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김용 소설 감상'이라는 책의 서문 입니다. 김학에 대해 알아볼 요량으로 통신상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저자는 남창항공대학 문학박사 교수 진묵 이라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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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論
-중국인이 있는 곳에는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여기서 ‘그’란 무협소설의 대종사(大宗師) 김용(金庸)을 가리키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어느 정도 과장된 말 같지만, 사실은 그 말로도 모자란 감이 있다. 중국인이 있는 곳에는 당연히 김용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아시아, 서구, 남지나해, 북미에 이르기까지 전부 그러하다. 마치 송대(宋代)에, 우물이 있는 곳이면(사람이 있는 곳이면) 유영(柳永:宋代의 시인)의 사(詞)를 읊는 사람이 있었다던 것처럼 말이다.
중국인이 있는 곳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중국인이 없는 곳에서도 적지 않은 외국인들이 김용을 알고 있고, 게다가 김용에 대해 즐겨 이야기한다. 20년 전의 남월(南越) 국회에서는 뜻밖에도 김용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을 거론한 적이 있었다.
김용이 창조한 인물들의 전형(典型)이 워낙 독특하기에, 누구는 악불군(岳不群:위선자)라느니, 누구는 좌랭선(左冷禪:패권주의자)이라느니 하면서 서로 질책을 가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것은 일례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 대륙은 원래 중국인들의 근원지이므로 김용의 이름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김용의 작품은 대륙의 동서남북을 온통 휩쓸고 있으며, 남녀노소, 고아통속(高雅通俗)을 불문하고 ‘김용 애호가’들이 많은데 이 모든 현상은 전혀 이상할 바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상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김용의 작품을 한번 읽어 보지도 않고 김용의 책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적지 않게 있다는 사실이며, 어떤 사람들은 김용의 작품을 보기는 보면서도, 심지어 세번, 네번, 다섯번, 여섯번까지 보고서도, 여전히 가타부타 말이 없어 답답하다는 점이다.
대륙의 문학 평론계와 문화 연구계가 김용의 작품이 대륙을 휩쓸고 있는, 이 분명하면서도 연구 가치가 있는 문학 현상과 문화 현상에 대해서 여전히 불분명한 태도를 취하며 신중히 침묵을 지키고 있어 답답하기만 하다. 하지만 마침내 많은 ‘김용 애호가’들이 이 기괴한 침묵을 깨뜨리기 시작했고, 일고의 가치도 없다느니 하는 평가의 한 곁에서 김용에 대해 논평하고 김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간행물에 어쩌다가 발표되는 김용에 관한 글이 예전과 마찬가지로 양도 적을 뿐 아니라 ‘김용의 작품을 즐겨 읽는 사람들’과 ‘김용열(金庸熱)’에 부응하기에는 터무니 없이 부족했지만, 그것들이 점차 불어나 이제는 집에서나 공공장소에서, 차를 마시거나 식사 후의 휴식 시간에, 일을 시작하기 전의 아침 시간에, 심지어는 한 밤중에 잠을 자지 않으면서까지 김용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일일이 다 셀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당연한 현상이 되었다.
필자 자신으로 말하자면, 우선은 ‘김용 애호가’요, 둘째로는 김용 소설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고, 논할 만한 가치가 있고, 전문적으로 연구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다.
김용의 작품을 연구하는 ‘김학(金學)’이 현시대의 ‘홍학(紅學:紅樓夢을 연구하는 학문)’과 마찬가지로 통속적인 것에서 고급화되고, 개인적인 일에서 공적인 일이 되고, 적은 양에서 많은 양이 되고, 얕은 연구에서 깊이 있는 연구가 되어, 일반적인 문학 연구나 문화 연구에서 연구하게 될 과제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필자는 ‘김용 애호가'요, ’김학(金學)'을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륙에 ‘김학(金學)’의 길이 열리기를 원하며, 글을 쓰고 책을 펴내어 김용의 소설과 ‘김학(金學)’의 명분이 제자리를 분명히 잡기를 바라며, 아울러 이로써 수많은 김용 애호가들과 함께 서로 절차탁마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一
필자는 일찍이 <<문예보(文藝報)>>에 <俗極而雅,奇而致眞-金梁古武俠小說漫評(아주 통속적이면서도 고아하고, 기이하면서도 진실하다-김용(金庸)과 양우생(梁羽生)과 고룡(古龍)의 무협 소설 만평)>이라는 글을 발표한 적이 있었고, 그 후에도 1989년 제6집으로 발간된 <<백화주(百花洲)>> 잡지에 4만여 자의 장편 논문을 발표한 바가 있다.
이 몇 편의 글을 쓰는 동안에 나는 ‘고아함과 속됨(雅俗)’은 한낱 명사에 지나지 않으며, ‘명가명, 비상명(名可名,非常名:이름을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영원한 진리로써의 이름이 아님)'이 옳다는 신념을 굳게 견지하고 있었다. 한편 문학에도 ‘도(道)’가 있기 마련인데 이 또한 ‘도가도, 비상도(道可道,非常道:도를 도라 할 수 있는 것은 영원한 진리로써의 도가 아님)’라는 믿음을 견지했다.
‘아주 통속적이면서도 고아하다(俗極而雅)’라는 말은 내가 김용 등의 무협 소설을 보는 하나의 관점인 동시에 중국 고대 문학의 발전과 역사 및 그 규율을 보는 하나의 관점이기도 하다.
나는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중국 문학이 수천 년이라는 기니긴 세월을 거치면서 그 어느 하나도 ‘속됨(俗)‘에서 ‘고아함(雅)’으로, 민간에서 조정(朝廷)으로, ‘길거리의 떠도는 이야기’ 내지 ‘심심풀이로 읽는 책’에서 ‘대아지당(大雅之堂:고상한 자리)’으로의 형식적 변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시경(詩經)>>의 <채풍(采風)>은 본래 ‘민간’에서 수집해낸 ‘예술’이었다가 마침내 ‘경전’이 된 책이다.
그 후에 사(詞), 곡(曲), 화본(話本), 전기(傳奇) 등등의 문학 예술 형식은 전부 ‘미천한 출신’인 민간에서 비롯되었으니, 저 ‘서로 화합하여 지저귀는 물새가 섬에서 노네. 아리따운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배필이로세(關關雎鳩,在河之洲.窈窕淑女,君子好逑)’라는 노래에서부터 ‘중국 고전 소설의 최고작’이라는 <<홍루몽(紅樓夢)>>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은 모두 다 현재에는 당연히 으리으리한 대아당(大雅堂)에 모셔져 있지만, 그 당시에는 마을의 이장 노릇을 하던 보잘것 없던 시절의 유방(劉邦)의 신세와 비슷했을 따름이었다.
소설과 유사한 이러한 형식은 원래 ‘길거리의 떠도는 이야기’요, ‘군자는 하지 않는 것’이요, ‘마차나 끌고 죽이나 파는 자들’의 속문학(俗文學)이었다가, 근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이르면서 양계초(梁啓初)가 ‘새로운 나라의 국민이 되고자 하면 반드시 새로운 나라의 소설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부터 일약 유명해지게 되었다.
이런 원인으로 인해 중국의 근대 소설, 특히 신민패(新民牌) 소설이 유행하게 되었다. 지금은 대단히 숭상하고 있는 <<서유기(西遊記)>>, <<홍루몽(紅樓夢)>>, <<삼국연의(三國演義)>>, <<고금기관(古今奇觀)>>, <<유림외사(儒林外史)>>, <<요제지이(聊齊志異)>> 같은 책들도 옛날에는 전부 ‘심심풀이 책’이었으나 지금은 ‘대아(大雅)’가 아닌 것이 없다.
