통과. 몇몇 평론가가 호평했으나 대중의 반응은 미미.
사장님이 장담한대로 찍을 때마다 빚은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이제 청년이 된 소년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찍고 싶은 것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스물셋.
청년은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장편을 찍기 위해.
이제 영화를 어떻게 찍는지 알 것 같았으니까.
시간은 흐릅니다.
청년은 영화를 완성했고, 간암 4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사장님에게, 자신의 은사에게 청년은 영화의 테이프 하나를 내밉니다. 이걸 대신 배급사에 돌려달라고.
그건 청년이 아직 소년이었던 그 어느 날 사장님이 보여주었던 한 편의 콘티.
그 날, 그 콘티 속에서 소년은 명작들과 같은 반짝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청년이 될 때까지도.
영화는 배급사를 돌고, 어마어마한 대박을 칩니다. 그리고 청년은 숨을 거두었고.
1980년대의 미국에 환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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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이라는 작가의 장점은 뭘까요?
섬세하고 특징적인 캐릭터성? 아니면 치열하고 몰입감 있는 사건 전개? 연출에 대한 전문성이 돋보이는 글?
다 좋은 장점이지만, 개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점은 역시 주인공이 확고한 인물이라는 겁니다.
K문화의 제왕에서 특히 느꼈던 점이지만, 고별 작가님이 쓰시는 글의 주인공은 항상 어떤 목표나 신념이 있습니다. 작품은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여정이고요.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글.
보면서 '내가 이걸 왜 보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글입니다. 항상 다음편이 궁금하고, 주인공에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글.
요즘은 하루하루 부담없이 읽기 좋은 글이 인기가 참 많습니다. 긴박하고 몰아치는 느낌 없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이요. 저도 그런 작품들을 재밌게 읽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가 좋아하는 글은 이런 글입니다. 작품 내에서 서사의 굴곡이 확실하고, 장면이 머릿속에 각인되는 글. 다 읽었을 때 '아, 그 장면 정말 좋았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글.
9화밖에 안 됐지만, 지금이 저점매수 타이밍입니다.
제가 정말 재밌게 본 고별 작가님의 신작. 독자님들도 한 번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