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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혈기린 외전을 읽고서
石破天·2003.09.02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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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의 序] 이 글은 제가 좌백님의 카페인 백림원에 써놓았던 것입니다. 혈기린 외전 전체에 대해서 감상문을 올리려고 하였지만, 쓰다가 보니 결국 2부 시작부 정도에 대해서 쓰다가 지쳐버렸습니다. 일단 이렇게 글을 옮겨적으면 나중에라도 마무리 할 모멘텀을 얻을 것 같아 옮겨 적어봅니다....

[序] 협객이란 무엇인가? 라는 하나의 물음에서 혈기린외전이 완성되었습니다. 일자무식 시골농군이었던 왕일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협객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1. 역수의 노래

협객을 가장 아름답게 그려낸 역사서는 사마천의 史記입니다. 혈기린 외전중에서도 그 내용이 두세차례 인용되기도 합니다. 제 기억에 의하면 史記에선 이렇게 말하지라는 식으로 자객열전의 일부분을 손부자(1부)와 황보장군(3부)이 각기 한번씩 인용을 합니다.

하지만 인용된 부분중 제 가슴에 와닫는 부분은 왕일이 군역을 마치고서 고향 창주로 향해 돌아오면서 "바람은 소소하고, 역수는 차가와라. 장사 한 번 떠나면, 다시 오지 못하리."라는 노래를 흥얼거릴 때입니다. 이 노래는 중국역사상 가장 유명한 협객인 형가가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며 불렀던 노래입니다. (史記 자객열전) 그 노래가 불려진지 1000년여를 지나 왕일이 어디선가 들었던 그 노래를 아무 생각없이 흥얼거리며 고향땅을 향합니다.

이제 그는 형가와는 달리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협객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자신의 의지에 따랐기에 죽으면서도 굳건할 수 있었던 형가와 반대로 왕일은 자신의 의지에 따른 길이 아니기에 협객의 길을 가면서도 자신의 길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는 고민을 하게됩니다.

2. 타의에 의해 강요된 길

과연 왕일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협객의 길을 가게되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협객의 가장 중요한 상징은 그가 얻은 작은 은혜와 원한을 백배로 갚는데 있는 것인데, 왕일은 세상을 놀랠만한 복수를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런 일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언뜻 보기에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제가 보기에 왕일은 복수조차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왕일이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의 집은 진가장의 횡포로 비참해지고 다시 그들의 사주로 산적떼에게 몰살을 당하고 맙니다. 왕일은 당연히 복수를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의 복수의 수준은 그저 진가장의 장주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흔하디 흔한 복수이죠. 그가 세상이 깜짝 놀랄 복수를 하게되는 이유는 처음에 선택한 방법이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왕일이 진가장에 뛰어들어 끝내 무림인(구지사 증국영)의 손에 제압당하고 다시 하인들에게 몰매를 맞고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있게 되자 그는 온전하지 않은 정신 속에서 자신을 고의로 중독시키고 살기를 희망합니다. 덕분에 간신히 삶의 끝자락을 잡기는 했지만 몸 하나 꼼짝할 수 없는 상태에서 누런 황토빛의 강물 속을 거적떼기와 함께 흘러가던 왕일은 살고자 하는 열망 속에서 한 마디를 내뱉습니다.

"복수"

그리고 그 말이 주는 분노의 힘으로 그는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 전의 그라면 녹림 18채에 속하는 거대한 집단에게는 감히 복수를 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겠지만, 다시 살아난 왕일은 복수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복수는 그의 생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복수를 포기한다는 것은 자기자신에 대한 부정이 되기에 (죽음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그는 복수의 길에서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곧 그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자신의 복수는 자신의 운명이 되었기에 어떻게 종결되든지간에 끝까지 가야하겠지만, 서서히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주위에 모여들고 자신의 복수를 도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복수의 화신일 뿐인 왕일에게서 다른 사람들은 협객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를 도움으로써 스스로 협객이 되고자 그에게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그의 복수가 협객의 길일까요? 자신의 의지로 택한 길이 아니라 그저 운명일 뿐인데, 그걸 협객의 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만약 그의 복수가 협객의 길이 아니라면 그를 도운 사람들 역시 협객이 아니게 되는 건가요? 전 이 질문에 답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저 질문만 던질 뿐입니다.

