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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무협 작품 설정 괜찮을까요?
단군하부지·2026.09.06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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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질문이 있어서 이렇게 무협백과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협을 즐겨보던 독자였습니다.


그런데 항상 무협을 볼 때마다 중원의 가상의 강호가 배경인데,

그 밑에 있는 한반도로 무공이 전해지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항상 했었어요.


종교가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건너듯이, 무공도 그렇게 전수되면 재밌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중월야 작가님 작품에서 한 번 백두산이 언급되면서 반가웠던 기억도 있습니다.


(제가 문피아나 타플에서는 아직 한반도 무협 작품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여튼 그래서 제가 직접 중원의 무공이 한반도로 넘어온 세계관을 만들면 재밌겠다 싶어서 만들어봤습니다.



설정을 한 번 짜보고 현재 직접 연재중인데,

이 세계관 자체가 별로여서 유입이 안되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용 ㅠ


혹시 제가 직접 설정 짠 한반도 무림 세계관,

이게 괜찮은 편인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벌써부터 똥냄새가 난다 싶으신 선배님께서는 "얘 뭐라냐?" 하고 나가셔서

아까운 시간 낭비 하지 않길 바라겠습니다 ㅠ


+



[한반도 무협 배경 설정 (2/2)]


[ver. 원나라부터, 조선 세종까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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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절정의 경지를 넘은 몽골의 칭기즈 칸이, 중원에 들이닥쳤다.


금나라가 무너지고, 남송마저 거세게 밀렸다.

중원 전체에 난세가 찾아왔다.


조정으로 나아갈 길이 막히고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공자와 맹자를 따르던 사대부와 학자들은 절감했다.


"가문과 민초를 지키려면, 무력이 필요하다."


이들이 택한 건, 소림의 외가(外家)도 도교의 도가(道家)도 아닌 제3의 길이었다.

몸을 극단으로 단련하지도, 자연의 음양을 따르지도 않는 것.


대신 성리학의 바른 마음(正氣)과 천지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무공의 근간으로 삼았다.

그렇게, 유가(儒家) 무학이 태어났다.


거대 서원들. 그리고 사대부 혈통과 결합한 남궁세가, 제갈세가 같은 명문 유가 세가들.

그들은 조정이 아닌, 중원 무림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로써 정파(正派) 3대 사상 체계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 유가 무학의 흐름은, 한반도로도 이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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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까지 삼켜 대륙을 통합한 칭기즈 칸의 후예들.


그 시선이, 이번엔 한반도로 향했다.


절정의 벽을 넘은 셋째 아들 오고타이 칸이, 30년에 걸쳐 고려를 쑥대밭으로 만든 것이다.

그렇게 80년의 원 간섭기가 시작됐다.


역설적이게도, 그 덕분에 고려 학자들은 원나라 수도를 제집처럼 드나들 수 있었다.


당시 원나라는 성리학과 유가 무학을 국가 공인 학문으로 지정한 상태.

그것이 고스란히, 고려로 흘러들었다.


1367년(공민왕 16년),

공민왕이 성균관을 개편하고 당대 최고 학자 이색을 수장에 앉히자,


그 밑으로 정몽주, 정도전, 권근, 길재.

내로라하는 신진사대부들이 모여들게 된다.


밤낮으로 성리학 경전을 파고들며,

이(理)와 기(氣)의 흐름을 깨우친 자들.


이들은 더 이상 한낱 학자가 아니었다.

성리학적 심법과 유가 무학을 겸비한, 선비 고수가 되었다.


.

.


그사이 대륙에선, 주원장이 정파와 손잡고 원나라를 초원으로 몰아냈다.


명나라의 건국이었다.


명 황제는 무공을 몰랐고, 정파는 나라를 세운 무력이었다.

그렇게 맺어진 것이 관정불가침(官正不可侵).


명분은 상호 불가침이었으나,

누가 누구를 못 건드리는지는 명확했다.


그리고 1388년(우왕 14년),

신생 명나라가 옛 원나라 땅인 철령위를 내놓으라 요구해왔다.


이에 분노한 고려의 집권자.

절정의 고수, 최영 장군이 칼을 뽑았다.


"요동을 친다. 명의 콧대를 꺾어라!"


명을 향한 선전포고이자, 옛 고구려 땅을 되찾겠다는 선언.


요동정벌(遼東征伐)이 선포됐다.


허나 5만 대군을 받아 든 이성계의 생각은 달랐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순 없다며 사불가론(四不可論)으로 맞섰으나, 정벌은 강행됐다.


1388년 5월. 위화도에 다다른 5만 정예는, 폭우로 불어난 강물에 발이 묶였다.

결국 이성계는 정도전 등 신진사대부와 뜻을 모아, 군대를 개경으로 돌렸다.


역사를 뒤바꾼, 위화도 회군(威化島 回軍)이었다.


파죽지세로 개경에 들이닥친 이성계는.

최영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초절정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우왕을 폐위시켰다.


4년 뒤인 1392년.

고려가 무너지고,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은 새 왕조 조선(朝鮮)이 열렸다.


건국 후, 이성계는 압도적이던 몽골군과 중원 무림맹을 떠올렸다.


'조선에도, 무림인이 필요하다.'


이성계는 과전법으로 권문세족의 재산을 몰수하고,

숭유억불(崇儒抑佛)을 내걸어 사찰의 토지와 노비마저 국고로 거둬들였다.


그 재원으로, 중원 정파를 본떴다.


성균관 출신 무인들에게 지방마다 문파를 세우게 하고,

전국의 실력자를 한양으로 불러 모았다.


그렇게 조선무림맹(朝鮮武林盟)을 창설한 이성계는,

스스로 초대 무림맹주(武林盟主)에 올랐다.


명 황제가 정파의 눈치를 봐야 했던 것과 달리.

조선의 왕은, 그 자체로 정파였다.


그러나 살아남은 고려 왕조와 권문세족은, 비밀리에 무공을 익혔다.


사파(邪派)의 탄생이었다.


결국 이성계는, 성리학과 유교를 따르지 않는 모든 세력을 토벌하라 명한다.


최영의 아들 최담과 정도전 세력들은.

고려 왕조를 몰살하는 무림맹의 눈을 피해, 고려 왕씨 방계 왕운과 함께 개성 영통사로 숨어들었다.


이윽고 조선이 안정되자,

이성계는 아들 정종에게 왕위를 넘기고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조선 4대 왕 세종은,

사대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훈민정음(訓民正音)과 훈민정무(訓民正武)를 반포했다.


미천한 백성도, 한글로 무공을 익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어 삼정승을 절정의 고수로 앉혀, 왕실과 무림의 벽을 허물었다.


조선무림맹은 4파 5가 체제로 정립됐고,

4대 맹주 자리엔 경김세가(慶金世家) 가주 김무진이 올랐다.


+



지금 현재 연재중인 제 소설 속 설정인데,

선배님들이 보시기에도 설정이 괜찮은지 궁금합니다!


[역사 고증]

실제 역사는 한반도 먼저 침공 후 남송 멸망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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