문학형식에 있어 통속에서 고아한 문학 경전으로 바뀐 원류와 원인 및 결과에 대해 얼마나 많은 문인과 선비들이 머리를 짜내어 고증하고 탐색하고 연구해 왔는지 모른다.
다시 말해 무협 소설과 같은 이러한 형식은, 중국에서 그 원류가 아주 오래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원류가 오래 되었기 때문에 김용같은 인물이 생겨날 수 있었고, ‘김용열(金庸熱)’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것의 효시(嚆矢)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중의 <유협열전(游俠列傳)>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물론, 사마천의 <유협열전>은 ‘역사’이지 ‘예술’이 아니며, ‘엄숙문학(嚴肅文學)’이지 ‘통속문학(通俗文學)’이 아니므로 사마천을 무협 소설가의 ‘비조’로 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비록 이 학설이 독자들과 학자들 사이에서는 아직 정설로 확립된 것은 아니지만 널리 퍼져 있는 견해인 것만은 사실이다.
설사 <유협열전>을 무협 소설의 효시로 삼을 수 없다 하더라도, 당대(唐代) 전기(傳奇) 중의 상당히 많은 편(篇)은 의심할 여지 없이 현재의 무협 소설의 선구로 삼을 수 있으니, 그 중 유명한 작품으로는 <홍선(紅線)>, <섭은랑(攝隱娘)>, <곤륜노(昆侖奴)> 등이 있다.
명대(明代)에 이르러 ‘설화(說話)’가 유행하면서 무협 이야기를 얘기하는 ‘화본(話本)’ 역시 그에 따라 생겨나게 되었다. <이배공궁도봉협객(李湃公窮途逢俠客)>, <양겸지객방우협승(楊謙之客舫遇俠僧)> 등등은 비록 그 무협의 형상화에 있어 <홍선(紅線)> 중의 홍선(紅線)보다 훨씬 성공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소설의 구성이 훨씬 곡절 있고, 내용이 훨씬 풍부하다.
청대(淸代) 말엽, 장편 협의소설이 대거 출현하였다. 최초의 작품이 문강(文康)의 <<아녀영웅전(兒女英雄傳)>>이요, 두번째는 석옥곤(石玉昆)이 평화(平話)의 저본(底本)을 근거로 정리한 <<삼협오의(三俠五義)>>이며, 그 다음으로는 <<칠검십삼협(七劍十三俠)>>, <<영웅대팔의(英雄大八義)>> 등이 있었다. 이런 소설들은 협객들이 지방을 떠돌면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고 폭정에 대항하며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우는 것을 묘사하는 데 뜻을 두고 있다. 그 후 <<시공안(施公案)>>, <<팽공안(彭公案)>>, <<유공안(劉公案)>> 등의 ‘공안소설(公案小說)’이 계속 출현했다. 이런 것들은 무협 소설의 하나의 변종(變種)으로 볼 수 있는데, 당시 민간에서 자못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민국 이후, 특히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무협 소설은 더더욱 흥성하였다. <<강호기협전(江湖奇俠傳)>>, <<촉산검협전(蜀山劍俠傳)>>, <<청성십구협(靑城十九俠)>>, <<대도왕오(大刀王五)>>, <<초망영웅전(草莽英雄傳)>>, <<철기은병(鐵騎銀甁)>>, <<칠살비(七殺碑)>> 등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무협 소설은 기나긴 발전 과정을 거쳐 중국 문학의 하나의 독특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완전한 문학 형식으로 정착되었다.
우리들이 이런 것들을 이야기해야 하는 까닭은 결코 ‘겉모양을 강조하여 사람을 놀라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고아함(雅)’과 ‘속됨(俗)’이라는 이 관념들이 단지 하나의 ‘관념’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만일 간단한 규정인 이 ‘고아함’과 ‘속됨’이라는 명목으로 어떤 문학 작품이나 혹은 문학의 전체 형식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오만과 편견’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홍루몽(紅樓夢)>> 및 ‘홍학(紅學)’의 경우는 우리들이 거울로 삼아 연구할만한 가치가 많다. 또 <<수호전(水滸傳)>>은 오늘날 놀랍게도 ‘중국의 4대 고전 소설 명작’의 하나이지만, 그 책을 무협 소설이라 한다 해도 반대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 책은 본래 무협 소설이었으니까 말이다.
‘오만과 편견’은 매우 나쁜 습관이다. 그리고 우리 중국 민족은 그저 ‘묘당(廟堂)의 높음'만 인정할 뿐 ‘강호(江湖)의 끝없음’은 인정하지를 않는다. 비록 현재에는 무슨 ‘묘당’이니 ‘강호’니 하는 차이가 이미 없어졌고, 또 누가 ‘정종(正宗)’이니, 누가 ‘방계(旁系)’니 하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이젠 없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중국인들의 ‘정통(正統)’에 대한 신념은 여전히 조금도 변화가 없다. ‘속된 것(俗)’이기만 하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아주 통속적이면서도 고아하다’는 말을 하면 무슨 ‘나라 밖에서 벌어지는 괴상한 이야기’쯤으로 듣는다. 이것은 아마도 전통 교육이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
다행히 이러한 상황은 이미 점점 변화하는 와중에 있다. 또한 확실히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二
‘고아함과 속됨에 관한 관념(雅俗之念)'을 바꾸거나 없애는 것은, 무협 소설이나 속문학이 아문학(雅文學) 혹은 순문학(純文學)이나 엄숙문학 등과 차이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며, 속문학이 진정 좋은 문학이고 아문학은 ‘얘기할 가치도 없는 것’이라는 주장은 더더욱 아니다.
현재는 확실히 많은 ‘하층 독자들’이 ‘순문학’ 작품을 읽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위에서 상술한 고루하고 진부한 정통이 극단에서 극단으로 치달은 때문이며, 동시에 사람들이 우려하는 중국 민족 문화의 본질에 관한 문제 탓이다.
‘명가명, 비상명(名可名,非常名)'이라는 대가의 숙련된 말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말하자면 ‘현상을 투과하여 본질을 보아야’하는 것이다.
최소한, ‘무협소설열(武俠小說熱)’과 ‘김용열(金庸熱)’ 같은 현상은 우리들이 성실하게 대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 요구되는 것은 진정한 연구이지, 간단한 평가 혹은 ‘선고(宣告)’가 아니며, 보고도 못본 체하는 무관심이나 내버려 두고 상관 없이 방치해 두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학 현상 혹은 문화 현상으로써의 ‘김용열(金庸熱)’과 ‘무협소설열(武俠小說熱)’은 확실히 우리들이 주의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는데, 예를 들어 ‘열(熱)’의 원인으로 아래와 같은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대륙의 독자에 대해 말하면, 소비 문화 심리의 약간 기형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김용, 양우생, 고룡 등의 ‘신파(新派) 무협 소설’은 홍콩, 대만, 국외 등지에서 1950년대 초부터 이미 유행하기 시작하여 대단한 영향을 끼쳤으나 그때 대륙은 여전히 정치, 경제, 문화가 폐쇄되고 감금된 와중에 있었다. 사람들이 접할 수 있었던 ‘문예(文藝)’란 대부분이 ‘인식작용(認識作用)’과 ‘교육작용(敎育作用)’의 산물이었을 뿐, ‘심미작용(審美作用)’은 그다지 중시되지 못했고, ‘오락작용(娛樂作用)’은 비록 대역무도까지는 아니었으나 적어도 ‘대아당에 오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단 ‘문화혁명(文革)’이 끝나자, 대륙의 정치, 경제, 문화가 개방되어 사람들의 심미(審美)에 대한 욕구와 소일거리 및 오락에 대한 욕구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자연스럽게 대만의 경요(애정 소설 대표 작가)나 홍콩의 김용(무협 소설 대표 작가)과 영합하게 되었다.