(개인적으론 적어도 손부자, 정이노, 호연막내의 세 의형제는 당당한 협객이라고 봅니다만.... 특히 호연막내는 정말 멋있더군요 ^^)

3. 복수를 마치고나서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또 거지 유곰보의 눈에는 비열하기 짝이 없지만 왕일에게는 너무나 정당하다고 보이는 독의 힘을 빌어 왕일의 복수는 일단 완결됩니다. 복수의 가장 큰 대상이어야할 진가소를 죽이지는 못하지만 그의 아버지 진가주를 죽였고, 가족을 몰살시키고 동생 왕령을 노리개로 삼은 녹림채주를 죽였습니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와 같다면 그는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아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현실속에서 왕일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가장 큰 불행은 왕일에게 하나 남은 피붙이인 여동생 왕령이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작가의 말처럼 왕령은 단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의 삶을 짓밟기 시작한 사람들은 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가족들이 기근을 넘기기 위해서 그녀를 첩으로 팔아넘겼던 것입니다. 그녀에게는 단 한번도 그녀의 운명을 선택할 기회도 그 불행한 운명을 피할 수 있다는 기대마저도 주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갑자기 남만에 끌려가 죽었으리라고 여겨졌던 그녀의 오빠가 그녀를 구원해줍니다. 그 오빠만은 유일하게 자신의 불행에 책임이 없습니다. 그녀를 불행하게 만든 거의 모든 사람은 오빠가 죽였습니다. 그녀는 오빠를 원망할 수도 없고 원한을 품을 대상도 없습니다. 그녀는 불행에서 해방되었지만, 그 어떤 의지도 남아있지 못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왕일은 다시 살아난 이후 복수만이 전부였고, 복수로 얻어진 결과인 누이동생이 다시 삶의 희망이었습니다. 누이동생의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이 그를 다시 희망없는 삶속에 밀어넣었습니다. 남만의 숲속에서도 가족에게 돌아갈 꿈을 꾸었고, 복수를 하면서도 누이를 구원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왕일에게 꿈은 영원히 사라져버립니다. 왕일은 복수의 불꽃 속에 자신을 태우고 껍데기만 남고 말았습니다.

4. 죽음을 찾아서

왕일은 희망없는 삶이지만 절대 자신의 목숨을 끊을 수 없습니다. 남만에서도 진가장에서도 다시 녹림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나온 자신을 송두리채 부정하는 방법이 자살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제 죽기를 원합니다. 아니 어쩌면 피붙이 왕령이 자신을 이유없이 원망한다는 걸 알고서부터 그는 알게모르게 죽음이 옆에서 떠나지 않는 과거의 삶이 그리웠을 겁니다. 자신이 그렇게 원망하던 무림인들의 집단에 아무런 불만없이 끼어들게 된 것은 단지 생활고와 우연히 만난 마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왕일은 자신에게 멋진 삶이 준비되어 있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 복권을 사고서 500원 짜리도 당첨되기 쉽지 않은 우리들처럼 왕일에게는 인생역전의 기회는 이미 지나간지 오래입니다. 그렇게 나쁜 운일망정 하늘이 자신의 운명에 조금만 관대하다면 멋진 죽음은 맞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죽음의 기회가 오면 그는 주저하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왕일의 생각이 책에 나오냐구요? 제 생각입니다. ^^)

그리고 그런 기회가 옵니다. 죽음의 땅 남만으로 떠나야만 했던 것입니다.

왕일에게 공평하지 않았던 것은 그는 죽음의 길조차 제 뜻대로 선택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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