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특별 담화가 끝난 다음 날, 객장 전광판이 온통 파랗습니다.
팔겠다는 주문표가 창구에 쌓이고, 바닥에 흩어진 종이를 사람들이 밟고 다닙니다.
객장 안내석의 혜진이 도현 옆으로 옵니다.
“사? 지금 다들 던지잖아. 바닥 아니야?”
“아니에요.”
“그럼 언제.”
“사람들이 한 번 돌아왔다가, 다시 나갈 때요.”
도현은 그 순서를 압니다.
지난 삶, 금융감독원 조사역으로 넘긴 피해자 명단에서 같은 이름이 세 번 나왔습니다.
첫날 팔고, 사흘 뒤 다시 사고, 진짜 바닥에서 또 팔고.
월요일부터 전광판이 빨개집니다.
지점장이 객장 한가운데 섭니다.
“지금 다시 사셔도 늦지 않습니다.”
금요일에 판 사람들이 수요일에 다시 삽니다.
반찬가게 일을 하는 어머니가 저녁 밥상에서 묻습니다.
“다들 다시 산다던데. 너는 안 사?”
“그때 사면 안 돼. 다들 그렇게 보일 때가 제일 비싸.”
반등이 멈춘 목요일, 혜진이 수첩을 들고 옵니다.
“이제야? 오늘부터 빠지잖아.”
“지금이 아니라 다음 주예요.”
그날 밤, 도현은 주문표 한 장을 미리 써 둡니다.
청운증권 우선주. 4,200원. 2만 3,800주.
날짜 칸만 비워 둡니다.
그리고 다음 주 수요일 아침, 등굣길 공중전화.
“오늘이요.”
큰손 박 여사는 이유를 묻지 않습니다.
“10시까지 어머님 계좌로 넣으마.”
객장의 어머니가 비어 있던 날짜 칸을 채웁니다.
“4,200원? 지금 얼마야?”
“4,500.”
“그럼 안 사지잖아.”
“오늘 안에 4,200까지 내려와. 거기서 기다리는 거야.”
어머니가 도장을 꺼냅니다.
“엄마는 이게 제일 무서워. 네가 하나도 안 무서워하는 게.”
11시 반, 4,300.
후장, 1시 50분.
4,200.
“다 됐어요, 어머님. 4,200원. 2만 3,800주.”
세상이 팔고 있을 때, 미리 정한 자리에서 정한 가격에 정한 수량을 샀습니다.
쫓아간 것이 아니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이 끝날 무렵, 지점장이 사무실에서 나옵니다.
“실명제로 증권사가 제일 먼저 망한다는 거 모르세요? 다들 빠져나가는 판에 1억을?”
“지점장님. 장롱 속에 있던 돈이 은행이랑 증권사로 들어와요. 그럼 증권사는 망해요, 벌어요?”
지점장의 금테 안경이 잠깐 내려갑니다.
오늘 아침 자기 고객의 1억을 옮기는 전표에 결재한 사람이 그였습니다.
그 돈이 자기 말이 아니라 13살의 말을 따라 움직였다는 걸, 그는 지금 처음 압니다.
그 1억이 무엇이 되어 돌아오는지도, 그는 이 객장에서 보게 될 겁니다.
[이 작품의 재미]
- 주인공은 바닥을 찍지 않습니다. 가격을 정해 두고, 사람들이 그 자리까지 내려오기를 기다립니다.
- 돈을 대는 큰손도, 도장을 찍는 어머니도 이유를 다 묻지 않습니다. 앞에서 세 번 봤기 때문입니다.
- 무시하던 지점장이 결재한 돈이, 그의 눈앞에서 다른 사람의 판단으로 움직입니다.
- 곗돈 300만 원에서 실명제, 외환위기, 닷컴, 리먼을 지나 재벌이 되기까지.
[연재 정보]
- 무료 연재입니다. 1화부터 바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1화는 금감원 조사실에서 시작해, 곗돈 300만 원이 사라지기 직전의 그날로 돌아갑니다.
- 3화까지만 읽어 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그때 선호작을 눌러 주세요. 다음 화를 내 서재에서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검색창에 ‘금감원 에이스’를 넣으시면 나옵니다.
이 장면은 7화 「지금이 아니라 다음 주예요」입니다. 1화부터 이어서 읽으시면 금방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