이러한 소일거리와 오락 등 ‘소비 문화 심리’에 어느 정도 ‘기형적’인 부분이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문화대혁명’에 의해 감금되고 압제되고 더 나아가 소멸되었었다가, 새로운 시기에 다시 소생한 후 어느 정도는 심하게, 어느 정도는 잘못을 바로 잡으려다 지나쳐 오히려 반발심을 사서 나쁘게, 또 어느 정도는 종류가 너무 많아 다 접하기조차 힘들게 되어, 마치 부자는 ‘콜레스테롤’이 무서워 고기를 삼가지만, 가난한 자는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 고기를 못 먹은 것이 한이 되어 오로지 고기가 좋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을 낳았기 때문이다.
둘째, 고사(故事)와 전기(傳奇) 자체의 매력 때문이다.
‘소비 문화 심리’와 그에 의한 다소간의 기형적인 팽창만을 얘기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고, 특히 전기(傳奇) 고사를 듣는 것을 더욱 좋아하는 보편적인 인류의 심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마치 어린애들처럼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며, ‘그 후엔 어떻게 되었는가’를 묻기를 좋아한다. 또 ‘기이한 이야기’를 좋아하며 ‘복잡하고 색다른’ 것을 더더욱 좋아한다.
무협 소설은 다른 유형의 소설, 즉 탐정 소설, 추리 소설, 스릴러 소설, 신비 소설, 공상과학 소설 등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심리에 부합되기 때문에 크게 환영을 받은 것이다.
세번째, 무공과 협의의 ‘문화적 특산물’ 때문이다. 위에서 우리들은 중국의 무협 소설의 원류가 아주 오래 되었기 때문에 김용과 ‘김용열(金庸熱)’이 생겨날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김용의 무협 소설은 중국인에게는 ‘익숙한 낯선 것’이었다. 익숙하다는 것은 그 안의 ‘무공’과 ‘협의’를 말하는 것이며 낯설다는 것은 그 안의 줄거리, 고사(故事), 인물을 말하는 것이다. ‘무공’은 ‘중국 쿵후’이므로 중국인들에게는 진실로 아름답고 특별한 것이다. ‘협의’는 수천 년의 봉건 전통과 ‘비합법적인 정치’, 즉 ‘인치(人治)’이지 ‘법치(法治)’가 아닌 정치를 겪은 중국인들이 더더욱 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모든 중국인들은 일면으로는 강자가 지존이 되고, 법도 하늘도 없는 그러한 세계 속에서 ‘무법(無法)의 법’을 묵인하지만, 또 다른 일면으로는 모든 허약하고 힘없고 비천하고 겁이 많고 나약하며 조금의 안전감도 없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환상 중에 ‘협의’를 행하는 ‘구세주’를 기다리며, 그 구세주가 ‘위험과 고난에서 구해주고’, ‘빈부를 균등하게 해 줄 것’을 바라기 마련이었다.
이 점은 현재 국내외의 중국인들을 보아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시 말하면 한편으로는 하나의 문화적 유전이자 그 심미적 현상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 더 깊이 생각해 보자면 중국인들의 골수에 박힌 비겁한 자아의 본능적인 환상과 희망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네번째는 중국의 형식과 중국의 작파(作派)의 매력 때문이다.
국외의 중국 교민들에게 무협 소설은 신파(新派)이든 구파(舊派)이든 상관없이 친숙한 민족 형식이요, 중국 작파(作派)의 상징이다. 그것을 읽으면 고사(故事)와 전기(傳奇), 무공과 협의 등등의 일반적인 흡인력 외에도 특수한 친밀감이 있어서 그것을 민족 문학 형식의 상징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중국의 독자들에게는 비록 내용과 형식이 약간 복잡하게 느껴지는 감은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 마찬가지로 무협 소설은 장회(章回)나 설화(說話)같은 류의 형식 및 서사 방법, 언어에서부터 그 안의 내용과 인물, 생존 환경, 생활의 가치관 및 마음 속의 고통과 희망 등등에 이르기까지 ‘민족 문화 형식’의 친근한 상징이 아닌 것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의 ‘신문학’이나 ‘순문학’이 무슨 ‘외국문학’이나 ‘이민족 형식’인 것은 아니지만, 그 가운데는 외국 문학의 형식과 관점, 가치관, 더 나아가서는 취미 등등의 영향을 받았음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다.
‘오사(五四)’의 신문학은 ‘옛것도 아니고(非古)’, ‘서양의 것도 아닌(非洋)’, 특수한 ‘신형식(新形式)’이었다. 최소한 순수한 ‘민족 형식’은 아니었으며, 작게는 구둣점의 사용, 서술하는 언어의 길이와 규범에서부터, 크게는 소설의 주제 및 그 줄거리의 배치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미 순수한 ‘중국의 작풍(作風)’과 ‘중국의 기질’이 아니었다. 최근 몇십 년 간의 중국 대륙의 문학은 더더욱 ‘봉건주의, 자본주의, 수정주의’의 각종 ‘전통’을 모두 내버리고 혁신적인 문학 관념 체계와 예술 형식을 창조하고자 기도하고 있다. 이것은 전문적이고도 과학적인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므로, 이에 대해 우리들이 어떠한 평가를 내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것은 최소한 우리들이 현재 ‘인식하고’ 있는 ‘중국 문학’이라는 것이 반드시 인민 대중들이 진정으로 즐겨 듣고 즐겨 보는 ‘민족 형식’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해 준다.
김용 등의 무협 소설에 대한 모두의 특별한 사랑과 관심이 바로 ‘타향에서 고향 친구를 만난 것 같은’ 친밀감을 만들어낸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은 마땅히 무협 소설을 일률적으로 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 가운데의 뛰어나고 못한 차이, 고하(高下)의 구분은 천양지차이다. 동시에 사람들이 무협 소설을 읽는 원인도 일률적으로 논해서는 안 된다. 그 가운데의 ‘고인(高人)’과 ‘고품(高品)’, ‘저인(低人)’과 ‘저품(低品)’의 차이 역시 대단히 심하다. 품격(品格)이 서로 비슷한 김용, 고룡, 양우생 같은 작가들 사이에도 역시 서로 다른 ‘풍격(風格)’이 있으니, 마찬가지로 품격이 서로 비슷한 독자들 사이에도 역시 서로 다른 ‘느낌’이 있기 마련일 게다.
三
각설하고, 김용에 대해 얘기해 보자. 김용의 성(姓)은 김(金)이 아니라 사(査)이다. 본명은 사량용(査良鏞)이다. 많은 독자들은 이미 ‘김용(金庸)’이라는 이름이 사량용(査良鏞)의 용(鏞) 자를 둘로 나눈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김용 선생은 1925년 절강성(浙江省) 해녕현(海寧縣) 사람이다. 이것은 김용의 <<서검은구록(書劍恩仇錄)>>, <<녹정기(鹿鼎記)>> 같은 소설의 후기 혹은 주석 가운데서 살펴볼 수 있다.
