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고려.
예성강 하구 벽란도(碧瀾渡)에는 날마다 세계의 절반이 밀려들었다.
송나라의 비단과 차, 서역의 향료와 유리, 아라비아 상인의 은전, 초원의 말과 소문들이 바닷길과 강물 위를 떠돌던 시대.
그러나 화려한 시장 뒤편에서는 이미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몽골의 기병은 초원을 뒤덮고, 금나라(金)는 흔들리고, 개봉(開封)의 거대한 시장은 굶주림과 탐욕 속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길 하나가 끊기면 도시가 무너지고, 항로 하나가 막히면 나라가 흔들리던 시대.
《고려 女巨商, 실크로드를 삼키다》는 그 격변 속에서 살아남으려 했던 한 고려 여상인(女商人)의 이야기입니다.
청해상단(淸海商團)의 후계자 묘덕(妙德)은
차를 배우고, 시장과 장부를 배우고, 인간의 욕망과 배신을 배우며 성장합니다.
벽란도의 부두, 개경의 시전, 송나라 항주, 금나라 개봉, 남해의 해적섬, 그리고 서역 실크로드까지.
그녀는 길 위를 건너며 점점 깨닫게 됩니다.
세상은 칼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곡물과 말, 은과 향료, 장부와 신용, 그리고 항로를 지배하는 자가 결국 시대를 움직인다는 것을. 작품에는 고려 국제무역 차(茶) 무역 해상 실크로드 몽골 제국 송·금 상권 전쟁 해적과 밀무역
무장 상단 벽란도와 항주 묘사 같은 보기 드문 소재들이 굉장히 밀도 있게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다소 낯선 소재처럼 보였는데,
읽다 보면 단순한 상업물이 아니라 “길과 인간에 대한 대하 역사소설” 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항구와 시장의 공기 바다와 초원의 냄새 상인들의 계산 살아남기 위해 변해가는 인간들
묘사가 아주 뛰어납니다.
최근에는 해적섬 토벌과 국제 상권 전쟁까지 이어지면서 스케일도 크게 확장됐고, 몽골 전쟁사의 명장 수부타이까지 등장하며 세계사가 본격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역사소설 좋아하시는 분,
특히 실크로드 상인 이야기 몽골·송나라 시대 해양 역사물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정말 재미있게 보실 것 같습니다. 천천히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벽란도 부두 냄새가 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