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죽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메흐메트 6세와 동시대를 살아간 니체의 말입니다. 단순히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선언을 넘어, 신과 기독교적 세계관이 삶의 의미와 도덕의 최종 근거가 되어주던 유럽에서 그 권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진단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왜 복종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 시대였던 것이지요.
그렇다고 신앙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은 신의 신자와 군주의 신민이라는 정체성에 더해, 민족의 일원, 국가의 시민,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자신과 공동체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족주의는 공동의 역사와 운명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계급의 처지와 해방을 이야기했습니다. 서로 다른 사상들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속과 삶의 방향을 제시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오스만은 로마다》의 무대에서는 신앙이 여전히 일상과 정치의 강력한 근거로 작동합니다. 군주는 술탄이면서 이슬람의 칼리프이고, 그 아래에는 여러 민족과 언어, 무슬림과 기독교인, 유대인이 함께 살아갑니다. 바깥에서는 민족국가들이 동포의 이름으로 제국을 흔들고 열강이 개입하며, 안에서는 전통적인 통치와 헌정의 요구가 맞부딪칩니다. 무엇으로 이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에 묶을 것인지가 곧 제국의 생존 문제입니다.
제가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은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낡은 권위와 새로운 정체성이 부딪히는 시대에, 미래인의 감각을 가진 주인공이 사람들에게 제국 안에 남아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요.
이렇게 적으면 무거운 사상소설처럼 보일 텐데, 실제로 읽을 때는 상당히 유쾌합니다. 주인공은 로마를 정말 좋아합니다. 너무 좋아합니다. 주변의 정치가와 외교관들은 그 취향이 섞인 말에서 심오한 통치술과 거대한 의도를 찾아내는데, 정작 주인공의 속마음은 그 해석과 미묘하게 어긋납니다. 그 엇갈림이 웃기고, 당대 사람들의 상식과 현대인의 상식이 충돌하는 대화도 재미있습니다.
그 로마 사랑과 함께 주인공이 펼쳐가는 개혁은, 당시에도 존재했던 가능성 위에서 출발합니다. 실제 오스만의 1876년 헌법은 종교와 관계없이 제국의 신민을 오스만인이라 부른다고 규정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통된 정치 공동체에 속할 수 있다는 발상이 아예 없었던 시대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작품은 여기에 두 차례 세계대전과 냉전 이후의 세계를 아는 주인공의 감각을 더합니다. 개인의 권리와 민주주의, 자신이 믿는 바를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이 시대의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지요.
특히 흥미로운 것은 ‘민족의 뜻’이라는 하나의 목소리에 가려진 개인들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흔히 한 사람의 생각을 묻기 전에 그가 속한 민족이나 종교부터 봅니다. 그러나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신을 믿어도, 독립을 원하는 사람과 자치를 원하는 사람, 가족의 생계와 세금이 더 절실한 사람의 선택은 다릅니다. 집단의 이름으로 표현된 요구가 그 안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절실한 것은 아닙니다.
주인공이 하려는 일은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자리를 만드는 일입니다. 자기 언어와 신앙을 지키면서도 제국의 정치에 참여할 수 있고, 정부에 반대하면서도 시민으로 남을 수 있게 하는 것. 저는 여기서 ‘어디에 태어났는가’와 함께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아가려 하는가’가 사람을 정의하는 기준이 되는 과정을 읽었습니다.
물론 그 선택을 존중하려면 통치자 자신의 선택도 제한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유능하고 선한 군주라도 모든 사람의 사정을 알 수는 없고, 자기 생각이 언제나 옳을 수도 없습니다. 다른 의견을 제도 안으로 들여오고, 그 의견에 자기 뜻이 거부될 가능성까지 받아들이는 일이 중요해집니다. 미래를 안다는 주인공의 이점이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를 없애주지는 않는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오래된 신앙과 관습이 개혁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현대인의 눈에는 낡아 보이는 논리가,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서로의 권리를 인정하고 생활을 개선해야 할 강력한 이유가 됩니다. 개인의 자비와 통치자의 호의로 베풀던 것을 누구나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과거의 가치와 미래인의 감각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니 서유럽의 제도를 따라가는 것이 곧 진보라는 익숙한 구도도 조금씩 흔들립니다. 당시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과 오늘의 독자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다르고, 지역마다 권리와 관습이 발전해온 길도 다르니까요. 작중 인물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당황하는 모습을 읽다 보면, 저 역시 ‘진보적’과 ‘후진적’이라는 분류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이 결합이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같은 법을 지지하면서도 그 이유는 제각각이고, 생활이 나아지는 것을 반기면서도 국가가 자신의 신념을 설명하는 방식에는 반발할 수 있습니다.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논쟁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재미있게 읽히는 데에는 다른 인물들의 몫도 큽니다. 주인공의 말을 이해하고 반박하는 유능한 관료가 있고, 자기 신념을 지키려는 정치가가 있으며, 예상 밖의 이유로 손을 잡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각자가 자기 지식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에 개혁은 주인공의 머릿속 설계대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 이유로 내린 선택이 모여, 계획보다 더 흥미로운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그렇게 읽고 나면 제목의 “오스만은 로마다”도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주인공의 로마 사랑을 보여주는 말이면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모습으로 속할 수 있는 제국을 상상하는 말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사상과 제도가 바뀌는 대체역사를 좋아하는 분, 서로 다른 시대의 가치관이 부딪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께 특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거기에 로마를 좋아하는 주인공의 기행과 그것을 지켜보는 당대 인물들의 반응까지 즐기실 수 있다면 더더욱요.
웃으며 읽다가 어느 순간, 사람들이 왜 한 나라에 속하고 무엇을 위해 그 안에서 살아가는지 생각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앞으로 이 오스만이 어떤 로마가 될지도 계속 지켜보고 싶습니다.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