‘해녕사가(海寧査家)'는 실로 대단한 권세를 지닌 집안으로, 역대로 인재를 배출해낸 명문이다. 예를 들어 청대(淸代)의 가장 유명한 시인이었던 사신행(査愼行)이 바로 해녕사가(海寧査家) 출신으로 김용 즉 사량용(査良鏞)의 조상이다. 그때 이 일가에는 ‘한 문중에 진사가 일곱이요, 숙질 가운데는 한림원의 관리가 다섯’이었으니 과거 급제한 인재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가히 상상할 수 있다. 김용의 조부만 해도 강소성(江蘇省) 단양현(丹陽縣)의 지현(知縣:현의 지사)을 지냈다. 이는 소설 <<연성결(連城訣)>>의 후기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언급하는 이유는 우리들이 김용의 작품을 읽고 이해하고 김용의 ‘뿌리’와 더 나아가서는 김용 자신이 많은 방면에서 보인 뛰어난 공헌에 대해 명백히 하기 위해서이며, 또한 홍콩의 명인(名人)이 되고 심지어는 ‘명인 중의 명인’이라고까지 불리는 것이 이 ‘조상들의 음덕’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신중히 고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김용의 소설 중에서 우리는 이미 각 사람의 인생 역정 및 그 일의 성취는 자신의 기회와 노력에 달려 있지 조상의 음덕이 어떠한가와는 큰 상관이 없음을 볼 수 있다.
김용 소설 중에는 수많은 ‘명문의 자제'들이 몰락하여 거지나 노예가 되고 심지어는 간악무도한 모리배가 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또한 미천하고 보잘 것 없는 자나 내력이 불분명한 고아가 일대의 대협(大俠), 호사(豪士)가 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당연히, 명문의 자제가 열심히 노력하여 ‘가문을 빛내는’ 경우도 물론 많이 있다.
김용의 성취는 대부분 그의 고학(苦學), 성실, 재능, 학식 및 꾸준하고 성실한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김용이 항주(杭州)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중일전쟁을 만나 난세(亂世)의 괴로움을 겪으며 고향을 떠나 타향을 떠돌게 되었다. 이것은 김용의 소설 가운데에서 다분히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김용은 ‘난세의 어려움과 이별의 고통’에 대해 썼는데 자기 자신이 몸소 겪은 이 내력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한동안 유랑의 시기를 거친 후에 국립정치대학(國立政治大學)에 입학하여 외국 문학을 전공했다. 일설에는 그가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그만두었다고 하나 그 자세한 원인은 알 수 없다.
김용이 대학을 떠날 즈음, 당시 중국에서 가장 지위가 높고 영향력이 큰 신문인 <대공보(大公報)>에서 전국 범위로 기자를 공개 채용했는데, 삼천여 명의 시험 응시자 중에서 김용이 채용되었다. 김용은 이로부터 죽을 때까지 신문 일과 깊은 인연을 갖게 되었다. <대공보(大公報)>에 취직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곧 홍콩지사로 파견되어 번역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김용은 이 신문사에서 오랫동안 일했으나, 후에 사정으로 인하여 떠나게 된다. 이 시기에 김용은 영화 사업에 흥미를 느끼고 ‘요복란(姚馥蘭:Your Friend의 음역)’이라는 이름으로 신문에 영화 평을 발표하여 자못 영향력을 발휘했다. 또 ‘임환(林歡)’이라는 이름으로 영화 평을 쓰고, 대본을 썼으며, 심지어 직접 영화사에 들어가 연출 작업을 맡기도 했다.
1955년, 동료이자 좋은 벗인 양우생(梁羽生) 등의 영향을 받아 무협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 그는 어떠한 형식의 소설도 써본 적이 없었다.
그 처녀작이 바로 <<서검은구록(書劍恩仇錄)>>, 일명 <<서검강산(書劍江山)>>인데, 발표하자마자 온 세상을 놀래키게 되었다. 그 이후로 그는 명성을 날리게 되어 쓰는 일을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 일명 <<대막영웅전(大漠英雄傳)>>을 발표할 때에는 가히 무협 소설의 대종사(大宗師) 혹은 ‘진명천자(眞命天子)’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했다고 할 수 있겠다.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 후에 김용은 다른 신문사를 떠나 그의 중학교 동창인 심보신(沈寶新) 선생과 함께 <명보(明報)>를 창간했다. <명보(明報)>의 초창기에 김용은 이 신문에 <<신조협려(神雕俠侶)>>를 연재하여 독자 및 정기 구독자들을 끌어들였다. 그의 무협 소설과 그 성공적인 명성이 그가 설립한 <명보>에 엄청난 작용을 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후, 그의 대부분의 무협 소설 작품은 최후작인 <<녹정기(鹿鼎記)>>에 이르기까지 모두 <명보>에 발표되었다. <<녹정기>>의 연재를 끝낸 후로 김용은 절필하고 더이상 무협 소설을 쓰지 않고 있다.
많은 독자들이 '김대협(金大俠)' 김용이 대체 어떤 무공 솜씨를 지니고 있는지 십분 관심이 많을 것이다. 들리는 말로는 김대협은 태극권의 이론에 정통한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내공도, 외공도, 경공이나 암기도 전혀 못한다고 한다. ‘구양진경’, ‘구음진경’, ‘건곤대나이’ 등등의 실제적인 쿵후도 김대협은 단지 ‘말할’ 수만 있을 뿐 실제로 ‘펼치지는’ 못한다. 그러나 김대협은 ‘무(武)’는 못하나 ‘무(舞)’는 할 줄 알았으니, 어렸을 적 그는 발레를 배운 적도 있고 고전 음악에 대해서도 높은 소양을 지니고 있었다. 그 밖에 또 바둑 두기를 좋아해서 ‘쌍륙(雙六)과 바둑의 수’ 및 그 이치에 아주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아 부었다. 수많은 대륙과 대만의 바둑 고수들이 김용의 친구였으며, 프로 기사들은 홍콩에 있는 김용의 집에서 기예를 절차탁마하거나, 이론을 이야기하며 지내곤 했다는 미담이 많이 전해 온다.
자연히 김용이 가장 시간을 들인 것은 ‘문리(文理)’이지 ‘무술(武術)’이 아니었다. 김용이 모은 장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움과 부러움을 살 정도로 양이 많았고, 그의 넓으면서도 깊은 독서의 범위 역시 사람들로 하여금 존경과 탄복을 연발케 했다.
근래, 김용은 불학(佛學)에 대한 흥미가 깊었는데 다분히 ‘득도(得道)’의 경지에 이른 듯하니, 이것은 김용의 소설 중에서 대체로 만나볼 수 있거나 추측할 수 있다.
四
다시 그의 소설을 이야기해 보자. 김용 자체에 대해서 우리는 위에서 말한 몇가지 점을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고, 대개 그 정도만 이야기하면 충분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마주한 것은 바로 김용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대개 많은 독자들은 김용이 일찍이 자신의 주요 소설 제목의 앞글자를 따서 14자로 된 한 편의 대련(對聯)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대련은 다음과 같다.
