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 이번에 안 타시면 평생 후회하십니다.”
객장에서 다들 김 실장이라 부르는 남자.
무슨 회사의 실장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매일 오후 2시쯤 나타나 정보가 있다는 얼굴로 앉았다가, 장이 끝나기 전에 사라집니다.
“위에서 다 받쳐 주고 있어요. 남은 거 마저 넣으세요.”
은행 지점장으로 은퇴한 박사의 무릎 위에 주문표 한 장.
1,800만 원어치. 아내의 수술비입니다.
박사가 펜 뚜껑을 엽니다.
도현은 그 문장을 압니다. 지난 삶, 금융감독원 조사역으로 읽은 피해자 진술서 그대로입니다.
‘확실한 분이 위에서 받쳐 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남은 돈을 마저 넣었습니다.’
“박사님. 그 종이, 오늘은 접어 두세요.”
“꼬마는 저쪽 가서 놀아라.”
도현은 대답 대신 공책을 펼칩니다.
열흘 동안 적은 시각, 체결 수량, 가격.
“지금 작은 게 나올 거예요. 200주.”
200주.
잠시 뒤, 또 200주.
“이제 큰 거요.”
큰 수량이 찍히고, 가격이 한 칸 오르고, 그다음엔 아무도 따라 사지 않습니다.
옆자리 노인들이 말을 멈춥니다. 김 실장의 입꼬리가 굳습니다.
그리고 6월 11일 금요일, 1시 55분.
대양실업은 매수가의 두 배를 넘었고, 객장 사람들은 오늘 얼마나 더 오를지만 이야기합니다.
“엄마. 지금 팔아. 전부.”
“아직 오르는데. 다들 더 간다고 하잖아.”
“그러니까 지금이야.”
2시 10분.
가격이 한 칸 내려갑니다. 눈 깜빡할 사이에 또 한 칸.
“대양 왜 이래?”
“내 것부터 받아!”
의자 하나가 넘어집니다.
박사는 체결 내역과 2주 전에 접어 둔 주문표를 무릎 위에 나란히 놓습니다.
“집사람 수술은 가을에 그대로 한다.”
61살 전직 지점장이 13살에게 고개를 숙입니다.
그 장면은 진술서 어디에도 남지 않을 겁니다. 이번 삶에서는 진술서 자체가 생기지 않을 테니까요.
곗돈 300만 원은 568만 원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객장 구석 공중전화 앞에서, 김 실장이 누군가에게 보고합니다.
“예, 회장님. 객장에 웬 꼬마가 하나 있어서요.”
[이 작품의 재미]
- 주인공은 예언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남긴 기록을 먼저 읽었고, 오늘 단말기에서 같은 순서를 찾아냅니다.
- 돈은 어머니 이름으로, 주문표 도장도 어머니 손으로.
- 한 번 진 상대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더 큰 돈을 들고 돌아옵니다. 그래서 다음 판이 더 커집니다.
- 곗돈 300만 원에서 실명제, 외환위기, 닷컴, 리먼을 지나 재벌이 되기까지.
[연재 정보]
- 무료 연재입니다. 1화부터 바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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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창에 ‘금감원 에이스’를 넣으시면 나옵니다.
이 장면은 4화 「이미 나와 있었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