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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소설을 쓰는 소설 - 메카니컬 뮤즈(Mechanical Muse)가 말해주는 피할 수 없는 미래
시우(時雨)·2026.06.07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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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게시판에서 핫한 주제에 대해 약간의 사족을 달고자 합니다.


그냥 저 소설에 대해서만 궁금하신 분들은 중간쯤으로 스크롤을 쭉 내리시면 되겠습니다.






AI의 시작은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Imitation Game)'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흉내내기 게임 정도 되겠는데요,


한 마디로, 인간이 컴퓨터 프로그램과 채팅한 후 상대가 인간이었는지 컴퓨터였는지 맞추는 게임입니다.


물론 인간은 상대가 인간일 때도 컴퓨터라고 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과 채팅하고 상대가 인간이었다고 답하는 비율과,


인간이 프로그램과 채팅하고 상대가 인간이었다고 답하는 비율이 비슷하면 그게 곧 인공지능이다, 라는 주장이었습니다.




튜링의 주장은 수십 년에 걸쳐 정제되고 수정되었지만 그 정신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AI의 핵심은, AI가 실제로 무언가를 이해하고 감정을 느끼고 어쩌고 하느냐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과 AI를 구분할 수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그리고 그건 소설과 같은 창의적 활동에서도 다를 게 없습니다.


제 전공은 수학의 정리들을 증명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계산은 컴퓨터의 영역이고, 증명은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영역이라는 상식을 뒤엎는 것이었죠.


그게 지금은 상식이 되었습니다.


약 25년 전, 제가 바둑이 가장 먼저 정복될 거라고 말했을 때 제 주변의 바둑팬들은 저를 아주 심하게 비난하고 무시했습니다.


바둑은 예술의 영역이므로 컴퓨터가 절대로 인간을 이길 수 없다고요.


뭐, 결과는 다들 아시죠.




AI는 자기가 내놓는 답이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그냥 확률적으로 가장 나은 대답, 즉 사용자로부터 승인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언어의 조합을 지난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해서 내놓을 뿐입니다.


소설도 그렇게 쓸 수 있습니다.


이게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만일 바둑에 그랬던 것처럼, 모든 자원을 소설 쓰는 프로그램에 투자한다면 날씨나 주식 시장 예측 같은 분야보다 훨씬 더 빨리 완성형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죠.


바둑에 투자했던 건 그게 제일 쉬웠기 때문이고요.





자,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가서 소설 '메카니컬 뮤즈'를 소개하겠습니다.


이건 그냥 대놓고 어느 유명한 작가가 글쓰기 프로그램을 시험하면서 시작됩니다.


자기 대신 글을 쓰게 하는데, 이게 영 신통치 않습니다.


그래도 흉내는 제법 내는 것 같아 자기가 소설 쓰면서 조금씩 참조하다가 보니,


어느 순간 진짜 그럴 듯하게 쓰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는 초고를 맡깁니다.


자기는 다듬기만 하고요.


그러다가 종국에는 자신을 뛰어넘는, 자기보다 더 나은 글쓰기 프로그램이 자기 이름으로 소설을 써서 출판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거죠.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디테일은 조금 틀릴 수는 있지만 대충 이러합니다.


이 소설의 작가가 누구일까요?



무려.








아이작 아시모프입니다.



1941년 작이죠.



짧은 단편이니,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앨런 튜링이 이미테이션 게임을 제안한 논문은 1950년에 발표되었지만,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은 더 오래 전부터 이와 같이 논의되고 있었습니다.


그때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거죠.


이론적으로는 언젠가 이렇게 된다는 걸요.


단지 기술적인 문제일 뿐이었습니다.


컴퓨팅 문제 뿐만 아니라 전력 공급과 같은 엄청난 인프라가 동반되어야 하기에 머나먼 미래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겁니다.





AI가 인간보다 더 나은 소설을 쓰는 건 이제 피할 수 없는 미래입니다.


이미 특이점을 넘었으므로 그 시기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올 겁니다.



하지만 AI는 자기가 뭘 썼는지 이해하지 못하죠.


그저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승인받는 언어의 조합을 내놓는 능력이 생기는 것뿐이니까요.


데이터가 쌓일수록 점점 더 나아질 겁니다.


그리고 독자들은, 자기가 읽은 게 인간의 작품인지 컴퓨터의 작품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됩니다.


아니, 어쩌면 너무 뛰어나면 AI라고 답할지도 모르겠네요.



철학도 사상도 없이 그저 재미만을 추구하는 소설 장르가 아마 가장 먼저 AI에게 자리를 빼앗기겠죠.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진정 마음이 담긴 소설들 뿐일 겁니다.


마음이 담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은 작가가 누군지 궁금해지겠죠.


기계가 아닌 영혼과 교감하고 싶을 테니까요.


오직 작가의 영혼이 담긴 소설만이 살아남게 될 겁니다.




그래서 이제는 소설에서 작가의 인품과 삶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세상이 올 거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장르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 자신만의 철학을 갈고 닦아 작품에 녹이고,


그것을 또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 가는 삶이 요구되어 간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오직 작가의 삶만이, 자신의 작품이 AI가 아닌 스스로의 작품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될 테니까요.



작가들이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표면적으로는 가장 쉽게 AI에게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는 소설이라는 장르야말로,


가장 오랫동안, 어쩌면 영원히 인간의 영역으로 남는 세계가 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무려 8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가치를 잃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저 아시모프의 소설처럼 말입니다.


저 또한 당장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제가 쓰는 글에 영혼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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