비(飛)-<<비호외전(飛狐外傳)>>
설(雪)-<<설산비호(雪山飛狐)>>
연(連)-<<연성결(連城訣)>>
천(天)-<<천룡팔부(天龍八部)>>
사(射)-<<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
백(白)-<<백마소서풍(白馬嘯西風)>>
녹(鹿)-<<녹정기(鹿鼎記)>>
소(笑)-<<소오강호(笑傲江湖)>>
서(書)-<<서검은구록(書劍恩仇錄)>>
신(神)-<<신조협려(神雕俠侶)>>
협(俠)-<<협객행(俠客行)>>
의(倚)-<<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벽(碧)-<<벽혈검(碧血劍)>>
원(鴛)-<<원앙도(鴛鴦刀)>>
여기에 <<월녀검(越女劍)>> 한 부를 더하여 총 15부의 작품이 있다. 그 중 <<월녀검(越女劍)>>, <<백마소서풍(白馬嘯西風)>>, <<원앙도(鴛鴦刀)>> 세 부가 중단편 소설이고 나머지 12부는 장편이다.
앞에서 이미 말했듯이, 김용은 1955년 무협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처녀작이 <서검은구록(書劍恩仇錄)>>이다. 최후의 소설과 절필한 시간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說)이 있다. 하나는 <<월녀검(越女劍)>>으로 1970년 1월에 지었다는 설이다. 김용 자신이 이 설을 견지하면서 <<녹정기>> 후기에서 ‘15부의 장편 소설을 15년간 썼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설은 <<월녀검(越女劍)>>이 분명 김용이 최후로 구상하고 써낸 작품이라는 사실로 뒷받침 된다. 또 다른 설은 <<녹정기(鹿鼎記)>>가 바로 최후로 절필한 ‘봉도지작(封刀之作)’이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김용 본인 역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녹정기>>는 1969년 10월 24일 <명보>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1972년 9월 23일 완성했으니 총 2년 11개월간 연재한 것이다. 내가 연재하는 습관은 매일 한 단락을 써서 그 다음날 연재하곤 했으므로 이 소설 역시 2년 11개월간 써낸 셈이 된다. 만일 특별한 의외(살아가는 가운데는 언제나 특별한 의외의 일이 있기 마련)이 없다면, 이것이 내 최후의 무협소설이 될 것이다. -<<녹정기>>의 후기(後記)에서
아주 분명한 점은 <<녹정기(鹿鼎記)>>가 <<월녀검(越女劍)>>보다 빨리 쓰기 시작했으나, 끝난 것은 <<월녀검>>보다 늦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김용의 진정한 절필작은 마땅히 <<녹정기>>이며, 이것은 김용이 15부를 쓰는데 15년이 걸린 것이 아니라 17년이 걸렸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용의 모든 작품은 전부 우선 신문에 연재되었다가 후에 다시 수정하여 책으로 출간되었다. 수정 작업은 1970년 3월부터 시작하여 10년이 걸린 1980년 끝났다. 김용의 거의 모든 저작은 대폭의 수정을 거쳤고, 소수의 작품은 심지어 ‘진면목(내용)’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했다.
이 점이 의미하는 바는, 대륙의 독자들은 당시 국외의 신문에 연재되던 김용의 작품을 읽을 행운을 누릴 수 없었으나(물론 극소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행운을 누리기도 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결국 1980년대 전후에 전부 접할 수 있었으며, 또한 대부분이 바로 그 ‘수정본(修訂本)’이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책으로 나온 그 소설의 완전성과 예술 성취가 당시 연재되던 것에 비해 당연히 더 좋았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매일 매일 읽으며 다음 얘기에 마음 졸이고 노심초사할 필요도 없었으니, 이런 것을 일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필자가 책에서 언급하는 ‘김용’은 전부 ‘수정된 후의 김용’이지 ‘연재될 당시의 김용’이 아니다. 왜냐하면, 필자가 본, 그리고 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수정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연재본(連載本)’과 ‘수정본(여러 차례에 걸친 수정본을 모두 포함하여)’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상당한 차이가 있으나, 안타깝게도 필자는 언급할 방법이 없다. 다시 말해 그 사이의 차이에 대한 연구는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전문적인 연구 과제가 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는 다만 ‘이 김용’에 대해서만 밝히지 ‘저 김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기로 한다. 이 점 독자 제현의 넓은 아량과 이해를 바란다.
김용의 이 15부의 작품은, 길이도 다르고, 써낸 시간과 방법 역시 모두 다르므로 그 성취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많은 독자들은 ‘너는 김용의 소설 중에 어느 것, 혹은 어떤 부를 가장 좋아하느냐?’고 서로 토론하기를 좋아한다. 김용을 만나볼 수 있었던 행운을 지닌 사람이 작가 김용에게 직접 물었다. ‘당신 자신은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십니까?’
김용은 아주 교활하면서도 실제적인 대답을 했으니 그 대답은 바로 ‘장편이 중단편보다 좀 낫고, 나중에 쓴 것이 먼저 쓴 것보다 좀 낫다’는 것이었다. 이 대답은 이치에 맞는 대답이니, 내가 보기에도 대체로 정말 이와 같다.
<<백마소서풍>>, <<원앙도>> 및 <<월녀검>>(비록 가장 늦은 작품이기는 하지만)은 다른 12부의 장편에 비교하면 대체적으로 약간 뒤떨어지는 감이 있다. 김용이 중단편을 쓸 때는 ‘신경을 덜 써서’ 그럴 수도 있고, 혹은 김용이 중단편의 내용이 발전되자마자 ‘허둥지둥 끝마친’ 탓에 그럴 수도 있다. 혹은 중단편 소설의 길이가 근본적으로 무협 소설에 맞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편 ‘나중에 쓴 것이 먼저 쓴 것보다 좀 낫다’는 말도 사실이다. 처녀작인 <<서검은구록(書劍恩仇錄)>>은 비록 아주 뛰어난 처녀작이고, 또 사람들이 천지를 놀라게 한 작품이라고 평가하였으나,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이나, 혹은 더 뒤의 작품인 <<천룡팔부(天龍八部)>>, <<녹정기(鹿鼎記)>> 등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크게 손색이 있다. 왜냐하면 후기의 김용은 ‘천인(天人)’ 혹은 ‘천재(天才)’일 뿐만 아니라 ‘진명천자(眞命天子)’였기 때문이다. 또한 ‘신성(新星)’이나 ‘거성(巨星)’일 뿐만 아니라 ‘무림지존(武林至尊)’이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김용의 소설 창작이 대체적으로 초기, 중기, 후기의 3기로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중기의 작품이 초기보다 훨씬 낫고, 후기의 작품은 중기보다 낫다.
초기의 대표작으로는 <<서검은구록>>, <<벽혈검>>, <<설산비호>>, <<비호외전>>이 있다.
중기의 대표작은 ‘사조삼부작(射雕三部作)’이라고 불리는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와 <<연성결>>이 있다.
후기의 대표작은 <<협객행>>, <<천룡팔부>>, <<소오강호>>와 <<녹정기>>가 있다.
당연히, 이것은 단지 필자 본인의 관점일 뿐이지만, 그래도 많은 동료들과 친구들의 동의를 얻은 바 있다. 하지만 반드시 확실하다고 단언 내릴 수는 없으니, 소위 ‘인자(仁者)는 인(仁)만 보고, 지자(智者)는 지(智)만 본다’라든가, ‘모든 사물에는 각기 쓰이는 바가 있다’라는 등과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그저 나는 여기에서 김용의 무협 소설을 논함에 있어, ‘조금도 꺼리지 않고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하려고 할 뿐이다.
한 친구가 김용 소설에 대한 나의 관점과 소위 ‘좋고 나쁨’에 대한 의견을 물었던 적이 있는데 난 그때 ‘칠상팔하(七上八下)’의 학설(일곱 가지는 뛰어나고, 여덟 가지는 뒤떨어짐)을 가지고 대답했었다.
