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비늘 틈에 사는 작은 새가 있습니다.
이름은 피루. 용새라고 불리는 아주 작은 존재입니다.
피루의 일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용의 상처에 낀 굳은 피를 쪼고, 비늘 사이 벌레를 잡고, 거대한 용의 몸 위에서 들키지 않게 살아가는 것.
용들은 전쟁을 하고, 인간들은 용을 증오하고, 왕국은 영웅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피루 같은 작은 새의 이름은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피루는 용 아르칸의 오래된 흉터 속에서 이상한 벌레를 발견합니다.
피가 아니라 이름을 갉아먹는 검은 벌레. 죽은 사람보다 먼저, 살아 있던 기록을 지우는 병. 용의 명령과 인간의 장부, 용새들의 둥지까지 먹어 치우는 검은비늘병.
그리고 피루는 알게 됩니다.
사라진 아이의 이름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용의 죄가 조작된 기록 속에 묻혀 있다는 것을. 작고 약하다는 이유로 기록되지 않은 존재들이, 세계의 가장 낮은 틈에서 계속 지워지고 있었다는 것을.
피루는 둥지에서 쫓겨납니다. 용을 증오하는 인간 기사 루메나와 함께하게 됩니다. 자기 죄를 외면해 온 늙은 용 아르칸과도 진실을 마주해야 합니다.
피루에게는 성검도 없습니다. 불숨도 제대로 뿜지 못합니다. 몸은 작고, 날개는 쉽게 다치고, 목소리는 자주 쉰 채로 끊깁니다.
하지만 피루는 남들이 보지 못한 틈으로 들어갑니다. 큰 발톱이 닿지 않는 곳을 긁고, 큰 검이 베지 못하는 문장을 고치고, 불로 태울 수 없는 이름들을 다시 부릅니다.
용사는 반드시 인간이어야 하는가. 용사는 반드시 용을 죽이는 자여야 하는가. 가장 작은 존재가 가장 잊힌 이름을 증언할 수 있다면, 그것도 용사의 방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비늘 틈의 용사》
용도 인간도 아니었던 작은 용새가, 이름 잃은 세계에서 용사의 뜻을 다시 쓰는 이야기입니다.
작은 주인공이 큰 세계를 바꾸는 성장 판타지를 좋아하신다면, 상처와 책임, 동료와 증언의 판타지를 좋아하신다면, 피루의 첫 비행을 함께 따라와 주세요.