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소설 열 개를 대라고 하면 《노인의 전쟁》 시리즈와 《마션》은 무조건 들어갑니다.
마침 문피아에서 SF 공모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공모전에는 과연 어떤 SF 소설들이 나올지 꽤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SF라는 장르의 범위가 워낙 넓습니다.
따지고 보면 지금 현대판타지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상당수의 소재 역시 넓은 의미에서는 SF의 영역에 걸쳐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실제 공모전 작품들을 보다 보면 기존 현대판타지의 문법에서 크게 벗어난 작품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현대판타지와 결합된 SF가 재미없다는 이야기는 당연히 아닙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그 두 장르를 아주 절묘하게 섞었습니다.
《궤적이 보이는 EX급이 싸움을 잘함》
현대판타지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기본 골자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그것을 SF의 문법으로 다시 만들어 놓은 작품입니다.
마법도 없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힘도 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초능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능력의 등급이 등장하고, 변경할 수 있는 특성이 있고, 몹이 나오고, 전투가 벌어집니다.
현대판타지를 읽는 독자라면 아주 익숙한 요소들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에 나름의 과학적 이유가 붙어 있습니다.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판타지가 아니라 정말 과학이 지금보다 훨씬 발전해서 수백 년 뒤의 미래가 온다면, 이런 세상이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저는 이 감각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단순히 미래 배경에 총과 우주선이 등장해서 SF인 것이 아니라, 현대판타지의 익숙한 재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근간을 과학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솔직히 저도 글을 쓰는 입장에서 이런 설정을 보면 조금 탐이 납니다.
‘이거 나도 가져다가 한 번 써보고 싶은데?’
싶을 정도로 매력적입니다.
그러면서도 설정을 이해하기 어렵게 늘어놓지 않습니다.
문체가 정갈하고 설명도 잘 정리되어 있어서 술술 읽힙니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단순한 직선형 플롯으로만 흘러가는 것도 아닙니다.
읽다 보면 메인 스토리뿐 아니라 서브 스토리가 궁금해지고, 주인공 외의 다른 등장인물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자연스럽게 궁금해집니다.
세계관만 잘 만든 작품도 아니고.
전투만 재미있는 작품도 아닙니다.
이야기와 인물까지 고루 신경 쓴 것이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SF 공모전에서 만난 작품 중 상당히 인상 깊게 읽은 소설이라 추천합니다.
특히 SF와 현대판타지를 둘 다 좋아한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읽다 보면 아마 한 번쯤 이런 생각이 들 겁니다.
‘아니, 이걸 이렇게 매핑한다고?’
그리고 조금 더 읽다 보면.
‘작가 설정이 미쳤네.’
저는 이런 순간이 SF를 읽는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을 넘어, 설정 하나를 이해하고 나면 그 뒤의 세계가 어떻게 굴러갈지 궁금해지는 것.
하나의 설정을 보고 또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게 되는 것.
그런 지적인 호기심에 제대로 불을 붙이는 작품입니다.
SF를 좋아하시는 분도.
현대판타지를 좋아하시는 분도.
특히 둘 다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정말 잘 만든 소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가님께 이 자리를 빌려 딱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목을 한 번만 다시 고민해 보시면 어떨까요.
물론 ‘궤적’이라는 개념이 이 작품에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은 읽어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소설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작품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입니다.
‘궤적’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일주일에 한 번이나 사용할까 싶을 정도로 흔한 단어는 아닙니다.
그래서 제목만 봤을 때,
‘궤적이 보인다고? 그래서 뭐가 그렇게 대단한데?’
라는 생각부터 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이 추천글을 쓰는 저조차도 이 제목을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별생각 없이 지나쳤습니다.
그러다 정말 우연한 기회에 1화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추천글까지 쓰고 있습니다.
그만큼 제목을 보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잘 만든 소설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제목만 보고 지나치기에는 정말 아까운 작품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