나는 김용의 총 15부의 작품 중에서 일곱 가지는 ‘상품(上品)’이지만, 나머지 여덟 가지는 그저 ‘중품(中品)’, 혹은 ‘하품(下品)’이라고 생각한다.
뛰어난 일곱 작품은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협객행>>, <<소오강호>>, <<천룡팔부>>, <<녹정기>>이다. 뒤떨어지는 여덟 작품이 무엇인가는 더 말하지 않아도 분명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이 ‘뛰어난 일곱 작품’ 중에서도 특히 <<천룡팔부>>와 <<녹정기>>가 훨씬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농담조로 ‘칠걸(七傑) 중에 양절(兩絶)이 있다’고 얘기하곤 하는데, 위에서 말한 일곱 작품은 의심할 여지 없이 모두 ‘걸작(傑作)’이요, 이 일곱 개의 걸작 중에 <<천룡팔부>>와 <<녹정기>>는 가히 ‘절작(絶作)’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다. ‘뛰어난 후배’가 없다고는 감히 단언할 수 없지만, ‘뛰어난 선배가 없다’는 것은 분명 확실하다.
五
다시 그의 ‘학문’에 대해 얘기해 보자. 1980년 10월 12일, 대만의 심등은(沈登恩) 선생이 홍콩의 <명보(明報)>에 광고를 하나 냈다.
<특별한 분을 모십니다.>
예광(倪匡)이 집필한 김학 연구의 제1집인 <내가 본 김용 소설>은 김용 소설에 대한 중국 최초의 계통있는 전문적인 연구 서적으로, 초판은 이미 절판되었고, 재판을 찍어 현재 홍콩의 각 서점에서 판매 중에 있습니다.
<명보>에서는 이 책을 평가하여, <예광은 그의 미묘하고 운치가 넘치는 필체로 깨달은 바를 적었는데, 침울한 느낌은 전혀 없고, 한번에 독자들을 사로잡아 단숨에 책을 다 읽게 만드니 이것이 바로 이 책의 가장 큰 특색이다>라고 논했습니다.
<<김학 연구>>는 총 10집이 출판될 예정으로 있는데, 명 작가들을 초청하여 집필하는 것 외에도 특별히 독자들의 투고를 환영하는 바이니 <내가 본 김용 소설> 출판에 참여 하시기 바랍니다. 원고료는 특별히 많이 드리며 이번 달 말까지 원고를 받겠습니다.
이 한 편의 광고는 <<김학연구총서(金學硏究叢書)>>의 서막을 연 동시에 국외에서의 ‘김학(金學)’ 연구의 서막을 연 것이었다. 심등은 선생은 또한 <백 년에 하나 나온 김용> 등의 글을 써서 ‘김학’의 동기와 의의에 대해 더욱 자세히 논술하고, <<김학연구총서>>를 주관하여 집필했다.
내가 볼 수 있는 모든 자료에 의거하면, 대만의 원경출판사업공사(遠景出版事業公司)에서 심등은 선생이 주관하여 출판한 <<<김학연구총서>>>는 지금까지 10권을 넘어선지 오래 되고 20권 가까이 출판되었다. 그 중 주요한 저작으로는 <내가 본 김용 소설>, <다시 본 김용 소설>, <세번 본 김용 소설>, <네번 본 김용 소설>, <다섯번 본 김용 소설>(모두 예광이 썼음)이 있고, <여러 사람들이 본 김용> 1, 2, 3, 4(총 4집으로 삼모(三毛), 나용치(羅龍治), 옹령문(翁靈文), 두남발(杜南發) 등이 함께 썼음)가 있으며, <소오강호에 대한 담론>, <설산비호와 원앙도 분석>, <천룡팔부 감상> (모두 온서안(溫瑞安)이 썼음), <독김용우득(讀金庸偶得)> (서국치(舒國治)), <밤을 새워 읽은 김용> (설흥국(薛興國)), <김용이 그린 세계에 대한 만필(漫筆)> (양흥안(揚興安)), <김용의 무협 세계> (소조기(蕭兆基)), <위소보 신공> (유천사(劉天賜)), <정에 대한 탐색과 신조협려> (진패연(陳沛然)) 등등이 있다.
이런 이유로 국외의 ‘김학’이 결코 ‘나라 밖에서 벌어지는 괴상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생겨난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생겨난 근본 원인은 김용이 ‘백 년에 하나 나오는 김용’(심등은의 말)이기 때문이며, 또 ‘김용의 소설이 홍콩, 대만, 남지나해, 북미에 유행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침식을 잊고 빠져 들었으며, 중국 대륙에서도 김용 소설을 접할 수 있는 것을 행운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까지도 전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김용의 소설은 모든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있어서, 위로는 대학 교수나 국가 원수로부터, 아래로는 상인, 심부름꾼, 하인, 머슴에 이르기까지 진정으로 모든 사람이 함께 감상하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김용은 중국 근대사상 가장 많은 독자를 포용하는 소설가>(예광의 글 <무협 소설의 대종사 김용>에서 인용)라고 한 말이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 소설의 대종사(大宗師)와 중국인이 있는 전세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그의 소설 작품, 그리고 종이 값이 오를 정도로 책이 잘 팔리는 ‘열현상(熱現象)’(묘한 것은 이 ‘김용열’이 오랫동안 식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대상으로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하나의 ‘학문’이 이루어진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六
김용 무협 소설의 오묘함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것은 아마 김용의 책을 읽고 김용을 사랑하는 독자들이라면 항상 부딪히는 문제일 것이다. 혼자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고, 남에게도 물어보고, 남에게 질문 받기도 한다. 두세 명의 ‘지기’가 서로 만나 깨달은 바를 이야기 하고 심지어는 밤을 새워 가면서까지 서로 읽은 평을 나누고, 그것에 대해 담론하곤 한다.
김용이 대체 이렇듯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또 그 인기가 조금도 쇠하지 않은 채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김용을 ‘백 년에 하나 나온 기재’니, ‘조설근(曹雪芹:홍루몽의 작가) 이래 최고의 작가’라느니, ‘중국 문화와 문학의 또 한번의 기적’이라느니, ‘중국 전통 백화 문학의 새로운 최고봉’이라느니 하고 칭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국외의 문인과 학자들이 너도 나도 글을 발표하여 김용을 하나의 ‘학문’으로 연구해야 하는 위대한 작가처럼 내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는 결국 다음의 한 가지 문제에 귀결된다. 김용의 오묘함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필자는 <<김용 감상평(金庸賞評)-아속편(雅俗篇)>>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믿고 안 믿고는 당신에게 달려 있다. 김용의 소설은 진실로 아주 통속적이면서도 고아하고, 또 고아하면서도 속된 그런 이야기이다. 그것의 장점은 바로 그것이 속되면서도 고아하고, 통속적이면서도 심각하며, 흥미진진 하면서도 배울 점이 잇고, 재미있는 구경거리이면서도 진리를 찾을 수 있고, 또 신기하고 기이하면서도 진실이어서 사람들의 오락적인 요구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대단히 풍부한 미학적, 철학적인 맛을 감상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것은 무협과 전기의 내용을 담은 일종의 ‘성인들의 동화’이며, 동시에 인생과 세계에 대한 심각한 우언(寓言:교훈)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총괄하면, 바로 고아함과 속됨(雅俗)을 함께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속을 함께 맛본다’는 아속공상(雅俗共賞)이란 말은 전혀 낯설게 들리지 않으며, 심지어는 항상 하는 말인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문학 예술 작품(‘순문학’과 ‘속문학’의 차이를 떠나서)이 진정코 아속공상(雅俗共賞)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속공상(雅俗共賞)은 문학 예술의 가장 높고 가장 위대한 경지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늘 하는 말로 ‘볼 수 있는 것을 보면 진리를 찾고, 볼 수 없는 것을 보면 구경을 한다’는 말이 있다. 소위 ‘아속공상(雅俗共賞)’은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 모두를 맛볼 수 있게 한다. 바꿔 말하자면, ‘구경’도 할 수 있고 ‘진리’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들은 소설을 ‘흥미진진하게’(즉 구경거리로) 쓰는 일이 절대로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또한 ‘배울 점이 있게’ 쓰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는 것도 안다. 진리를 담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인 것이다.
