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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여성 언어학자
금석강·2026.04.1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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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연구하고 있는 것은 나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와 관련이 있다. 그 고대언어가 비슬라브어 계통 중에서 정확히 어느 족보와 연결되는지를 밝혀내는 일이다.


내가 주로 다루는 고대언어들은 더 이상 사용하는 인구가 없는 언어들이다. 그래서 발음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언어가 많다.


고대언어 연구는 해당 언어의 문자적 흔적인 알파벳을 기본으로 한다. 이것이 고대언어 연구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화자(話者)가 풍부한 현대어처럼 발음이 연구의 출발점이 되기는 어렵다.


문자와 발음을 합친 체계를 통틀어 언어라고 한다면, 내 연구에서 고대언어라는 건 주로 고대문자, 즉 해당 언어의 알파벳이라고 보면 된다.


러시아어의 알파벳은 키릴 문자다. 키릴 문자의 필기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은 경우 알아보기가 아주 힘들다.


현재 많은 사람이 말하고 쓰고 있는 문자라서 누구에게라도 그게 무슨 글자인지 물어볼 수가 있다. 그런데 내가 연구하는 고대언어의 문자는 사용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전부 손으로 썼거나 판에 새겨진 방식의 악성 필체로 남겨진 고대언어의 유물 조각들은 정말로 다루기가 힘들다.


같은 알파벳임에도 불구하고 악필로 남겨진 고대문자라면 다른 알파벳으로 판독될 정도다. 심지어 어느 알파벳인지조차 확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내 연구에서 악성 필체는 완전한 언어 해독을 위해 넘어야 할 큰 난관이었다.


손으로 필사를 해 전승되던 시기에는 문자를 다루는 사람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버릇으로 인해 문자 변형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건 악필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발생하는 문자 변형 외에, 문자 체계 자체가 한순간에 달라지는 일도 있다. 왕조의 교체 등과 같은 혁명적 사건을 거치면서 최고 권력자에 의해 문자 체계가 단번에 바뀌는 일이었다.



한편, 문자가 아예 없는 고대언어들도 많았다. 문자 없이 소리만으로 존재하는 언어들이었다. 이런 소리 언어를 사용하던 민족이 전쟁이나 기근 등으로 인구수가 급감하게 되면 언어 자체도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자가 있는 다른 언어가 그처럼 사라진 언어와 사용자들에 관한 얘기를 보존해주고 있는 사례가 있다. 동양의 한자문화권에서 그런 일이 많았다.


문자 없이 소리 언어만을 사용했던 여러 민족의 역사나 생활상을 중국의 한자를 사용해 기록한 예가 그렇다. 그런 자료에는 중국이 아닌 주변국에 관한 내용이 한자로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렇게 문자와 언어가 불일치 하는 문제도 해독 과정에서 내가 밝혀내야 하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특정 문자로 쓰였다고 해서 그 내용이 반드시 특정 언어나 민족에 관한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항상 주의해야 했다.


그리고 고대유물이 발견된 곳에서, 사라진 어떤 언어가 문자를 가지고 있었다는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이건 고대언어학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이었다.


만약 이런 고대유물이 발견된다면 사라진 고대문자 하나를 부활시키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정보가 거짓인 경우도 있다. 기록자가 살던 시대가 아닌 그 이전 시대나 고대에 관한 것들에 대해 근거 없이 떠도는 얘기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그럴듯하게 써놓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일부러 거짓 정보를 써서 후세에 남기기도 했다.


이런 가짜 정보들 역시 해독 과정에서 내가 전부 확인하고 풀어야 할 숙제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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