만약 그것이 ‘흥미진진하면서’도 ‘인생을 생각하게’ 한다면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김용의 소설은 뜻밖에도 이 두가지를 다 만족시키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김용의 소설과 다른 무협 소설은 그다지 다른 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무협 소설 역시 긴장감, 곡절(曲折), 격정, 기복, 풍부한 변화, 무공의 액션 등이 있고, 또 협의와 정의를 행하고, 원수를 갚고 한을 풀고, 사랑에 빠지는 등등의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마찬가지로 김용의 소설도 다른 무협 소설과 마찬가지로 ‘재미있는 구경거리’와 ‘곡절’을 갖추고 있어서 ‘흥미진진함’이라는 무협 소설의 ‘필요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다.
김용 자신이 항상 말하길, 그가 무협 소설을 쓰는 이유는 ‘자신을 즐겁게 하고, 또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라 했다. 즉, ‘오락(娛樂)’이 제일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김용은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난 그저 '이야기를 말하는 송대(宋代)의 ‘설화인(說話人)’이나, 근대의 ‘설서선생(說書先生)’과 비슷할 뿐이다. 나는 그저 이야기를 생동감 있고 재미있게 말하고자 할 뿐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무협 소설 읽기를 좋아했는데, 이러한 소설을 쓰는 것은 당연히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이며, 자신을 즐겁게 하고 또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금전상의 고료 문제도 있다.>(<여러 사람들이 본 김용>에서 인용)
이 단계에서는 김용이 다른 무협 소설 작가들과 다른 점은 전혀 없다. 그들도 모두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이며,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무협 전기고사(傳奇故事)를 말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은 아주 곡절 있고 마음 졸이게, 또 긴장감 있고 감동적으로 이야기를 말하므로 사람들을 끌어당겨 계속 읽어나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하게 ‘오락’을 목적으로 하는 ‘유희’라고 말할 수 있다. 이야기 중의 기이한 부분들은 어쩔 수 없이 많이 있게 마련이며, 그것을 전부 믿을 필요는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단계에서 적지 않은 ‘문인(文人) 아사(雅士)’들이 그것을 ‘깔보고 비웃으며’ 이러한 무협 소설을 ‘제멋대로 지어낸 말도 안 되는 허튼 소리’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소설을 완전히 황당무계하고 ‘문학의 생명을 목 조르는’ 것으로 바라보게 된다.
예를 들어 <<신조협려>>에서 소용녀가 절정곡의 벼랑에서 떨어졌어도 죽지 않고, 아니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그 아래에서 16년 동안이나 살아 남은 것이라든지, 또 <<의천도룡기>>에서 사손과 장취산, 은소소가 뜻밖에도 작은 나룻배 하나에 의지하여 남극 대륙까지 떠내려 갔다든지 하는 것은 당연히 ‘믿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과학적인 두뇌’로는 ‘성인들의 동화’를 이해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기계화되고 경직화된 ‘과학적인 두뇌’에서는 이미 약간의 동심조차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분명 김용의 무협 소설도 역시 ‘제멋대로 지어낸’ 것이요, 심지어는 ‘말도 안 되는 허튼 소리’일 수 있다. 하지만 ‘제멋대로 지어낸’ 것이 아니면 어디서 ‘무협’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또 ‘말도 안 되는 허튼 소리’가 아니면 또 어디에서 ‘전기’가 나올 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원래부터 유희가 아닌가 말이다!
문제는 김용의 소설이 ‘유희’이면서도 그 안에 ‘맛(味)’이 있다는 점이요, ‘허튼 소리’이면서도 그 안에 또 ‘도(道)’가 있다는 점이다. 맛이 있고 도가 있으니 다른 일반적인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김용의 소설과 다른 소설들이 다른 점은 김용의 소설은 일률적으로 ‘기이함’과 ‘괴기함’을 추구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혹은 비의도적으로 그 안에 내재한 ‘맛’과 ‘도’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흥미진진’하면서도 ‘보기 어려운’ 작품이 된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대부분의 무협 소설 작가와 작품은 김용의 뒤로 처지고 만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어떤 ‘고인(高人) 아사(雅士)’들께서는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 표면적인 ‘제멋대로 지은’ ‘허튼 소리’만을 보지, 그 안에 내재한 ‘맛’과 ‘도’는 전혀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선 김용은 일률적인 ‘전기’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진실을 구하고’ 더불어 ‘사람에 대해’ 쓴다.
김용 소설의 오묘함은 그 사실이 비록 기이하나 그 사람은 진실되고, 또 사람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지, 이야기가 사람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일반적인 무협 소설은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사람, 특히 그 주인공이 선과 악, 정(正)과 사(邪)가 분명하고 협(俠)과 흉(兇)이 분명하게 대립될 뿐만 아니라, 이 인물들이 완전히 어떤 개념(혹은 이념)의 공식에 딱 맞아서 한 번 보면 금새 알 수 있어서 심오한 맛이 조금도 없는 경우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근본적으로 무슨 인물의 성격이니 하는 것이 없고 그저 기이하고 괴상하고 황당 무계하며 심지어는 실수 투성이로 가득찬 하류의 저급한 ‘고사(故事)’나 ‘전기’인 경우이다.
무협 소설이 ‘경시’당하는 이유도 이와 관계가 있다. 가장 많은 경우는 이 두가지가 하나로 합쳐져 있는 경우인데, 개념의 공식에 딱 맞는 인물과 제멋대로 쓰여진 이야기인 경우로 짜여진 경우가 많다.
그러나 김용의 소설은 거의 처음 시작부터 인물들의 성격이 부각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절대적이다.
김용 소설의 이야기의 줄거리는, 인물 성격의 발전이 요구하는 가능성과 필연성에 의해 설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신조협려>> 중의 소용녀가 벼랑에서 뛰어 내렸으나 죽지 않은 것은, 첫째는 그녀가 양과를 끔찍이 사랑하여 그를 위해 희생하기를 진심으로 원했기 때문이요, 둘째는 그녀가 어려서부터 고묘에서 성장하고 또 ‘옥녀심경’을 연마하여 적막감을 견뎌낼 수 있었기 때문에 16년 동안을 안정되이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또 16년 후 양과가 벼랑에서 뛰어내린 것은 첫째로는 그와 소용녀의 사랑이 죽어도 변치 않을 정도로 지극하여 16년의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전혀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요, 둘째로는 그가 원래 쉽게 극단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 ‘사건’이 비록 ‘기이’하나, 이 ‘정(情)’이 ‘진실되고’ 또한 아름다워서 많은 감동을 주고, 그 인물들의 개성이 더욱 생생하게 부각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김용 소설에서 가장 감동을 주는 부분은 바로 인물이지 사건이 아니다. 인정(人情), 인성(人性), 인생(人生)이 그 삶과 생활, 생명 속에 복잡하게 녹아 있으면서 두가지가 어울려 서로를 돋보이게 만들어 아주 독특하고 심각한 광채를 발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김용 소설은 ‘전기(傳奇)’와 ‘역사(歷史)’가 교묘히 결합하여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다. 일반적인 무협 소설은 항상 강호에서 벌어지는 은원 관계와, 녹림에서 벌어지는 온갖 행악, 초야에서 벌어지는 살인과 활극을 써낸다.
그러나 김용의 소설은 하나 하나가 전부 '역사'에서 끌어낸 ‘전기’인 까닭에 그 혼연일체로 인해 중국 고대의 민족 영웅의 전기 고사(傳奇故事)가 되는 동시에 중국 고대의 영웅의 역사시가 되는 것이다.
김용의 무협 소설의 대부분은 확실한 역사적 연대와 구체적인 역사 배경을 지니고 있다. 김용은 이렇게 하여 ‘신빙성’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의와 작용은 이보다 훨씬 뛰어났다. 단순히 ‘신빙성’을 가한 외에도 역사에서 전기를 이끌어 냈다.
김용 소설 중에는 많은 진인(眞人:역사적 인물)이 있으나 그들의 사적(事迹)은 대부분 전설이나 야사에서 나온 ‘거짓 사건, 혹은 믿기에는 좀 부족한 사건’이다.
김용은 또 허구적인 인물과 이야기를 가지고 아주 믿을만한 진실을 쓰고자 노력했다. 이렇게 하여 진짜 인물들의 거짓 사건과 가짜 인물들의 진짜 사건이 서로 뒤섞여 사람들로 하여금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믿지 않을 수도 없게 만든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믿을 수 없지만 ‘예술적인 사실’, 혹은 ‘철학적인 사실’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또 아주 믿을 만한 것이 된다. 그리하여 그의 소설은 독특한 분위기와 깊은 함축미를 지니게 된다.
‘강호(江湖:전기)’를 쓰면서 ‘강산(江山:역사)’를 동시에 써내어 강호와 강산 사이에서, 전기와 역사 사이에서 길을 찾아내어 ‘무림’과 ‘문단’에 홀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바로 이러한 ‘역사에 대한 감흥’과 ‘인성에 대한 혜안’이 있었기에 김용의 소설은 초월적인 무협 소설의 ‘대경계(大境界)’를 이루게 된다.
김용의 소설의 특별한 점은 바로 한 눈에 ‘거대한 면’과 ‘커다란 기세’, ‘커다란 포부’ 및 ‘대경계’와 ‘높은 문필’을 알아볼 수 있다는 데 있다.
김용은 위대한 문필가이다. 그가 그려내는 무협의 세계는 가히 광대하면서 끝이 보이지 않고 ‘녹림(綠林)’의 세계에 그치지 않고 모든 세계에 미치고 있으며, ‘강호’에서 멈추지 않고 ‘강산’과 ‘묘당’(廟堂:역사와 정치)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개인적인 싸움’에 그치지 않고 민족 전쟁, 천군만마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리하여 스케일이 웅대하고, 실마리가 극히 다양하며, 시야가 아주 넓고, 기상천외하며, 기세가 큰 것이다!
더욱 값진 것은 김용 소설이 ‘무림의 실제 기록’이나 ‘역사의 번안(飜案)’이 아니라, ‘무림’과 ‘역사’의 독특한 시공 속에서 그의 인생과 역사, 세계, 생명, 인성, 정치, 국민성, 민족성 등등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써 내는데 뜻을 두어 ‘전생의 원한과 죄업’ 속에 ‘연민’을 볼 수 있고 ‘커다란 기세’ 속에서 ‘대경계(大境界)’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용 소설의 또다른 오묘한 부분은 ‘커다람(大)’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미세함(微)’까지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수미(須彌:우주)처럼 크고 겨자씨처럼 작은 것이 아주 오묘하게 섞여 있다.
소위 ‘미세한’ 부분이란 소설의 사소한 내용, 서술하는 언어, 무공의 초식 및 각종 지식과 학식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것들이 김용을 다른 소설들과 다르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일반적인 무협 소설은 인물 묘사에 중점을 두지 않고 일률적으로 그 ‘줄거리’의 괴이함과 곡절, 그리고 구조의 복잡함 만을 추구하여 소설의 사소한 부분이나 언어, 무공의 초식 및 그 밖의 사소하고 지엽적인 것들에는 근본적으로 무심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김용 소설은 사소한 부분에서의 주도면밀함과 서술한 언어의 고아함, 교묘함, 유머, 유려함(대부분은 문언체 반, 백화체 반으로 매끄럽고 유창함)은 그의 소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뒤에서 감상하는 중에 구체적으로 거론할 것이므로 여기에서 일일이 예를 들지는 않고, 다만 김용 소설에서의 무공의 초식이 다른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만을 얘기하고 넘어가겠다.
일반적인 무협 소설에서의 무공은 틀에 박혀 생기가 없거나 혹은 신기하고 괴이하거나, 또 혹은 아예 쓰지를 않는(혹은 다른 사람들 것을 그대로 베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예술성과 독창성이 전혀 없다.
그러나 김용 소설에서의 무공의 초식은 기본적으로 ‘시화(詩化)’, ‘철학화’, ‘성격화’되어 있어서 김용 무협 소설을 대단히 뛰어난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소위 ‘시화’나 ‘예술화’란 대부분 시적 정취 혹은 심미적 정취가 충만한 명칭이다.
예를 들어 ‘백화착권(百花錯拳)’, ‘당시검법(唐詩劍法)’, ‘협객행무학총결(俠客行武學總訣)’, ‘암연소혼장(暗然銷魂掌)’, ‘자양신공(紫陽神功)’, ‘낙영신장(落英神掌)’ 등은 형상이 있고 시적인 맛이 가득하다. 또 ‘신행백변(神行百變)’, ‘건곤대나이(乾坤大娜移)’, ‘흡성대법(吸星大法)’, ‘능파미보(凌波微步)’, ‘소무상신공(小無相神功)’, ‘소요장(逍遙掌)’ 등등 역시 형상이 선명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하면서도 또 마음이 끌려드는 면이 있다.
‘철학화’란 김용 소설의 적지 않은 무공 초식에 포함된 ‘무학(武學)’의 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기본적으로는 중국 철학을 ‘활용’한 것이다. 예를 들어 ‘백화착권’에서의 ‘이것인 척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남의 생각이 미치지 않는 틈을 타서 행동을 취하는(似是而非, 出其不意)’ 오묘함이 그러하다. 또 <장자.추수.포정해우(莊子.秋水.疱丁解牛)>의 ‘입신의 경지에 이르러 박자에 잘 맞는(出神入化, 合節合拍)’ 지고한 경지(이것 역시 ‘예술’), 또 장삼봉이 태극검(太極劍)을 가르칠 때 말한 ‘검의 뜻을 얻고 검의 초식은 잊어버리라’는 말이나, 또 풍청양의 ‘독고구검(獨孤九劍)’에서 ‘산 무공에는 활용이 있을 뿐 원래 무슨 초식 같은 것은 없다’는 말과 ‘자연을 따르고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라’는 등등 철학적인 이치를 생동적으로 활용하지 않는 것이 없다.
‘성격화’란 김용의 소설에 있어서 인물들의 무공 초식이 종종 다른 인물의 성격과 서로 합치되고 통일되어 김용이 인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